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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임은정 Sep 08. 2020

스물여섯에 이혼하게 될 줄이야

이혼도 최초

난 너한테 다시 돌아갈 생각 절대로 없다. 차라리 병원에서 지내는 게 더 나을 정도야.


치료 잘 받고 다시 돌아와서 잘 지내자는 전남편의 말에 내가 했던 답장이었다. 사람에게 정신적인 충격이 크면 기억 상실증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부분 기억상실 증상이 있다. 아팠던 시절-정신질환을 앓았던 때-에 했던 말이나 행동 중 내가 기억 못 하는 것들이 많다. 전남편과의 대화 내용을 찾아보면 기억을 살려서 글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메일함을 열었다. 주고받았던 이메일 안에서 내 악마 같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집 나가서 온갖 사고 다 치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당한 게 모두 그 사람 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너 때문이라며 글 속에서 힘껏 상처를 주었고, 전남편은 글 속에서 너무나 괴로워하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나 하나 때문에 그때 우리 가족과 전남편 가족들까지 덤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이라는 걸, 그땐 나만 모르고 있었다. 




정신병원에서 하룻밤 자고 난 다음 날, 병원 안에 있던 공중전화로 긴급번호를 눌렀다. 내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당했으니 빨리 구해달라고 외쳤다. 갑자기 어디선가 간호사가 뛰어오더니 전화기를 낚아챘고, 뭐라고 설명하더니 끊어버렸다. 그리곤 위협했다. 주사 놔버리겠다고. 나는 주사가 너무 무서웠나 보다. 또 얌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영어 한마디 못하시는 엄마가 딸 걱정으로 바로 비행기 타고 오셨다. 영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어서 병원에 전화해 나를 바꿔 달라고 하시기도 하고, 혼자 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도 하셨다. 이것저것 요구하는 제멋대로인 딸에게 모든 것을 맞춰 주셨다.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하셨던 엄마를 보면서, 강력한 사랑의 힘은 어떤 어려운 상황도 다 이겨내게 한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렇게 병원 생활을 두 달 정도 했던 것 같다. 퇴원하고 싶었지만, 병원에서는 내 상태가 온전치 않다며 퇴원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한국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계속 연기할 수가 없어서, 남은 치료는 한국에서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퇴원시켜 줬다. 치료가 덜 된 상태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또다시 사고를 치고 돌아다녔다. 매일 술을 먹고 백화점에 가서 명품을 막 샀다. 카드 한도 초과 때문에 물건을 살 수 없게 되자, 사촌 오빠에게 카드를 빌려서 막 긁어댔다.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 밥을 먹다가 음식이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셰프를 불러내서 컴플레인을 했다. 친구들을 불러서 비싼 술과 음식을 먹고, 호텔에서 자고, 모범택시를 타고 다녔다. 집에 안 들어가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어느 날 엄마께서 병원에 같이 가서 상담을 받아보자고 했다. 내가 이상해졌다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별일 있을까 싶어서 선뜻 따라갔다. 


같이 상담을 받고 나서 엄마께서 나에게 잠시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보안요원 네 명이 다가오더니 나를 둘러싸고 끌고 갔다. 발악했지만 폐쇄병동에 끌려가서 주사를 맞고 기억을 잃었다. 얼마나 기억을 잃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환자들 말로는 내가 소파에서 초점 잃은 눈으로 대자로 누워있었다고 했다. 내가 맞은 주사가 코끼리 주사라고 하더라. 코끼리도 기절시키는 주사라나. 한국의 정신병원은 정말 삭막했다. 약을 먹고 나면 제대로 먹었는지 입을 벌려서 검사도 받아야 했다. 나는 증상이 심하다며 폰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산책은 증상이 가벼운 사람에게만 허용했다. 너무 갑갑한 병원 생활이었다. 


처음에 엄마를 많이 원망했다. 강제로 입원시키다니, 배신감이 너무 컸다. 그런데 나중에는 모든 것이 이해됐다. 오죽하면 자식을 입원시킬까. 어디 가서 자식이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사고 치고 다니는 나를 홀로 감당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다. 당시로서는 강제입원 말고 다른 대안이 없었으니, 최선의 선택이었다. 조울증은 조증 삽화와 우울증 삽화가 번갈아 가며 반복되는 병이다. 삽화는 증상이 계속 지속하지 않고, 일정 기간 나타나고 호전되기를 반복하는 패턴을 의미한다. 병원 퇴원 후 얼마 동안은 상태가 괜찮았다. 우울증 삽화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원래는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신혼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퇴원하고 난 후에도 전남편에 대한 증오가 너무 심했다. 삐뚤어진 마음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전남편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다시 잘 지내기에는 돌이킬 수 없이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다. 아예 한국에 온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고, 여전히 돌아갈 생각이 없었기에 짐을 다 부쳐달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살기로 했다. 이로써 나는 내 지인 중 결혼도 최초, 정신병원 입원도 최초, 이혼도 최초로 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누가복음 6:45


A good man brings good things out of the good stored up in his heart, and an evil man brings evil things out of the evil stored up in his heart. For the mouth speaks what the heart is full of.

Luke 6:45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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