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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임은정 Sep 06. 2020

조울증에 걸리게 될 줄이야

정신병원 입원도 최초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냐고!!!!!!!!!"


처음이었다. 전남편이 그렇게 소리 지른 적은. 그건 인내심의 한계를 초과했다는 걸 의미했다. 결혼 후 8개월 동안 냉장고 안에 술이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술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먹었다. 잠이 안 와서. 그 당시 우울증의 원인은 공허함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때는 내가 대체 왜 이러는지 몰라서 답답했다. 이유 없이 자꾸만 눈물이 나고, 죽고 싶고, 우울했다. 온종일 죽을 생각만 했다. 주방에 멍하니 서서 식칼을 바라보며 저 칼을 재빨리 찔러 최대한 단시간 내에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겁 많은 나는 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래서 바다에 뛰어들기로 작전을 바꿨다. 전남편이 잠든 사이 밤마다 바닷가 항구에 갔다. 바다 앞에 멍하니 서서 뛰어드는 생각을 할 때마다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20대 한인 여성, 바다에서 변사체로 발견'이라고 쓰인 신문 기사를 읽고 충격받는 부모님의 모습이 자꾸만 상상됐다. 그 상상이 나를 자살로부터 구했다. 8개월 동안 술 안 취한 날은 하루도 없었고, 매일 전남편을 붙잡고 죽고 싶다며 울었다. 전남편은 이유를 알고 싶어 했지만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그때는 몰랐으니까,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던 전남편은, 직장에서 파티하면 항상 나를 데려갔다. 외국인 동료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고 친구로 지낼 수 있도록 애썼다. 한국인 친구가 없었던 나를 위해 한국인 친구 부부 모임에도 데려가고, 내가 우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죽고 싶다고 울 때면 안아주면서 다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여 줬다. 그렇게 하기를 8개월….


그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우울함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남편이 내게 아이폰을 사줬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하려면 시간 맞춰서 전화하거나 메신저 또는 싸이월드를 통해서 소통했었는데, 말로만 듣던 카카오톡을 처음 접하게 됐다. 실시간으로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신세계처럼 느껴졌다. 온종일 폰 붙잡고 있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집에서도 울고 일하러 가서도 우는 날이 많았는데, 새 폰을 갖게 된 이후로는 웃는 날이 많아졌다. 우울증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조증 삽화(조울증의 조증 시기)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형님 부부는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었기에 종종 함께 밥을 먹었다. 그날도 형님 부부와 식사하기로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나는 친구들과 카톡 하느라 폰을 내려두지 못했다. 밥 먹을 때만큼은 폰 내려두고 이 시간에 집중해 달라고 전남편이 부탁했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 안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화를 냈다. 내가 이제야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카톡 하는 것도 이해 못 해주느냐고 처음으로 욕을 했다. 아무리 욕해도 속이 시원하지 않아서 차 밖으로 내리려고 문을 열었다. 전남편은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는 나를 붙잡느라 정신없었다. 분이 안 풀렸던 나는 집에 가서까지 욕을 했던 것 같다. 참다못한 전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그동안 내게 최선의 최선을 다했지만, 그 이상의 최선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8개월간 매일 이유 없이 울며 죽고 싶다고 했던 아내, 갑자기 분노 조절을 못 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아내를 견뎌내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전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고 뭔가 머릿속에서 탁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남편이 소리치는 모습을 보자마자 집을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가 출근한 사이에 집을 나가버렸다. 중국인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서 신세 좀 지겠다고 했다. 그 친구가 내 사정을 듣고는 자기 집에서 지내도 된다고 해서 그 집에 갔다. 그날 한숨도 자지 않고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전남편에게서 계속 전화가 왔지만 다 받지 않았고 나중엔 폰을 꺼버렸다. 내 마음속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어왔다.

     

'나는 더 잃을 게 없다.'   

 

그 생각이 들어온 이후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침이 되자 중국인 친구는 일하러 갔고 나는 아침 먹으러 카페에 갔다.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카페 사장님을 불러내서 난리를 쳤다. 베이컨이 왜 이렇게 짜냐고. 토마토는 왜 잘게 안 썰었냐고. 말도 안 되는 컴플레인이었다. 그 길로 나와서 길거리에서 신나게 한국 가요를 부르며 걸어갔다. 아무것도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나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미친 여자의 모습이었을 거다. 길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에게 내 귀걸이를 빼서 가지라고 줬다. 명품 이것저것을 사서 초면인 호텔 직원에게 선물로 주고, 카지노에 가서 게임을 했다. 그리고 카지노 위층 비싼 호텔에서 묵었다. 운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으면서 중고차도 하나 샀다. 그렇게 며칠 만에 거액을 썼다. 나중에는 한국 통장에 있던 3천만 원도 다 썼다.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위급한 때에 쓰라며 결혼할 때 부모님이 주신 돈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 피땀 흘려 버신 그 돈을 한순간에 증발시켜 버렸다.


차를 사고 신나서 중국인 친구에게 전화했는데 그 친구는 한순간에 다른 사람으로 변한 내 모습에 놀랐는지, 같이 기뻐해 주지 않았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아주 심한 욕을 퍼부어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살면서 친구한테 욕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알고 있던 모든 욕을 랩 하듯이 했다. 카지노 안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졌다.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소리도 안 나왔다. 체면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바닥에 드러누웠다. 눈앞이 희미해졌고 사람들 말소리는 작게 웅성웅성 들렸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달려와서 내 주변으로 병풍 비슷한 걸 치더니 심장 검사 같은 걸 했다. 누군가 신고를 해서 아마 구급 대원이 왔던 것 같다. 검사를 해도 아무 이상이 없자 나보고 걸어보라고 했다. 아무 이상 없다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더니 괜찮아져서 그대로 일어나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철수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가 겪은 증상들은 공황장애, 조울증이었다. 우울증이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나중에 조울증으로 변했던 거였다. 지금은 방송에서 연예인들도 정신질환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래서 이런 병명이 익숙하지만, 10년 전 그때만 해도 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병이 존재하고 있는 줄도 몰랐고 내가 그 병에 걸렸다는 것도 몰랐다.

정처 없이 걷다가 처음으로 혼자 술 먹으러 술집에 갔다. 혼자 술 먹고 있으니 옆 테이블에서 술 먹던 여자들이 내가 처량해 보였는지 말을 걸어왔다. 같이 술 먹고 친해져서 노래방도 갔다. 내가 노래 부르는 도중에 누군가가 실수로 취소 버튼을 눌렀다. 치솟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바닥에 마이크를 집어던지고 나갔다.


술이 만취한 채로 가까운 호텔에 가서 직원에게 화장실 좀 쓰겠다고 했더니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꾸만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경찰들이 왔다. 내가 만취 상태로 행패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호텔직원이 신고했던 모양이다. 화장실을 가고 싶었을 뿐인데 경찰이 와서 짜증이 났다. 난 화장실 먼저 가겠다고 버텼고, 경찰은 신분증 먼저 보여 달라고 해서 잠깐의 실랑이가 있었다. 그 후에 경찰이 내게 범칙금 딱지를 주며 한마디 하고 떠났다.

     

"이 돈 내고 너네 나라로 꺼져!"


생각지 못한 상황에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또 분노에 불이 붙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범칙금 딱지에 쓰여 있는 경찰서에 찾아갔다. 그 경찰을 찾았지만, 자리에 없었다. 인종차별 당했으니 고소할 거라고 난리를 쳤다. 다른 경찰이 고소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런데 매일 호텔에서 묵으니 돈이 없었다. 혹시 내가 지낼 수 있는 보호소 같은 곳 없냐고 했더니 한 군데 알려줘서 그곳에 갔다. 거기에 갔더니 직원이 나보고 상담사를 먼저 만나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상담사와 어떤 남자 직원이 와서 나를 조용한 방으로 데려갔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묻길래 여태 있었던 일들을 다 말해줬다. 얘기를 듣더니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말도 안 된다고. 둘이서 따로 한참 얘기하더니 갑자기 나랑 어디를 가야겠다며 차에 태웠다. 어떤 큰 건물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게 어떤 방으로 안내했다.


거기서 자라고 했다. 환자복처럼 보이는 옷을 던져주면서. 화가 치밀어서 여기가 어디냐고 소리를 치고 난동을 부리려는 찰나에 그 여자가 한마디 했다. 조용히 거기서 자지 않으면 주사를 놔버리겠다고. 주사가 무서웠던 나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그곳에서 잠을 잤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곳은 정신병원이었다. 대형병원이었는데 그중 한국인은 내가 유일했다. 이로써 나는 내 지인 중 결혼도 최초, 정신병원 입원도 최초로 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분노가 활활 타오르면서 나의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들도 함께 타들어 갔다. 지옥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미 지옥을 살고 있었다.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고, 어둠 속을 걷고 있으니,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2:11 새번역

But anyone who hates a brother or sister is in the darkness and walks around in the darkness. They do not know where they are going, because the darkness has blinded them.
1 John 2:11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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