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튼 Oct 11. 2020

실패와 살아가는 법

오늘의 실패가 삶 자체의 실패는 아니라는 말


요즘 나는 자주 실패하고, 실패에 대해서 계속 생각한다. 인스타 좀 그만하자고 생각하면서 틈만 나면 인스타를 켜고 시간을 하염없이 낭비한다. 오늘은 꼭 일찍 자야지 다짐해놓고 매번 새벽에 잔다. 매일 인스타나 하고 별일도 없으면서 늦게 자고, 다음 날 피곤해하는 한심한 내 모습도 싫지만 실패한 기분은 그것보다 좀 더 싫다. 그래서 실패를 없던 일로 만들 궁리를 한다. 실패하지 않는 나를 만들기 위해 인스타를 줄인다거나 일찍 잔다는 목표 자체를 없앤다. 한심한 방법이지만 그럼 매일매일 인스타만 해도, 늦게 자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회사에서는 열쇠만 만나면 실패한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열쇠를 썼는데, 지금 열쇠는 좀 어색하다. 그래서 열쇠로 문을 열 때면 긴장되고 떨린다. 나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열쇠로 문을 여는 재능이 주어지지 않은 탓이다. 그 어떤 문들도 내 앞에선 쇄정 양호다. 그중에서 회사 당직실 문은 제일 악명 높다. 주말 당직이 싫은 건 주말에 출근해서도 아니고, 혹시 모를 사고 때문도 아니다. 당직이 싫은 건 미운 일곱 살처럼 말 안 듣는 당직실 문 때문이다. 내가 화장실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문을 잠그는 시간이 더 길다는 걸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그러나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직실 문은 꼭 잠글 줄 알아야 하기에 이 실패는 없던 일로 만들 순 없다. 그럴 땐 같은 실패를 한 사람이 없는지 알아본다. 나만 바보인 것 같다고 느낄 때, 나와 같은 바보를 찾는 방법이다. 바보 친구를 찾으면 내가 바보라는 점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지만, 마음은 한결 편해진다. 바보는 멀리 있지 않았다. 옆자리 언니도 당직실은 좀 어려운 존재라고 인정했다. 나보다 빨리 태어나고, 당직실 문도 빨리 깨우친 옆자리 언니와 두 손으로 열쇠 구멍을 맞추는 일을 토론했다. 이번에 당직실 문을 잘 잠근다면 이 실패는 금방 잊힐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잘 잊히지 않는 실패도 있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일은 쉽게 떨쳐내기 힘들다. 나는 종종 거절당하는 것을 실패로 착각한다. 단 하나뿐인 조카가 내 품에 와락 안기지 않을 때,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친구가 보고 싶은데 친구가 차일피일 약속을 미룰 때, 관심 있는 사람한테 몇 시간째 카톡 답장이 없을 때에도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실패라고 여기는 거절의 순간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우울해진다. 즐겁게 살기 위해 한껏 노력한 일들도 무의미하고, 실패만 일삼는 내가 별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음이 실패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괴로운 이유는 얼마나 지나야 이 일이 머릿속에서 사라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세계가 재미없고 괴로울 때는 나의 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세계를 훔쳐본다. 그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책을 골라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문장에 플래그를 붙이고 사진으로 남긴다.      


몇 주 전 읽은 책에서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라도 냉동고에 넣으면 얼마든지 다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된다’는 주인공의 친구, 복자를 만났다. 소설은 사는 동안 우리의 실패는 계속되겠지만 그렇다고 삶 자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며,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생각보다는 실패를 받아들이면서 계속 살아가자고 말해주었고, 작가가 고른 소설 속 한 문장은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문장이었다. 실패를 '미워했다'는 말은, 실패를 '미워해도 된다'는 말로 들렸고 그동안의 속상함을 이해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복자에게 (김금희, 문학동네)


소설 속 친구들처럼 나는 마음 놓고 실패를 미워하다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실패를 했다. 새로운 실패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사이, 구버전의 실패는 금세 사라졌다. 이제는 구차하게 실패를 없던 일로 만들거나, 최근의 실패를 곱씹으면서 실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실패를 삶의 실패가 아니라 한순간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실패와 함께 살아가는 법이 아닐까. 실패를 용인하는 데 또 실패한다고 해도, 그것 또한 삶 자체의 실패는 아니니까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울지 않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