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직장 생각을 잊을 수 있다고요!
네 맞아요. 저 오타쿠입니다. 무슨 덕질하냐구요? 남돌(남자 아이돌) 덕질합니다. 저도 제가 오타쿠가 될 줄,
남돌 덕질을 할 줄 몰랐다니까요? 제가 이래 봬도 학창 시절에는 멀쩡한 사람이었답니다. 덕질을 할 줄 몰랐어요. 자, 이런 범생이가 직장인이 되어서 덕질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부터 갓반인이었던 제가 덕후가 되어 보니 덕질의 좋은 점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 유쾌하게 살 수 있어서 좋다. 나의 항상 기본 표정은 정색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재미있는 모습과 팬들의 유쾌한 드립을 보다 보니 나도 가벼운 느낌으로 살고 모든 상황을 유쾌하게 바라보게 된다.
둘째, 걱정이 줄어든다. 나는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카톡의 1이 지워지지 않으면 ‘답장하기 싫나? 내가 싫어졌나?’라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편이었다. 그런데 덕질을 하고 나서는 떡밥 먹기에 바빠서 생각할 틈이 없어서 생각이 심플해져서 좋다.
셋째, 업무 시간 외에 일 생각을 하지 않고 셔터를 확실히 내릴 수 있다. 퇴근하고 나서도 직장 생각을 하고 또 하느라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퇴근하면 오늘 뜬 자컨(소속사 자체 컨텐츠)! 버블(채팅) 알림!을 보면 일 생각이 전혀 안 난다.
넷째, 나의 싫은 모습도 좋아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좋은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싫은 모습, 아쉬운 모습도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도 부족하거나 아쉬운 모습들이 간혹 보이는데 팬들은 그 모습마저도 좋아해 주는 걸 보면서 ‘어? 나도 비슷한 모습이 있는데 너무 창피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겠는데? 에이, 사람인데 아쉬운 모습도 있는 거지.’라고 여기거나 ‘나 스스로를 귀엽게 봐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섯째,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는 경험을 하면서 사회성이 높아진다. 덕질을 하면 콘서트를 가고, 공방을 가고, 생일 카페를 간다. 대기 시간이 길기 때문에 옆 사람이랑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법을 익히게 된다. 서로 ‘아이돌’이라는 관심사가 갖기 때문에 상대방들의 반응이 보통 호의적이다. 그러므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을 때 긍정적으로 돌아오는 반응을 경험하면서 타인을 대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여섯째, 소중한 친구들이 생긴다. 포카를 교환하다가, 콘서트를 보러 갔다가, 식당에서 합석하면서 처음에는 이 남돌을 주제로 모이다가 이제는 남돌이라는 공통 분모는 사라지고 이제는 그냥 서로가 서로를 좋아해서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이 생겼다. 놀이공원을 가고, 한강에 55놀러가고, 펜션 여행을 가고, 친구들이 사는 지역에 놀러 가고, 집에 초대해서 밤새 술을 먹고, 벚꽃을 보러 간다. ‘덕질이 좋은 점도 있다구요.’라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가장 쓰고 싶은 내용이 이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작은 배려를 고마워하고 더 큰 배려로 보답해 주려는 사람들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이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고 소중히 여긴다. 서로가 하나둘 덕질에서 멀어지더라도 오래도록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