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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하러 갑니다.

자유수영이라는 뜻이에요.

by 선빵

여름마다 나는 자수를 하러 간다. 범죄 자수가 아니라요, 자우수영의 줄임말입니다. 내가 다닌 대학교의 졸업요건 중 한 가지는 '자유형으로 15m 왕복 수영하기'였다. 수영을 전혀 못해서 워터파크도 가지 않았던 나는 졸지에 강제로 수영을 배워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교에서 수영 강의가 있었냐? 전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수영 강습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맥주병은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너무 너무 긴장되었다. 전 날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수영장에 도착했다. 초보자 입장에서 수영장 동선은 꽤나 복잡하다. 먼저, 안내 데스크에서 결제를 한 뒤에 영수증을 받는다. 수영장으로 입장하면, 먼저 신발장이 나온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히 있는 신발장 중에 내가 원하는 아무 신발장이나 열면? 안된다. 아까 안내 데스크에서 받은 영수증에 적힌 번호가 있다. 그 번호에 해당하는 신발장을 열어야 한다. 신발장에 꽂혀있던 열쇠를 뽑는다. 그리고 탈의실로 입장한다. 탈의실에서도 내 영수증번호가 적힌 라커를 찾는다. 신발장에 꽃혀있던 열쇠를 라커에 꽂는다. 그러면 라커 문이 열린다. 입고 온 옷을 벗어 라커에 넣는다. 그리고 수영복, 수건, 세면도구를 챙겨 샤워실로 향한다. 이것까지만 해도 초보자들은 기가 다 빨린다... 수영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씻어야 한다. 이 때 팁은 몸에 비누를 바른 채로 수영복을 입는 것이다. 그러면 수영복이 한결 편하게 입힌다.


자, 드디어 수영장으로 입장.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어도 물에 들어가서 바로 수영을 하지 않는다. 물 속에서 한 두 바퀴 정도 걷는다. 몸을 풀기 위함이다. 처음에 수영장을 갔을 때는 사람들이 물 속에서 걷고 있길래 '아~ 아쿠아로빅을 배우는 사람들인가보다~'했다. 나처럼 착각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라면서. 물 속에서 걷는 것 자체로 재미있다. 몸이 물에 뜨면서 약간은 버둥거리면서 걷게 된다. 걸음마를 뗀 한 살 이후로, 걷는 게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버둥거리면서 걷는 나 자신이 우스우면서 재미있다. 그렇게 두 해의 여름을 바쳐서 나는 자유형과 배영을 조금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진짜 자수(자유수영)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물 속에 들어가서 걸으면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치는 것이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칙이 있는데 내가 어긴건가?'라고 생각하며 놀란 채로 뒤를 돌아보니 한 중년 여성분께서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수영은 보통 텃세가 많다고 들었는데 세 곳의 수영장을 다니면서 운이 좋게도 나는 텃세를 겪지 않았고 오히려 정을 많이 느꼈다. 어느 날은 혼자 자유형을 연습하고 있는데 옆 레인의 아저씨가 계속 빤히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불쾌했지만 뭐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해서 그냥 두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말을 거는 것이다. "자유형에서 고개를 돌릴 때, 옆쪽으로만 돌리지 말고 45도로 돌려서 천장을 바라본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잘 돼." 고개 돌리기를 잘하지 못해서 버둥거리는 젊은이가 안쓰러워서 계속 쳐다봐 주신 것이다. 배영을 하고 있던 날에는 어디가 레인의 끝인지 알 수 없어서 배영을 하다가 그만 두거나, 머리를 박곤했다. 그랬더니 한 중년 여성분께서 "천장에 달린 가랜드가 보이면 어느 정도 끝난 거야. 그 때 끝낼 준비를 하면 돼요."라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요즘도 자유형을 할 때는 "45도로 돌려서 천장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배영을 할 때는 "가랜드가 보일 때까지"라는 말이 종종 생각난다.


물이 무서웠던 맥주병이 어느 정도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뒤로는 물이 시몬스 침대 같았다. 일상에서는 공중에 떠 있는 경험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물 속에 들어가면 무거운 내 몸이 둥실둥실 뜬다. 마치 해파리처럼. 몸에 힘을 쭉 빼고 다리만 흔들 뿐인데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는 게 참 신기하다. 특히 배영을 할 때는 내가 수달이 된 것만 같다. 위를 보며 이리저리 팔과 다리를 휘저어서 조개를 모으러 다니는 보노보노가 된다. 수영은 마음 먹고 가기까지 꽤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운동이다. 가서 씻고,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하고, 다시 씻고, 옷을 입고 집에 오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름마다 자수를 하러 가는 이유는 해파리와 수달처럼 둥실둥실 떴을 때의 행복함, 수영한 뒤 몸에 묻은 물 때문에 선선하게 느껴지는 여름 날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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