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지나간 때를 아쉬워 하지 말자.
“아이고… 박사까지 하시려고?”
아는 언니의 반응이다.
근데 상관없다. 저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붙은 학교가 없어서 “웃기네? 자기도 석사 2번 하고 박사까지 했으면서"라고 뭐라 했지만 지금은 붙었으니까. 음하하하
사실 논문이라면 대학원 때 너무 고생을 해서 지긋지긋했다. 그런데 왜 논문에 평생 치여 살 계획을 세우며 더 빡센 곳을 가려고 하냐고? (사디스트는 아니다.)
누군가 얘기했듯이 “돈으로 여유 있을 때는 죽을 때까지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보다 수입은 많아졌지만 아직도 돈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눈물)
그래서 거성 박명수의 말대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은 때'라는 시기가 오기 전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도 많고 뇌도 팡팡 돌아가는 시기에 도전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나이가 들었고 돈도 없기 때문에 연구 목적의식이 확실한 지금이 딱 맞는 시기라고 단언할 수 있다.
나를 소개할 때 ‘사람을 관찰하는 일을 합니다'라고 종종 말한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한 건데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새로운 기기가 나와도, 지금은 운명하신(R.I.P) 익스플로러가 디자인을 확 바꿔 메뉴를 꽁꽁 숨겨놓아도 Help나 매뉴얼 따위는 열어보지도 않고 몇 번 클릭만으로 금세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 확 바뀐 사용법을 내놓는 제품들은 대하기 불편하다. 관련 업무를 하고 있어서 더 민감할 수도 있지만.
“정말 멋진 걸 만들었으니 내버려두어도 알아서 잘 될 거야(몰라주는 너희들이 바보)"라든가
“이렇게 멋진 데 사용자인 너희들이 배워서 써야지(쫄 리면 쓰지 말던가)"
하는 태도는 의도했건 아니건, 누군가에겐 폭력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러다 갑자기 박사를 하겠다! 란 계획은 없었지만 어쩌다 저쩌다 보니 지금이 되었다.
“그럼 박사 끝나면 뭐 할 거야?”
이런 질문도 많이 받았는데 그때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려고"라고 했다.
코로나를 겪으며 느낀 점은 내가 아무리 물샐틈없이 계획을 세워도 그때가 되면 모든 경로를 재설정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들, 궁극적인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살면 된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면 그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수정해서 살려고 한다.
그리고 좀 뜬금없지만 무언가 양갈래 길이 있을 때마다 ‘내가 죽으면 가장 슬퍼할 사람들' 순서로 결정한다.
예를 들어 야근을 하라고 압박하거나 회식에서 한잔만 더 하라는 상사와 날 기다리는 가족들 중 나는 두 번 고민 없이 가족을 선택해서 박차고 일어난다.
(극단적이지만 상사는 내가 죽으면 ‘인수인계 누가 하지?’라는 생각을 할 테니까)
그래서 내가 가장 원하는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우선순위로 둔 채 살아가면 그럭저럭 괜찮게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