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아 서바이벌
오늘은 “엄마가 일/공부하면 아이는 어떻게 돌보고 계시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서 그에 대한 답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워킹맘이었는데 한국은 정말 육아 관련 제도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두 국가를 비교해 봤을 때 미국에서 아이를 키운 게 뭔가 부담이 덜하고 정신적으로 덜 힘든 것 같아요. 한번 생각해 보니까 사실 미국도 똑같이 워킹맘이라고 하면 정신없고 바쁘고 종종 거리게 되고 그렇거든요.
그런 크게 한 가지 느낀 건 미국에서 제가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면 배려를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꼭 육아하는 사람만 배려를 해주는 게 아니었고요. 예를 들어서 색맹인 사람을 신경 써주거나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을 배려해 주듯이, 아이를 돌보는 사람에 대한 것도 배려를 받는 것 같아요.
옆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걸 보고 자기도 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나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배려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하는 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한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거는 제도적인 게 문제가 아니라 직장에서 눈치 보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무리 촘촘하게 계획을 다 짠다고 해도 사람이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 있잖아요. 아이가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 아니면 저처럼 어느 날 오전 출근했는데 갑자기 시터님이 오늘 오후에 못 오시겠대요,
아이는 3시 넘어서 하교를 하니까 그 때라도 오후반 차를 내고 집에 가면 문제가 없잖아요. 그런 제도가 문제가 아니고 “제가 육아 때문에 오후 반 차를 급하게 쓰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 분위기 있잖아요.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는 상사도 있고 된다고 하더라도 욕하는 상사도 있고 옆에서 눈치 보는 동료들도 있고 뒤에서 욕하는 동료도 있고.
제가 다 알다 보니까 전화를 다 끊고 나서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는 거예요. 심장이 막 쿵쾅쿵쾅 뛰고, 손이 떨리면서 하늘이 빙글빙글 돌더라고요. 나중에 보니까 이게 공황 발작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난관에 부딪혔을 때, 절대 남에게 이해받을 수 없다, 배려를 받을 수 없다는 그 생각이 많이 힘들었던 것. 생각뿐이 아니라 실제로 배려를 받은 경험이 별로 없었어요.
이게 매일 있는 일이 아닌데도 일 년에 단 손에 꼽을 수 있는 몇 번만 생겨도 사람을 많이 피폐하게 만들더라고요.
저는 그때 배려를 해주지 않았던 상사나 동료를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해보니까 이게 남을 배려할 여유가 전혀 없어요. 제 업무가 제가 빠지면 제가 책임지는 거지, 다른 동료들에게 나눠지는 업무가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들 각자 삶이 너무 빠듯하고 팍팍하고 힘들고 그리고 내가 배려를 받아본 경험이 없고 옆에서 하는 걸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남을 배려를 하겠어요.
저 사람이 무슨 일이 있건 무슨 사정이건 그건 저 사람 사정이고
당장 내가 내 눈앞에 있는 삶이 힘드니까
그냥 나한테 보이는 건 저 사람은 저런 핑계를 대고 일찍 집에 가는 모습인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이걸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나중에 내 자식도 이렇게 살게 될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니까 많이 힘들었어요.
미국은 특히 학교에서 학부모가 참가해야 되는 이런저런 학교 행사가 정말 많아요. 제가 정말 놀랐던 것 거기 갔더니 엄마, 아빠가 다 와 있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야 학생이지만 그 사람들은 직장을 가는데도 불구하고 빠지고 올 수 있다는 거죠.
제 친구들을 보면 맞벌이인데도 불구하고 둘이 나눠서 아이를 케어하는 게 가능해 보였어요.
제 친구는 아이 학교가 끝나면 아빠가 그 아이를 픽업해서 축구교실로 데려가고, 그 후 회사로 돌아가요. 나중에 엄마가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려와서 집에서 돌보다가 (부부) 둘이 함께 집안일도 하고 식사도 하고, 나중에 아이가 잠든 후에 남은 일을 처리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애초에 그렇게 잔여 업무가 남을 정도로 일이 많지도 않대요. 박사생의 예를 들어 볼게요. 제 동기 중 한 명은 얼마 전에 둘째를 낳았어요. 그래서 자기 지도교수와 얘기를 해서 풀 재택근무를 신청하고 수업도 연구도 전부 재택으로 하고 있어요.
저도 지난 학기에 아이 학교가 쉰다는 걸 늦게 알게 되어서 급하게 조율을 해야 되는 일이 있었어요. 그날 제가 아이를 봤어야 했거든요. 급하게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내가 오늘 이런 일 때문에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어야 되겠다”라고 허락도 아니고 통보를 했죠. 했더니 바로 답장이 와서 “당연하지. 아이 돌보는 게 가장 먼저고, 가족이 최우선이지!” 이렇게 얘기를 해줘서 정말 고마웠거든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방학이 가장 힘든 시간일 거예요. 여기서는 학원 같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방학에는 썸머캠프(여름학교)를 많이 보내기도 하거든요. 풀타임으로 가기도 하지만 저희처럼 오전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까 박사생들은 방학 전체를 커버해 주는 썸머캠프를 보내기는 힘들어요.
저 같은 경우 지도교수와 상의를 해서 언제는 출근을 하고 언제는 집에서 일을 하겠다, 이런 식으로 조율을 했거든요.
확실히 느낀 점은 이런 육아를 한다는 게 제가 한국에서는 굉장한 약점이었어요. 책 잡힐 일이기도 했고...
미국에서도 제 강점은 안 되겠지만 약점으로도 절대 작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저 안경을 쓰는 사람이 있거나 머리가 긴 사람이 있고, 짧은 사람이 있고, 그냥 제 특징인 거지.
저 같은 경우도 지도교수님이 한 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기 한 몸만 챙기면 되는 스물몇 살짜리 스케줄보다는
가족도 있고, 아이를 챙겨야 되는
너의 스케줄을 더 우선으로 생각해.
이렇게 말해줘서 너무너무 감사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입학하기 전이라면 미리 포기하지 마시고 함께 일하고 싶은 지도교수의 연구실이 어떤 분위기인지 좀 물어보고 얘기를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고요. 다니기로 한 학교라면 지도교수 하고 충분히 얘기를 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아는 분은 방학 때마다 한국에 가서 일을 해야 되는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배려를 받아서 그렇게 하고 계시거든요. 이런 식으로 육아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면 충분히 배려받을 수 있으니까 꼭 얘기를 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꼭 도전을 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용기가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YwQJv5la_fw?si=jD5rAlfpTIWXwj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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