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레브 Jul 08. 2024

지도교수앞에서 ㅇㅇㅇㅇ를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늙고 애 있고 돈 없는 한국인의 유학이란


제가 많이 받는 질문 중에 또 하나가


육아하면서 학업 병행하기에 너무 힘들지 않나요?


이런 질문이에요.


외국에서 외국어로 공부하니 당연히 힘들긴 한데요.

제가 살아보니까 한국에서 직장생활이 가장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자주 드리는 말씀이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1년 이상 해보셨으면
세계 어딜 가도 어떤 환경에서도
한국 사람은 적응을 잘 할 것


이렇게 말씀을 많이 드려요.

저 개인적으론 한국 직장생활이 난이도 최상위였거든요.


그리고

어리지 않은 나이에 공부하는 건 어떤가요?


라는 질문도 많이 드는데 장단점이 있어요. 이게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 흔히 연륜이 생긴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제가 겪어보니 특히 현명해진다거나 무언가 멋진 노하우가 생긴다기보다는

웬만한 일에

일희일비를 안하진 않고요. 확실히 덜 합니다.


이게 자잘하게 작은 일들이 20대 분들에게는 스트레스가 크게 다가올 일도 저는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멘탈갑인 것 같다, 이런 얘기를 종종 듣곤 하거든요.


육아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니
일희일비할 뇌 용량이 모자랄 뿐
나이가 들면
일희일비할 체력이 모자랄 뿐
일희일비할 뇌 용량이 모자랄 뿐
일희일비할 체력이 없을뿐



자동적으로 좀 겉으로 보기에는 쿨하고 멘탈갑인 사람인 것처럼 보이게 되는 거죠.



제가 얼마 전에 일주일에 한번 지도교수를 만나서 회의하는 시간에

너무 부끄러운 일이 생겼어요.

그날 따라 조금 더 진지한 내용이라 진지하게 발표를 하고 있는데 평소엔 마주 보고 앉아 있거든요. 그런데 제 작은 컴퓨터 화면을 봐야 될 일이 있어서 옆으로 나란히 앉았단 말이에요. 근데 발표를 하는데 사람이 뭔가 촉이 있는지, 저 (아래)쪽에 무릎에 뭔가 이상한 게 있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나머지 한쪽 눈으로는 모니터를 보면서 입은 계속 말을 쉬지 않고 떠들면서도 다른 한쪽 눈으론 그걸 자세히 관찰을 했거든요. 그래서 딱 봤더니 뭔가 동그랗고 하얀 거예요.



그 순간 뇌리를 팡 스치는 게 제가 그날 입었던 스포츠브라의 패드인 거죠. 너무너무 당황했는데 이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까 겉으로는 이것을 어떻게든 티가 안 나게 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표정 멀쩡하고 입으로 (나불나불) 계속 발표 내용을 떠들면서도 속으로는 난리가 난 거예요.


이거 어떡하지?!
옆에 이 남자 교수가 나랑 바짝 붙어 있는데 보지 않았을까?
봤는데 얘도 당황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대로 놔둘 순 없잖아요. 그래서 한쪽 손으로 그걸 꼭 쥐었어요.

그리고 영혼이 반쯤 다 나가있는 상태로 입은 계속 떠들면서 그거를 주머니 속에 슬그머니 넣었죠.






아마 교수가 봤을 수도 있어요. 제가 어릴 때 같으면 그 자리에서 너무 부끄러워서 당황해서 말을 이을 수 없었거나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얼굴도 빨개지고 그랬을 거에요.


분명히 집에 와서는 울었고

다음날 교수 얼굴을 어떻게 보지, 다 망했어. 학교 어떻게 갈까


별별 생각을 다 했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 관련해서 심각한 일들이 많고 진지하게 신경 써야 될 일이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거는 별 일이 아닌데 라고 생각이 드는 거예요. 뭐, 누가 다친 것도 아니고 누가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내가 화사를 짤리거나 박사를 짤린 것도 아니고 이게 뭐라고 이런 생각이 들고


집에 가서 미나리에게 얘기 해줘야 지.

아, 이거 웹툰으로 그려서 유튜브에 올려야지.

미나리한테도 재미있게 얘기해줘야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정말 예전에는 남의 시선을 신경 많이 쓰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이런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확실히 별별 일을 다 겪다 보니까 이런 일에는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거에요.


이 교수가 봤는지 안 받는지 알 수 없잖아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는 신경을 확실히 덜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분도 육아를 하시건 남들보다 나이가 많고 다른 힘든 점이 있건 그게 여러분의 강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오늘도 그냥저냥 삽시다.


화이팅.


https://youtu.be/yeh_4OR3nig







이전 10화 퇴사 후 유학 가버린 엄마의 육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