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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브 May 29. 2024

퇴사 후 유학 가버린 엄마의 육아

 미국 육아 서바이벌

  

오늘은 “엄마가 일/공부하면 아이는 어떻게 돌보고 계시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서 그에 대한 답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워킹맘이었는데 한국은 정말 육아 관련 제도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두 국가를 비교해 봤을 때 미국에서 아이를 키운 게 뭔가 부담이 덜하고 정신적으로 덜 힘든 것 같아요. 한번 생각해 보니까 사실 미국도 똑같이 워킹맘이라고 하면 정신없고 바쁘고 종종 거리게 되고 그렇거든요.


그런 크게 한 가지 느낀 건 미국에서 제가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면 배려를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꼭 육아하는 사람만 배려를 해주는 게 아니었고요. 예를 들어서 색맹인 사람을 신경 써주거나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을 배려해 주듯이, 아이를 돌보는 사람에 대한 것도 배려를 받는 것 같아요.


옆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걸 보고 자기도 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나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배려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하는 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 



공황발작

한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거는 제도적인 게 문제가 아니라 직장에서 눈치 보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무리 촘촘하게 계획을 다 짠다고 해도 사람이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 있잖아요. 아이가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 아니면 저처럼 어느 날 오전 출근했는데 갑자기 시터님이 오늘 오후에 못 오시겠대요,


아이는 3시 넘어서 하교를 하니까 그 때라도 오후반 차를 내고 집에 가면 문제가 없잖아요. 그런 제도가 문제가 아니고 “제가 육아 때문에 오후 반 차를 급하게 쓰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 분위기 있잖아요.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는 상사도 있고 된다고 하더라도 욕하는 상사도 있고 옆에서 눈치 보는 동료들도 있고 뒤에서 욕하는 동료도 있고. 


제가 다 알다 보니까 전화를 다 끊고 나서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는 거예요. 심장이 막 쿵쾅쿵쾅 뛰고, 손이 떨리면서 하늘이 빙글빙글 돌더라고요. 나중에 보니까 이게 공황 발작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난관에 부딪혔을 때, 절대 남에게 이해받을 수 없다, 배려를 받을 수 없다는 그 생각이 많이 힘들었던 것. 생각뿐이 아니라 실제로 배려를 받은 경험이 별로 없었어요.


이게 매일 있는 일이 아닌데도 일 년에 단 손에 꼽을 수 있는 몇 번만 생겨도 사람을 많이 피폐하게 만들더라고요. 



정이 많던 사회에서 배려가 줄어든 이유

저는 그때 배려를 해주지 않았던 상사나 동료를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해보니까 이게 남을 배려할 여유가 전혀 없어요. 제 업무가 제가 빠지면 제가 책임지는 거지, 다른 동료들에게 나눠지는 업무가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들 각자 삶이 너무 빠듯하고 팍팍하고 힘들고 그리고 내가 배려를 받아본 경험이 없고 옆에서 하는 걸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남을 배려를 하겠어요. 



저 사람이 무슨 일이 있건 무슨 사정이건 그건 저 사람 사정이고 

당장 내가 내 눈앞에 있는 삶이 힘드니까 

그냥 나한테 보이는 건 저 사람은 저런 핑계를 대고 일찍 집에 가는 모습인 거예요.



내가 죄인이구나...

그러다 보니까 내가 이걸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나중에 내 자식도 이렇게 살게 될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니까 많이 힘들었어요.

지친다..



그럼 미국이라고 다를까?

미국은 특히 학교에서 학부모가 참가해야 되는 이런저런 학교 행사가 정말 많아요. 제가 정말 놀랐던 것 거기 갔더니 엄마, 아빠가 다 와 있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야 학생이지만 그 사람들은 직장을 가는데도 불구하고 빠지고 올 수 있다는 거죠. 



미국 맞벌이 가정

제 친구들을 보면 맞벌이인데도 불구하고 둘이 나눠서 아이를 케어하는 게 가능해 보였어요.

제 친구는 아이 학교가 끝나면 아빠가 그 아이를 픽업해서 축구교실로 데려가고, 그 후 회사로 돌아가요. 나중에 엄마가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려와서 집에서 돌보다가 (부부) 둘이 함께 집안일도 하고 식사도 하고, 나중에 아이가 잠든 후에 남은 일을 처리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애초에 그렇게 잔여 업무가 남을 정도로 일이 많지도 않대요. 박사생의 예를 들어 볼게요. 제 동기 중 한 명은 얼마 전에 둘째를 낳았어요. 그래서 자기 지도교수와 얘기를 해서 풀 재택근무를 신청하고 수업도 연구도 전부 재택으로 하고 있어요.



갑작스러운 육아 공백이 생겼을 때

저도 지난 학기에 아이 학교가 쉰다는 걸 늦게 알게 되어서 급하게 조율을 해야 되는 일이 있었어요. 그날 제가 아이를 봤어야 했거든요. 급하게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내가 오늘 이런 일 때문에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어야 되겠다”라고 허락도 아니고 통보를 했죠. 했더니 바로 답장이 와서 “당연하지. 아이 돌보는 게 가장 먼저고, 가족이 최우선이지!” 이렇게 얘기를 해줘서 정말 고마웠거든요.



방학 동안에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방학이 가장 힘든 시간일 거예요. 여기서는 학원 같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방학에는 썸머캠프(여름학교)를 많이 보내기도 하거든요. 풀타임으로 가기도 하지만 저희처럼 오전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까 박사생들은 방학 전체를 커버해 주는 썸머캠프를 보내기는 힘들어요.


저 같은 경우 지도교수와 상의를 해서 언제는 출근을 하고 언제는 집에서 일을 하겠다, 이런 식으로 조율을 했거든요. 



한국에서 육아를 한다는 것은 책 잡힐 일

확실히 느낀 점은 이런 육아를 한다는 게 제가 한국에서는 굉장한 약점이었어요. 책 잡힐 일이기도 했고... 

미국에서도 제 강점은 안 되겠지만 약점으로도 절대 작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저 안경을 쓰는 사람이 있거나 머리가 긴 사람이 있고, 짧은 사람이 있고, 그냥 제 특징인 거지.

 저 같은 경우도 지도교수님이 한 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기 한 몸만 챙기면 되는 스물몇 살짜리 스케줄보다는
가족도 있고, 아이를 챙겨야 되는
너의 스케줄을 더 우선으로 생각해.


이렇게 말해줘서 너무너무 감사했었거든요.

자기 한 몸만 챙기면 되는 스물몇 살짜리 스케줄보다는 가족도 있고, 아이를 챙겨야 되는 너의 스케줄을 더 우선으로 생각해.



그러니까 입학하기 전이라면 미리 포기하지 마시고 함께 일하고 싶은 지도교수의 연구실이 어떤 분위기인지 좀 물어보고 얘기를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고요. 다니기로 한 학교라면 지도교수 하고 충분히 얘기를 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아는 분은 방학 때마다 한국에 가서 일을 해야 되는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배려를 받아서 그렇게 하고 계시거든요. 이런 식으로 육아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면 충분히 배려받을 수 있으니까 꼭 얘기를 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꼭 도전을 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용기가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ccy7RrEhCGU



https://youtu.be/YwQJv5la_fw?si=jD5rAlfpTIWXwj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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