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한가운데, 뜨거운 낮을 피해 가족 모두가 낮잠을 즐기던 주말이었다.
애매한 시간에 눈을 떠 창밖을 보니, 해는 아직 중천이었고 바람은 잔잔했다. 그때 문득, 늘 말만 하고 미뤄두었던 약속이 떠올랐다.
“오늘은 바다에 가보자.”
그렇게 우리는 망설임 없이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 아기는 신이 난 듯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가는 길을 즐겼다. 그렇게 도착한 해수욕장은 의외로 한산했다. 푹신하게 밟히는 모래사장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바다는 차갑게 발끝을 적시며 우리를 맞이했다. 시원한 바람에 마음까지 풀어지는 듯했지만, 아기의 눈빛은 금세 흔들렸다.
낯선 풍경,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크기에 압도된 듯 아기는 엄마 품으로 파고들며 “아냐, 아냐, 아냐”를 반복했다. 결국 첫 만남의 바다는, 아기에게 두려움으로만 다가온 채 멀어졌다.
우리는 잠시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꺼냈다. 해가 기울며 붉게 물드는 석양이 바다 위에 드리워졌다.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며 나는 아기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오늘은 조금 낯설었지만, 언젠가 너도 바다를 좋아하게 될 거야.”
아기는 대답 대신 주변에 있는 모래를 만지작 거리며 놀았다.
짧고 허무하게 끝난 ‘첫 바다 경험’이었지만, 우리 가족의 대화 속에서는 오래 남을 이야기가 되었다.
사실 나는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짠물의 끈적임, 놀이 후에도 씻어지지 않는 모래 알갱이, 햇볕을 가릴 곳 없이 쏟아지는 강렬한 햇살. 어린 시절부터 늘 불편했던 기억이 쌓여, 해변가에서 노는 것은 내겐 즐거움보다는 고역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굳이 바다까지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라는 이유 하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기 역시 나와 비슷했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모래가 낯설어 불편해했고, 파도의 차가움에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엄마 품에 꼭 매달려 낯선 세계를 두려워하는 모습은, 어쩐지 내 어린 시절을 보는 듯했다.
“아빠 물놀이 스타일을 닮았네.”
내 우스갯소리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변화가 찾아왔다.
해가 지고, 뜨겁던 모래가 서서히 식어가며 따뜻해질 무렵, 아기의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손을 잡고 모래 위를 조심스레 걸으며, 파도의 리듬에 발끝을 맡기더니 이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두려움은 조금씩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바다는 어느새 낯선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놀이터가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육아란 결국 이런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워도, 함께 있어주고 기다려주면 어느 순간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세상에 스며든다.
돌아오는 길, 나는 아기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생각했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인 동시에, 내 안의 오래된 습관과 감정을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바다를 늘 불편하고 귀찮은 곳이라 여겼지만, 아기의 눈을 통해 다시 보니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다.
내가 외면하던 세계도 아이 덕분에 새로운 의미를 얻고, 싫다고만 생각했던 순간에도 작은 행복이 스며든다.
아이가 나를 닮아가는 순간이 기쁘듯, 아이 덕분에 내가 변해가는 과정 또한 감사하다.
언젠가는 아기가 혼자서 바다를 마음껏 뛰어다니고, 파도에 몸을 맡기는 날이 오겠지.
그때 나는 또 다른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볼 것이다.
아기의 눈에 담긴 바다는, 결국 내 눈에도 다시 담겼다.
이제 바다는 싫은 곳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또 가고 싶은 풍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