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아주 서서히,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전혀 다른 일상이 되어 있다.
아기의 수면 패턴이 바뀌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에 따라 우리 부부의 하루도, 마음가짐도 함께 변해왔다.
아기가 태어난 첫 100일 동안, 밤은 말 그대로 ‘당직’이었다.
2시간 간격으로 깨는 아기를 번갈아 안아 재우고,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며 겨우겨우 버텼다.
누가 더 피곤한지 따질 겨를도 없었다.
그저 한 사람이 쓰러지면 다른 사람이 일어나는 식으로 돌아갔다.
정신은 항상 흐릿했고, 하루가 어디서 시작되고 끝났는지도 모르던 날들이었다.
그 시기를 지나 아기가 처음으로 4시간, 6시간, 그리고 온전히 밤을 자는 날이 왔을 때, 우리도 처음으로 ‘잠’이라는 걸 제대로 누릴 수 있었다.
그때 느낀 회복감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살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아기가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고 모든 게 갑자기 편해지는 건 아니었다.
아기를 재운 뒤 찾아오는 그 짧은 자유 시간.
그 시간이 오면 우리는 본능처럼 뭔가를 하고 싶어진다.
밀린 드라마를 보고 싶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싶고,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싶다.
사실상 하루 중 유일하게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자꾸만 늦어진다는 거다.
“이 시간만큼은 쉬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밤의 여유가 어느새 새벽 2시, 3시가 되고, 아침이 되면 다시 피곤이 몰려온다.
결국 우리는 결단을 내렸다.
그냥 아기와 함께 자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생산적인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 대신, 충분히 쉬고 에너지를 회복하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기로 한 것이다.
아기를 재우고 같이 잠들면, 그다음 날 아침이 조금 더 여유로워진다.
그래서 지금은 저녁 너머 새벽보다 아침을 택한다.
아기가 아직 깨지 않은 이른 시간, 조용한 부엌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하고, 거실을 치우거나 따뜻한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준비한다.
새벽의 감성 대신 아침의 선명함이 우리에게 맞는 루틴이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생활도 쉽지 않았다.
나는 밤형 인간에 가까웠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와이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가 아기에게 맞춰야 했고, 그 변화에 적응하면서 어느새 우리만의 생활 방식이 자리 잡았다.
물론 이 패턴이 영원히 유지되진 않을 거다.
아기가 말문을 트고, 감정 표현이 더 많아지고, 하루의 변수들이 더 커지면 또 바뀌겠지.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지금 이 시간들이 소중하다.
힘들지만, 안정된 패턴 안에서 하루를 꾸려나가는 지금이, 우리 가족이 단단해지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육아는 끊임없는 조율의 과정이다.
누구는 더 자고 싶고, 누구는 더 쉬고 싶다.
하지만 서로를 지켜보며 조금씩 양보하고, 때론 보이지 않게 채워주려는 노력이 쌓이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견고해진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느긋해졌다.
‘이 시간에 꼭 뭔가를 해내야 해’라는 마음이 사라지니까,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여유로운 시선이 생겼다.
아기가 잘 때 나도 쉬어야 한다는 말, 처음엔 그냥 육아서에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이해가 된다.
그건 단지 피로를 줄이자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여전히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이렇게 작고 사소한 루틴 속에서 이뤄진다.
하루를 조금 더 일찍 시작하고, 밤을 조금 더 일찍 마무리하는 일.
아기를 재우고 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마음을 인정하고, 그 마음을 억지로 끌어올리지 않는 것.
서로를 위해 잠시 멈추고, 대신 내일을 잘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함께 하는 것.
이런 일상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30대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또 ‘나’ 자신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성장의 순간들을 아기와, 아내와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지금이,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