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선택하는 기준

얼마나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가?

by 크리스틴

벌써 며칠 째, 회사 출입문은 나를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다시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대고 힘껏 누르지만 일치하는 지문이 없다는 메시지만 표시한다.




오래전부터 내 지문은 기기에 잘 협조하지 않았고 오직 아이폰 만이 까다로운 내 지문을 감지해냈다. 친구들은 은행을 털어도 잡히지 않을 거라며 농담을 던지곤 했다. 허드레 일로 지문이 닳은 것도 아닌데 무슨 까닭인지 오전에 등록한 지문도 오후가 되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나를 발견한 직원이 문을 열어주거나, 다른 직원의 뒤를 쫓아 급하게 안으로 들어서곤 했다. 덕분에 나만 항상 출입카드를 발급받았다.



직원 1명이 추가되면 그 사람을 조직에 포함하기 위해 회사도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컴퓨터와 주변기기, 출입카드 등 각종 장비로 시작해서 이메일, 사내 인트라넷 계정, 업무 폴더 접근 허용부터 4대 보험 신고까지. 회사 입장에서 사람이 들어오고 나간다는 자체만으로 꽤 많은 뒤처리가 필요하다. 그렇게 신규 입사자는 시스템 안팎으로 많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신규 입사자가 제 몫을 하는 직원이 되려면 적어도 한 달은 지나야 한다. 경력자라고 해도 업무 프로세스와 협업 방식 등 조직이 움직이는 법을 익히고 업무와 동료들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몇몇 회사는 빠른 적응을 위해 일감을 먼저 던지거나, 인턴 제도를 통해 회사와 입사자가 서로 탐색하는 기간을 공식적으로 두기도 한다. 회사는 입사자가 제 몫을 해낼 수 있을 때까지 일종의 투자를 하는 셈이다. 입사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인지, 다니기에 적절한지 등을 판단한다.



한 달, 일주일, 하루, 반나절-

내가 입사부터 퇴사까지 짧게 머물렀던 시간들이다. 입사하고 몇 주가 지난 경우 한 달 월급은 챙겨 나오자는 생각에 버텼다. 며칠이 지났다면 일주일은 버텨야 다만 소액이라도 받겠지 싶어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하루나 반나절 만에 나온 곳들은 개인적인 기준으로 더 이상 볼 것도 없다고 판단했던 회사들이었다. 무조건 입사가 목적이니 이력서를 숱하게 뿌렸고, 뽑아준 회사에 출근했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날로 나오는 패턴을 반복했다.


지인들은 신중하게 선택하라며 하루 만에 마무리 짓는 모습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한번 들어갔으면 최소 1년은 지켜봐야 맞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나는 제대로 선택을 한 것인지 직접 확인해야 했고 잘못된 선택이라면 빠르게 끝을 맺어야 한다고 여겼다.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 먹어보겠다는 마음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었다.


그렇게 회사를 몸소 경험하다 보니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대충 감이 오기 시작했다. 몇 가지 단서만으로 회사를 파악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물론 여기서 파악의 기준이란 ‘내가 다닐만한 곳인지’이다.



일주일은 버티던 것이 점점 사흘, 하루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반나절 만에 나오는 일이 벌어졌다.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자는 생각에, 퇴사 의사와 이유를 밝히는 것만은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의사를 전달했을 때 뒤따라오는 반응은 보통 극단적이다.


‘하루 만에 어떻게 알아요?’ vs ‘와~ 하루 만에 대부분 파악하셨군요.’

‘너무 성급하신 것 같습니다.’ vs ‘하긴.. 아니라면 빠르게 결정하는 편이 낫죠.’

‘어떤 회사를 원하시는 겁니까? 기준이 너무 높으시네요.’ vs ‘적응이 쉽지 않으셨죠?’

대부분 비판하는 전자는 팀장 이상의 높은 직급들이었고 후자는 동급의 실무진 쪽이다.


그럼에도 다닐만한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되도록 빠르게 정리했고 이후로도 이런 생각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갔다. 이왕이면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각종 권한 부여 등 초기 세팅을 마무리하기 전에, 인수인계를 전부 받기 전에, 4대 보험 등의 신고를 마치기 전에.


당시에 내가 생각하던 기준은 이러했다.

눈치 보느라 불필요하게 야근하지 않을 것

근퇴를 1분 단위로 예민하게 체크하지 않을 것

업무에 지장 없는 적당한 장비를 제공해줄 것

여자 직원들끼리 모여 신변잡기 잡담을 하며 무리가 나뉘는 분위기는 아닐 것

상명하달식 군대문화는 아닐 것

화장실이 깨끗하고 남녀공용이 아닐 것

그 외

누군가는 입사자의 패기라고 하기엔 몹시 터무니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구직자는 나름의 잣대로 회사를 선택하기 마련이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저런 조건이 맞으면 연봉은 크게 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족하는 곳에 들어가면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하리라 다짐했다. 업무에 관해서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다. 부족한 부분은 노력으로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누리고 싶었다.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성급하지 않고 신중할 때의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내 타고난 기질은 환경에 적응하며 나를 바꾸어나가기보다 내가 원하는 환경이 나타날 때까지 몸이 고생하는 걸 택했다. 하늘 아래 어딘가 온몸을 바쳐 일하고 싶은 회사가 몇 개쯤은 있을 거라 믿었다.


어느 회사를 가도 다 똑같다고 말하지만, 왜 다른 사람이 일하는 회사가 항상 부러운 것일까?



원하는 회사의 기준이 있어도 현실에선 경력과 실력을 탓하며 적당히 타협하고 입사를 한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동일하다. 머지않아 후회를 하지만 누군가는 버티고 누군가는 퇴사를 한다. 버티는 자는 퇴사자를 부러움의 눈길로 쳐다본다.


카드대금과 월세에 쫓기는 인생이지만 아니라고 판단하면 빠르게 정리하는 내 성향은 주변의 부러움, 시기,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숲이 아니라 나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름다운 숲이 아니라 하나하나 내 성미에 맞는 나무 몇 그루만 보았다.


그 일을 해서 장차 어떻게 되어야지 보다 일하고 싶은 환경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남들처럼 무조건 오래 다니는 것이 목표였고, 이를 위해 내가 발붙일 곳의 소소한 것들이 중요했다.


만약 미래의 큰 그림이 있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당시 생각했던 흐릿한 그림은 오래 버티며 성과를 내고 인정받는 팀장의 모습이었다. 안정적인 위치를 그렸을 뿐 여전히 자신에 대한 이해 수준은 타인보다도 못했다.


당신은 얼마나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가?
어떤 기준으로 회사를 선택했는가?
그 기준은 당신의 어떤 부분을 담았는가?
현재 당신의 그림은 무엇인가?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자신만의 숲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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