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블라 거리를 지나 호스텔로 가는 동안 발길 닿는 거리 곳곳에서 노란 리본이 눈에 띄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어떻게 세월호를 알게 됐는지 궁금하고 고마웠다. 몇 시간 뒤, 여행객이 마음까지 읽는 야경 투어 가이드가 호기심을 풀어주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노란 리본을 많이 보실 텐데요, 여기서 보는 노란 리본은 세월호 아이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그 노란 리본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카탈루냐가 궁금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이드가 말을 이었다. "바르셀로나를 주도로 하는 카탈루냐는 1714년에 스페인에 병합됐지만, 여전히 독립을 요구하고 있어요. 카탈루냐가 2017년 독립을 선언하자 스페인 중앙정부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어요. 주도한 사람을 반역죄로 체포했고요.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체포된 사람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제야 모든 궁금증이 사라졌다.
건물 여기저기에 걸린 노란 리본은 이른 새벽부터 나를 반겼다. 눈은 노란 리본의 숫자를 세고 다리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향했다. 백 미터를 지나는 동안 노란 리본을 열 개나 보았다. 스페인에 병합된 지 3백 년이 더 지났는데도 여전히 독립을 포기하지 않는 카탈루냐가 대단했다.
우리나라의 남북통일이 생각났다. 대한민국 헌법 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에 따라 어릴 때부터 받은 충실한 통일 교육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부르고 들었던 동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덕분에 남북통일은 대한민국의 당연한 과업이라 여겼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통일은 오리무중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묻는다. “꼭 통일해야 해?"
통일 교육을 철저히 받은 나는 통일이 분단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만, 통일로 인해 생길 문제도 눈에 아른거린다. 통일이 된다고 해도 만만찮은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통일 이후에 별문제 없이, 오히려 더 굳건히 잘 사는 나라 독일이 떠올랐다. 통일이 될지 모르지만, 만약 된다면 독일처럼 강대국이 되면 좋겠다.
람블라 거리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시작해 바르셀로나 해변으로 이어진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역동적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 같다. 보케리아 시장, 구엘 저택, 콜롬비아 동상 같은 관광 명소도 이곳에 있다. 행위예술가들은 관광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낮에 이 길에 들어서면 사람에 밀려다닌다.
지금은 휑하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라도 새벽의 풍경은 한결같다.
잠시 뒤면 수많은 기념품 가게가 람블라 거리를 더 매력 넘치게 만든다. 가게 사이에 보이는 빈자리도 노점상으로 채워진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와 FC 바르셀로나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모든 기념품에는 당연한 듯 가우디와 바르셀로나와 관련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거리에서 쇼핑 욕망을 이겨내기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기만큼 어렵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기념품을 사는 편이다. 병따개, 잔은 컵, 컵 받침대 같은 소품은 여행지의 추억을 잘 간직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기념품을 선물하기에는 조금 아쉽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다. 정말 소중한 지인에게는 정성을 담은 선물을 따로 준비한다.
몇 년 전 꽤 괜찮은 선물을 알게 됐다.
국내에서 어느 여행지에 갔더니 느린 우체통이 있었다.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배송되는 방식이었다. 호기심으로 엽서를 써 우체통에 넣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1년 뒤 엽서가 왔다. 엽서가 특별히 예쁘지 않았는데도 엄청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때부터 엽서를 선물로 선택했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엽서를 보내면 배보다 배꼽이 크다. 우편료가 엽서보다 비싼 웃지 못할 촌극이 펼쳐진다. 대신 한 나라의 상징을 담은 우표와 소인은 가격을 따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고 엽서를 좀 더 멋지게 만든다.
어제 람블라 거리를 구경하다 호객행위를 하는 검은색 청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는 FC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판매하고 있었고 축구와 메시를 좋아하는 아들은 메시 유니폼 앞에서 비석이 됐다. 아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물었다. “Kid size?"
신이 난 그는 리듬을 탔다. 내가 지갑을 꺼내는 동안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청년은 서둘러 좌판을 접으면서 나를 흘끗흘끗 쳐다봤다.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자리를 떴다.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지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눈앞에서 사라질 즈음 경찰이 나타났다. 그제야 긴장감의 정체와 그가 사라진 이유를 알게 됐다.
노점상은 당연히 불법이고 그는 불법 이민자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불법 이민자가 거의 없지만 유럽에는 어느 나라나 흔했다. 여기 바르셀로나도 많지만, 파리의 관광지는 그들이 점령한 것처럼 느껴졌다. 불량스럽게 느껴졌지만 사실 그들은 전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기념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건실한 청년들이다.
메시 유니폼은 잠시 제쳐두고 옆에 있는 기념품점에 들렀다. 집에 두면 기념품 누군가에게 보내면 선물이 되는 엽서를 골랐다. 하나같이 가우디의 작품이 사진이나 그림으로 들어가 있었다.
카페에 갔다. 먼저 나에게 쓰는 엽서를 썼다.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나에게 쓰는 엽서가 낯설지 않았다. 가족들에게도 쓰라고 권해 온 가족이 서울에서 만날 미래의 자신에게 엽서를 썼다.
미래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가 희망이다. 나에게 쓰는 엽서에는 희망이 담겼다. 달리기 진구들에게도 썼다. 오래 함께 달리며 우정을 쌓자고 했다.
엽서는 긴 시간 세계를 유람하다 어느 날 친구들 앞에 짠하며 나타난다.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 훨씬 가치 있고 멋진 선물이 되지 않을까? 두 발로 흔적을 남기는 여행자와 누군가의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 엽서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건 덤이다.
세 시간 후,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검은색 청년을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다시 만났다.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는 람블라 거리에서 자리를 옮겨 1킬로 남짓 떨어진 해변에 좌판을 깐 것이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쉽게 알아보기 쉬지 않지만, 우리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로를 알아봤다.
건장한 청년은 메시의 발재간을 흉내 내기도 하고 아들의 상체에 옷을 갖다 대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검은 피부에 드러난 하얀 이빨은 건장한 청년을 귀여운 청소년으로 바꾸었다. 메시 유니폼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산 유니폼이 정품은 아니었지만, 물건을 흥정하고 저렴한 가격에 사는 재미가 있었다.
축구 경기를 보면 흑인들은 대체로 실제보다 나이가 들어 보인다. 이 친구도 그런지 시험 삼아 물어봤다. "27?"
그가 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19"
역시나 그도 노안이었다.
어제의 추억을 떠올리는 사이 어느새 람블라 거리의 끝에 다다랐다. 콜럼버스를 만났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사람이 아닌데도 바르셀로나의 요지에 우뚝 서 있다. 그가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의 말로 표현하면 이렇다.
"나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평민 출신이야. 자란 곳은 세계를 향한 선박으로 넘쳤고 동양에서 온 진귀한 물건도 많았지. 언젠가는 동양으로 가는 꿈을 꿨어. 지도 제작자로 명성을 얻어 포르투갈의 부유한 귀족을 아내로 맞았지. 덕분에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게 됐어."
"꿈을 멈추지 않았고 포르투갈은 물론 프랑스 같은 강대국을 찾아다니며 후원을 요청했어. 번번이 퇴짜를 맞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어. 결국 이곳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에게 후원 약속을 받아냈지. 우여곡절 끝에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하며 꿈을 실현했어."
"나는 죽을 때까지 그곳이 인도인 줄 알았어. 웃기지만 그곳이 아메리카 대륙이라 더 유명해졌어. 내가 그곳을 발견한 이후에 아메리카가 유럽에 알려졌거든.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잖아?"
"정작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말하지 않았군. 내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넘어갔고 스페인어는 지금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가 됐어. 내가 결정적 기여를 한 거지. 여담으로 1등은 중국이야. 워낙 인구가 많으니까. 정작 1등일 것 같은 영어는 3위라고. 이제 내가 이곳에 서 있는 이유를 알겠지?"
우리나라에 세종대왕 같은 영웅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콜럼버스가 있는 것이다.
바르셀로나 해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둘러싼 지중해다. TV나 책에서 지중해를 봤을 때 늘 궁금하고 신비로웠다. 지중해에서 수영하기는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소망이었다.
6년 전 바르셀로나에 처음 왔을 때였다. 지중해가 나를 불렀고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무작정 바르셀로나 해변으로 달렸다. 그때는 오늘처럼 여유롭게 달리지 못했다. 요리조리 사람을 피하며 달렸다.
해변 모래사장에는 몸짱 청년들이 팬티 한 장만 입고 열심히 운동 중이었다. 바르셀로나는 열정 덩어리였다. 그들을 바라보자 한 청년이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외쳤다. "닛폰 가이!"
속으로 '네 뽕이다.'라고 했지만, 겉으로는 손을 들어 고마움을 표했다. '코리안 가이'라고 외쳤으면 더 기분이 좋았겠지만, 그 청년은 내가 진짜 일본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6년 지난 지금 그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K-pop 코리안."
그때 열정적인 근육맨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무중력 상태로 달렸다. 달리기에 몰입해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W 호텔이 보이는 어느 곳에서 지중해에 풍덩 안겼다. 소망 하나가 이뤄졌다.
검은색 청년과 헤어진 뒤에는 가족들과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6년 전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수영한 경험으로 해변에서 수영하기는 여행 계획을 짤 때부터 반드시 해야 할 코스였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이상저온이 이어졌다. 바다에 들어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다.
그냥 단념할 수는 없었다.
바닷가로 가기로 한 날 날씨는 생각보다 훨씬 싸늘했고 빗방울마저 내렸다. 정오가 막 지난 시간, 오후에 날씨가 갠다는 예보만 믿고 바다로 향했다. 해변에 도착했을 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놀고 있었다. 역시 외국인은 지구인이 아닌 외계인이다. 바다에 뛰어드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외계인들은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 안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들과 모래사장에서 술래잡기 놀이를 했다. 그러는 동안 구름이 걷히고 그 사이로 태양이 드러났다. 태양이 떠오른 순간, 사람들이 왜 바르셀로나를 태양의 도시라 부르는지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 쌀쌀하던 날씨는 온데간데없고 뜨거운 태양이 땀샘을 자극했다. 수영복 밖에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살짝 차가운 물에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바로 적응했다. 지중해는 시간을 순식간에 잡아먹었다.
아들의 입술이 파랗게 됐을 때 물 밖으로 나왔다. 아들을 눕혀놓고 모래를 이불 삼아 덮어주었다.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아들을 보며 따라 웃었다.
우리 옆에서는 스페인 가족 삼대가 모여 놀고 있었다. 그들과의 거리는 고작 몇 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의 웃음은 곁에 있던 그들에게 전파됐다. 그들은 비치발리볼을 멈추고 따라 웃었다. 그들에게 호감을 느낀 우리는 비치발리볼 경기의 관객이 됐다. 삼대가 한데 어울려 노는 모습이 지중해만큼이나 멋졌다.
W 바르셀로나 호텔에서 잠시 멈춰 드넓게 펼쳐진 바르셀로나 해변을 바라보았다. 6년 전 이곳에 온 것처럼 6년 뒤에도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지 궁금했다. 6년 뒤에도 나는 여전히 러너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그러고 싶었다. 다시 이곳을 찾아 달리고 싶었다.
거칠어진 호흡이 가라앉았을 때 다시 숙소로 향했다. 바닷가에 정박한 요트가 보였다. 누군가 요트를 탄다고 하면 대단한 부자로 생각한다. 부자만 요트를 탈 수 있을까? 무엇이든 소유해야 즐길 수 있을까? 비싼 운동이라는 골프도 회원권을 소유해야만 즐기는 건 아니다. 모든 스포츠와 레포츠가 꾸준히 하는 취미가 될 필요도 없다. 한 번 하는 체험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경험과 추억이 된다. 철원에서 했던 번지점프와 단양에서 했던 패러글라이딩이 떠올랐다. 머리는 벌써 요트를 탈 계획을 짜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옛날 추억을 돌아보느라 거북이가 됐다. 다시 속도를 높여 토끼가 되자 발걸음 소리가 경쾌해지며 호흡도 반 박자 빨라졌다. 그제야 진짜 달리는 느낌이 났다.
엽서를 붙였던 바르셀로나 중앙우체국이 보였다. 엽서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났다. 그곳에서부터 호스텔까지는 한껏 부풀어 오른 마음으로 달렸다. 우편을 받을 미래의 나와 친구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해외에서 보낸 엽서는 여행자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여행을 이어간다. 십여 일에서 한 달 후에야 수신자에게 도착하며 여행을 끝낸다.
엽서를 보낼 때 수신자에게 알려주면 기다리는 재미로 설렌다. 엽서를 넣는 사진을 찍어 보내면 충분하다.
일주일 뒤 유럽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설렜다.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 나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는 여전히 세계여행 중이었고 언제 올지 예측할 수도 없었다. 언제쯤 오려나 싶은 생각에 하루하루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유럽 여행이 여전히 계속되는 느낌도 들었다.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가 먼저 도착했다. 친구들이 엽서 잘 받았다고 고맙다고 했을 때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며칠 뒤 나에게 보낸 편지도 왔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낸 응원과 희망의 메시지였다. 그 엽서를 보고 있으니 좀 더 힘차게 하루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보낸 깜짝 엽서가 왔다. 언제 엽서를 보냈냐며 묻는 아내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새벽 러너가 취향인 나에게 남는 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