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응원의 힘

선수가 아니라면 응원/런던

by 막시

세계 4대 메이저 대회에 속하는 런던마라톤은 매년 4월 넷째 주 일요일에 열린다. 선수들은 그리니치 공원을 출발해 템스강을 따라 타워브리지,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 런던의 주요 관광 명소를 거쳐 여왕이 있는 버킹엄궁에 골인한다. 마라토너라면 누구나 달리고 싶은 대회다. 대회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달릴 수 없던 나는 당연한 듯 응원을 하기로 했다.

마라톤에 막 입문했을 때 한 해에 42.195km를 두 번 이상 달리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춘천 마라톤 대회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러닝 클럽에서 응원단을 모집했고, 달릴 계획이 없던 나는 알 수 없는 호기심으로 응원단에 합류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고 그 후 1년에 한 번은 응원단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런던 마라톤을 신청하지 못한 나는 응원을 선택했다. 한국이 아닌 런던에서도 응원을 통한 의미 있는 경험을 누리고 싶었다.


런던마라톤 대회가 열리기 전날 무료 전망대로 유명한 스카이가든에서 템스강을 내려다보았다. 스카이가든 전망대를 예약한 이유는 런던마라톤의 코스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창하던 런던 날씨는 둘째 날부터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숙소를 나설 때만 해도 해가 떠 있었는데 스카이가든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피할 겸 이른 점심을 먹고 예약 시간에 맞춰 줄을 섰다. 우리 앞에는 족히 백 명은 기다리고 있어 한숨이 나왔다.

앞에 선 배불뚝이 영국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아내는 모델급 미모와 8등신의 몸매를 자랑했다. 그들 부부는 딱 미녀와 야수였다. 영국 남자는 굉장한 수다쟁이였다. 영국 날씨부터 시작해서 축구로, 한국의 삼성 스마트폰과 현대차를 거쳐 자신의 여행 계획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가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영국 사람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을까?

그는 사람들로 꽉 찬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말을 멈췄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말을 이었다. 그와 같이 있다가는 반밖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느라 관광도 반밖에 못 할 것 같았다. 얼른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가 가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원형 전망대의 특성상 30분쯤 후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됐는데 그는 나를 보자마자 웃으며 다가왔다. 역시나 반밖에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를 시작했다. 마치 광고 후 방송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동양에서 온 낯선 이방인에게 호감을 느끼고 이야기한 그가 고맙긴 했지만, 우리의 여행이 더 중요했다. 그가 말을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재빨리 고맙다고 하고 헤어졌다.


템스강 언저리에 있는 스카이가든은 155m 높이에서 런던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내부 창에는 런던의 주요 관광지가 표시되어 있다. BTS가 런던 웸블리 공연을 앞두고 있던 때라 웸블리 구장부터 찾았다. 딸이 BTS의 열렬한 팬 ‘아미’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웸블리는 런던 국가대표팀의 홈구장보다는 밴드 '퀸'이 공연했던 라이브 에이드가 열렸던 곳으로 더 유명하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영향이다. 비틀스와 퀸을 낳은 런던에서, 더군다나 영국의 상징인 웸블리에서 공연하는 BTS가 더없이 자랑스러웠다. 그런 멋진 젊은이들이 있어 한국의 앞날은 밝을 것이라는, 한국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애국적인 생각을 했다. 런던에서 머문 일주일 동안 딸은 BTS와 웸블리를 번갈아 말했다. “BTS, 웸블리, BTS, 웸블리….”

딸의 소원을 애써 못 들은 척하며 런던마라톤 코스도 잊지 않고 찾아보았다. 출발지와 도착지인 그리니치 천문대 공원과 버킹엄 궁전은 물론 우리가 응원할 지점인 타워브리지와 빅벤도 빼먹지 않았다. 코스를 찾아보는 동안 직접 선수로 참가하면 더 좋을 거라는 아쉬움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런던마라톤 대회 날이 밝았다. 내가 선택한 응원 장소는 36km 타워브리지와 41km 빅벤이다. 마라토너에게 36km 지점은 가장 힘든 곳이고 41km 지점은 마지막 힘을 내는 곳이다. 다른 어느 곳보다 응원이 절실하다. 오후 두 시에 타워브리지에 도착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세인트폴 대성당을 시작으로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 테이트 모던을 봤다. 세인트폴 대성당은 영국의 역사를 대표하는 성당으로 영국의 영웅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과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이 거행된 곳이다. 테이트 모던은 방치된 발전소를 최고의 현대 미술관으로 바꾼,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다.

세인트폴 대성당과 현대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 사이에는 영국이 밀레니엄을 기념해 만든 밀레니엄 브리지가 있다. 이름은 웅장하지만 겉보기에는 작고 평범해 웅장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타워브리지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하지만, 다리가 가진 의미를 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밀레니엄 브리지는 관광지와 여행자를 잇는, 온전한 보행자 전용 다리이면서 영국의 역사인 세인트폴 대성당과 영국의 현재인 테이트 모던을 잇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 런던의 상징인 타워브리지보다 훨씬 멋져 보였다.

한강이 떠올랐다. 한강에는 사람만을 위한 인도는 없다. 한강에도 자동차를 위한 다리가 아닌 온전히 사람만을 위한 다리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고 유모차와 노인들을 맞이하는 곳, 사랑하는 연인들과 젊은 청년들이 미래를 이야기하는 한강 다리를 상상했다. 만약 그런 다리가 생기면 제일 먼저 그 다리를 달리는 러너가 되고 싶다.


테이트 모던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는데 템즈강변을 줄지어 달리는 선수들이 보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타워브리지로 향했다.

세인트폴 대성당, 밀레니엄 브리지, 테이트 모던. 이 세 관광지를 제대로 보려면 종일로도 모자란다. 그것을 반나절에 다 볼 거라고 계획했으니 애초에 잘못된 계산이다.

계획 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 늦게 타워브리지에 도착했다. 대회가 시작된지 대략 다섯 시간이 지났다. 선수들의 주로가 질서 정연하게 통제되고 있어 놀랐다. 한국의 주요 마라톤 대회는 제한 시간을 5시간으로 두고 그 이후에는 교통통제를 푼다. 주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인도에서 달린다. 서울의 주로와 런던의 주로는 완전히 달랐다.

주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있는 것도 놀라웠다. 그중에는 나처럼 관광객도 많았을 테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주자들만 대회장으로 이동하지만 런던에서는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대회장으로 이동한다. 성인 남자가 선수라면 그의 부모와 아내, 두 아이가 함께 대회 주로에서 응원하는 식이다.


가장 힘겨운 구간에서 본인과 끊임없는 싸움을 하며 정신력으로 버텨내는 주자들이 달리고 있었다. 한 여성 러너가 달리기를 걷기로 바꾸고 자원봉사자에게 다가갔다. 내가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몇 차례 말을 나눴다. 고개를 몇 차례 끄덕인 선수는 자원봉사자가 건넨 물을 마시고 자원봉사자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짐작하건대, 그녀는 “더는 달리기 힘들다”라고 말했을 것이고 자원봉사자는 “당신은 지금까지 잘 해왔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완주를 할 수 있다”라고 응원했을 것이다.


몇 년 전 춘천마라톤에서 응원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피에로 복장을 하고 신매대교를 지난 38km 지점에 있었다. 나를 지나치는 거의 모든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들의 등에 새겨진 이름 또는 소속을 부르며 파이팅을 외쳤다.

어느 여성 러너가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저 좀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같은 러너로서 그녀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돼 안아주었다.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말했다. "고마워요, 다시 끝까지 달릴 거예요."

사람이 힘겨워할 때는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어루만져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다시 정신이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힘겹게 달리던 어느 남자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정말 나를 향해 오는가 싶어 놀라는 순간 내 옆에 있던 어린아이 곁으로 가서 활짝 웃었다. 힘겨운 숨을 몰아쉬면서도 펜스를 사이에 두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그는 더없이 밝았다. 아이가 들고 있는 긴 깃대에는 녹색 인형이 꽂혀 있었다. 아마도 아빠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만든 표식이었을 것이다. 아이 옆에는 그의 아내와 유모차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아이가 있었다. 세상 누가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웃는 모습으로 그와 그의 가족들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완주와 가족의 행복을 빌며.


작년 봄 서울국제마라톤 때였다. 2년 만에 다시 서브 3에 도전했다. 충분한 훈련을 하지 않아 마라톤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다. 38km에서 서브 3를 포기했다. 러너들과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달렸다. 잠실 종합운동장을 이백 미터쯤 앞둔 지점에서 나를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고 감격했다.

마라톤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그것도 예고 없이 아내와 아들이 응원 온 것이다. 펜스를 사이에 두고 아들과 볼을 비비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전에 없던 에너지가 온몸 가득 차올랐다. 서브 3를 포기한 상태였지만,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다. 전력으로 결승선에 들어갔다. 며칠 후 근처에 있던 지인이 아들과 나의 애정 행각이 담긴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행복은 영원히 남겨졌다.

옛날 생각에 잠긴 동안 아내와 아이들은 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하고 템스강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간혹 특이한 복장을 한 사람을 보고는 아빠도 같이 봐야 한다며 나를 불렀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응원했고 그들을 위해 박수쳤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본인의 길을 가는 자는 충분히 응원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지하철을 타고 빅벤으로 갔다. 지하철역은 마라톤 복장을 한 사람과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몰려 인산인해였다. 옴짝달싹하지 못할 상황이었으나 경찰의 안내 덕분에 별 탈 없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지하철역 바로 앞에 주로가 펼쳐졌고 여전히 많은 선수가 달리고 있었다. 선수들이 출발한 지 6시간째였다.

모든 러너는 마지막 1km 팻말을 보는 순간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힘을 얻는다. 선수들은 고통을 잊고 감격스러운 골인 장면을 떠올린다. 온몸에 다시 힘을 모으고 달리기에 몰입하는 선수들에게 더 큰 박수를 보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의 모습을 한 채 달려가는 주자를 본 순간 내 눈은 그에게 고정됐다. 마라톤 대회에서 여장한 남자나 어벤저스 같은 캐릭터 복장을 한 사람은 자주 봤지만, 십자가를 짊어진 러너는 처음이었다. 플라스틱이나 솜 같은 가벼운 재료로 만든 십자가일 것이 분명했지만, 누더기를 걸친 채 맨발로 풀코스를 뛰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왜 이런 복장으로 달릴까? 분명히 종교적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했다. 단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했다면 달리기에 불편하지 않고 좀 더 화려한 복장을 선택했을 것이다. 예수의 복장을 한 채로 달린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고통을 당하면서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했던 일이 한 번도 없는 나는 그가 존경스러웠다.


런던에 처음 방문했지만 마치 서울국제마라톤을 응원하는 것처럼 모든 상황이 자연스러웠다. 그건 세인트폴 대성당 앞 관광안내소에서 만났던 친절한 직원 덕분이다. 그녀는 특별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밝은 미소와 친절한 태도로 말했다. "오늘 런던마라톤이 있으니 관광하기엔 불편할 수도 있어요."

런던마라톤을 보며 응원할 계획이라고 하자 런던마라톤 코스 지도를 주면서 응원하기 좋은 위치를 몇 개 알려줬다. 한국에서 왔다는 내게 그녀는 K팝을 너무 좋아하고 언젠가는 꼭 서울을 방문하고 싶다며 우리 가족의 자부심까지 높여주었다. 그녀의 조언과 코스 지도를 활용해 최적의 응원 동선을 짰고 관광과 마라톤 응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런더너는 콧대가 높다고 했는데 그녀는 얼굴의 콧대만 높았다.


한국에서 풀코스 마라톤 대회를 달리다 보면 자원봉사자나 경찰에게 욕을 하는 사람을 꼭 만난다.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횡단보도를 통제한다고, 자동차를 막는다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욕을 뱉는다. "왜 마라톤 대회를 하고 지랄이냐, 여기 왜 막고 지랄이냐?”라며 주로 지랄을 찾는다.

런던에서 마라톤 대회를 두 시간 이상 지켜보면서 한 번도 그런 상황을 본 적이 없다. 웃음과 응원 소리만 가득했다.

부러웠다.

대회를 달릴 때 욕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쉽고 화도 난다. 대부분의 러너는 다른 사람들의 욕을 듣고 그러려니 하지만 가끔 같이 욕을 하는 러너도 있다. 길을 통제한다고 욕하는 사람과 달리면서 욕하는 사람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그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러너를 욕하는 사람은 대체로 그 도시의 주인이고 러너는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서 온 손님이다. 주인이 손님을 향해 욕하지 않듯이 손님도 주인을 향해 욕하지 않는다. 그것이 예의다. 그래야 손님은 다시 방문하고 주인도 다시 초대한다.


서울국제마라톤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욕을 듣지 않고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서울 시민은 주인으로서 러너는 손님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길 바란다.

한국에서 응원한 경험이 없었다면 런던에서 응원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나 좋은 경험은 좋은 경험으로 이어진다. 런던마라톤 응원은 즐겁고 보람찼다. 가족의 행복과 친구의 우정에 흐뭇해졌고 최선을 다하는 러너와 예수 모습으로 달리는 러너는 감동적이었다. 달리고 싶은 대회를 달릴 수 없다면 다음에도 나의 선택은 응원일 것이다. 응원은 받는 러너뿐만 아니라 하는 나에게도 힘을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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