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와 얼그레이파운드케이크
가을의 선선함이 이젠 제법 익숙해질 무렵, 경쾌한 선율의 재즈를 들으며 집 근처 단골 카페에 도착했다. 사장님과 간단한 안부를 나눈 후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얼그레이파운드케이크를 주문했다.
- 요즘엔 아메리카노를 자주 드시네요?
사장님의 말씀에 멋쩍게 웃었지만 주문 후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메리카노와 얼그레이파운드. 모두 다 내가 즐겨하지 않는,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굳이 값을 내고 사 먹지도 않을뿐더러 누군가가 먹고 있는 것을 일부러 한 입 얻어먹는 일도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알게 모르게 저 둘의 상냥한 어우러짐에 빠져 한 입, 두 입 즐기고 있었다.
내가 겪는 모든 일들이 내 자신의 일부가 되어 늘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순간들이 많았다. 영원한 우정, 지속되는 사랑, 굳건한 믿음, 확고한 취향, 건실한 다짐들... 영원이라는 말 앞에선 나도 모르게 겸손해졌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모든 게 불확실한 일상이었어도 내게 영원한 것들에게는 늘 확신이 있었고 그것들을 지키고 싶었다.
영원하지 못한 것들을 힘껏 이해하고 존중해줄 때 마음이 사무치게 아픈 나날들이 있었다. 현재를 바랐던 건 나의 욕심이었고 차가움을 외면하려 무수히 많은 단어들을 내뱉으려 한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서히 흐르는 것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 때 나는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