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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May 31. 2022

망고의 취기

망고타르트

후숙이 잘 되다 못해 조금 지나쳤던 망고

물컹물컹 어질어질 비틀대던 망고

상큼함을 넘어선 망고의 취기

그간 어떤 말들에 치이고 짓이겼는지 그의 시간은 이제 눅눅하다.     


언젠가부터 나는 특정한 사람 앞에서 자꾸만 술기운을 필요로 했다.

떠올리는 일부터 메시지를 보내고 운 좋게 마주할 일이 생기기까지

그 과정 속에서 편의점 냉장고 속 맥주를 집었다 놓았다 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밝아 보이려 잘 보이려 상큼해 보이려 귀여워 보이려 애쓰던, 넓은 어깨와 딱딱한 등에 자지러지고 싶던 유난한 날들이었다. 꼭 한번 안기고 싶었는데 그의 무릎에 머리를 뉘자 눈물이 잠처럼 쏟아졌다.


헤어졌어도 놓아주는 법을 몰랐을 때 ‘불안의 케이크’라는 시를 쓴 적 있다.   

        

커피를 마시다가 지난 밤 꿈을 떠올렸다

잠에서 덜 깬 얼굴같은 비가 쏟아진다

우아하게 불안을 씹어먹었다  

    

서로의 몸을 뒤섞던 침대시트 냄새가 난다

음악을 듣고

스무살의 눈동자를 생각했다

아스팔트 같이 딱딱한 가슴에 머리를 뉘자

금세 축축해졌다      


커피를 마시다가 숨을 못 쉴 뻔했다

고전영화에서 울음을 되찾았다

걷고 또 걸었다

망상하지마

      

사랑이라는 건 지옥

정의할 수 없는 것들에 난 매달렸다

마음에서 매미 소리가 들린다

      

커피를 마시다가 기분을 씹었다

우울과 무기력은 늘 나의 아침식사가 되었다

일기엔 늘 장마를 적는다     


물 안에 가라앉은 수많은 벽돌

같은 기억들이 케이크를 씹어먹는다  


어떤 슬픔은 안부를 건넬 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있다. 대개 이런 종류의 슬픔은 그 당시 그런 줄도 모르고 마냥 지나쳤던 행복이었다. 그때 내가 거기 있었고 그 일이 벌어졌고 단지 우리가 함께 걸었을 뿐이다.


우리가 운명이었다면 별과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정말 운명이었다면 지나치는 가로등이 그리 희뿌옇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정말 만나야  운명이었다면 시간을 세는 일에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마지막으로   이후 핸드폰을 바꾸고 직장을 옮겼으며 그 사이 올림픽이 개최되고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 영화가 개봉됐다.

    

망고 타르트를 먹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마지막에서부터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일상.

파트 사브레의 부드러운 식감이 아닌 딱딱한 타르트지를 보고 있자니 그 사람의 넓고 단단한 등이 떠올랐다. 책 위에 슬그머니 앉은 고양이처럼 다소곳이 놓인 마스카르포네크림과 망고크림을 떠먹자 잔잔한 달콤함이 그림자처럼 딸려왔다. 그 틈에서 망고는 많이 달았다. 달콤함이 눈물처럼 주르륵 흘렀다. 타르트지는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힘주어 포크질을 했다.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며 탁, 짧고 굵은 소음을 만들었다. 부서진 과자 조각을 하나씩 포크에 올려 먹었다. 망고는 어지럽다. 조금만 덜 딱딱했으면 조금만 덜 물렀으면 하는 마음으로 망고 타르트를 눈앞에서 해치웠다. 애틋함인지 아쉬움인지 후회인지 모를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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