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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May 06. 2022

모카의 우울함

모카버터케이크


모카와 버터는 영혼의 단짝 같다.

나무와 바람처럼.

서로의 존재를 달콤하게 얘기한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먹으려다 쇼케이스에 다소곳이 놓여 있는 모카가 궁금했다. 작지만 심플하고 품위 있는 자태가 매력적이었고 수줍어하지 않고 가만히 관조하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아이스라떼와 모카버터케이크, 무화과치즈휘낭시에를 시켰다. 어쩌다 한두 번 버터크림이 샌드된 버터케이크를 먹곤 하지만, 대개는 생크림 케이크를 선택한다. 그도 그런 게 부드러운 제누와즈 위의 버터크림은 왠지 인위적인 것 같고, 가식적인 것 같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난 것 같다.     


흐트러짐 없이 올곧게 서 있는 버터크림을 포크로 한입 조심스레 떠먹었다. 단단하고 풍만한 겉모습과는 달리 쉽게 묽어졌다. 그 뒤로 딸려온 모카의 은은함. 그윽하다 못해 우울했다. 혀끝에서 버터크림이 계속 겉돌았다. 뭉클하게 사라지는 생크림과는 달리 녹기 직전까지 사라지지 않으려는 지조를 갖고 있는듯 하다. 사랑 앞에서 생크림이 희생과 애틋함이었다면 버터크림은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기다림이었고 식지 모를 무한한 애정이었다.     


시트 사이사이 숨어 있는 버터크림에 내 마음은 벌써 저녁이 되어 버렸고 갈 곳 잃은 감정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스산한 거리에 마중 나왔다. 우유 크림보다 더 단단하고 견고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그 속은 텅 비었다. 부드럽고 아련한, 몽글한 기분을 잔뜩 쥐고 있는 마음 너머 버터케이크는 무의 세계를 갖고 있는 듯했다. 버터케이크의 무의 세계. 밋밋하고 재미없는 기억들.

그래서 버터크림으로 뒤덮인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았다. 피해야 할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모카의 입장에선, 버터크림은 그의 짝으로 최선이었다. 흐릿한 모카의 정체성을 버터크림이 단단히 쥐고 있었다. 우울함이 잔뜩 느껴지는 맛이었다. 그래서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카페엔 정사각형의 큼지막한 유리창이 있었다. 큰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쪽은 푸른 잎사귀가 구름처럼 흩어져 있는 긍정의 세계, 이쪽은 연약하고 무른 것들이 순수함에 간절한 세계. 모카버터케이크는 그 중간에서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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