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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May 11. 2022

사랑받고 싶을 때

딸기시폰케이크

제누와즈는 축축하다. 시럽을 흠뻑 맞았기 때문이다. 주변엔 달콤함이 전부, 그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순수하고 귀여운 애굣덩어리의 시폰케이크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쉽게 반응하는 갓 스무 살 된 마음 같다. 때 묻지 않은 아기자기함을 가졌다. 그 곁으로 바닐라 향을 머금은 생크림이 찾아왔다. 둘이 만나니 풋내기 대학생 커플 같기도 하다.


포크로 크림과 케이크지를 조심스레 떠먹어 본다. 자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흔들리고 부서질듯한 모습. 시폰케이크 위엔 딸기도 좋고 복숭아도 좋고 무화과도 좋다. 어떤 과일이든, 어떤 가니쉬든, 어떤 토핑이든 상관없다. 이미 달디 달아버린 마음들에 그 무엇이 그들을 방해하련지. 오히려 사랑스러움이 배가 될 것이다.   

  

벌어진 틈 사이로 두둑이 쌓인 생크림과 그 위에 신호등처럼 나란히 서있는 딸기를 볼 때면 왠지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 크게 한 입 떠먹으며 가장 사랑받았을 때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 한편으론 내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을 때를 그려보기도 한다. 순수함을 가졌었지만 그리 쉽게 무너지기도 했던 사랑. 날마다 쌓이는 푹신하고 포근한 말들. 그 달콤한 무게에 쉽게 흔들리고 무너졌던 날들. 사랑받는 사람을 위한 케이크. 또 그만큼 사랑을 주고 싶은 케이크.


몇 입 떠먹고 나니 금세 작아졌다. 줄어드는 게 아쉬워 애틋한 마음으로 생크림만 살짝 떠먹으려 했는데 몸이 쉽게 흔들린다. 금방이라도 중심을 잃고 넘어질듯한 모습. 쉽게 취하고 가볍게 무너지는 마음이다.      

계절이 데려오는 느슨한 미풍처럼 기분 좋은 말들과 행동이 사랑의 전부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사랑이 무슨 감정인지 정확히 알 것만 같았던 시절. 온갖 미사여구와 설레던 감정이 사랑의 전부라 믿었을 때 나는 잔물결이 치는 얕은 물가에서도 그 사람과 쉼 없이 헤엄치고 싶었다. 눈물과 기쁨과 질투와 모욕과 비난이 계절마다 싹을 내던 시절, 나는 그 사람 앞에서 한없이 가벼웠다. 가벼운 마음이 나의 전부여서 내 안에 온갖 감정을 담을 수 있었고 또 쏟아낼 수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내 마음은 파운드 케이크처럼 묵직하고 단단했다. 물에 흠뻑 젖은 옷처럼 입이 무거워 사랑해도 사랑한단 말 한 번 가볍게 건네지 못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감정적이고 가까운 이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상처 입은 날, 시폰케이크는 이런 나의 마음을 단번에 캐치한다. 귀여운 동물 영상을 보면 금세 다운되었던 기분들이 내 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처럼 오늘 하루 묶어 두었던 나의 불안과 우울, 적막과 슬픔 따위가 가볍고 무른 케이크 앞에서 돌연 자취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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