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치즈무스
상큼한 레몬 커드보단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이 좋다.
고구마케이크처럼 부드러움을 바싹 끌어안은 듯한 포근한 맛이 좋다.
한눈에 봐도 새콤할 것 같은 블루베리치즈무스를 선택한 건, 이 양과자점의 시그니처였기 때문이다.
밤에 새긴 약속 같은 블루베리가 생크림 위에 다소 자유롭게 앉아 있다. 줄지어 나란한 모습은 아니고, 얌전하고 조신한 태도는 더더욱 아니다. 청춘의 무모함처럼 그저 자유롭게 얽히고설킨 모습. 얼핏 에드워드 호퍼의 <밤새는 사람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먹기 전 사진을 찍으며 생각했다. '가장 신 부분은 어디일까? 보라색 크림이겠지?'
한 입 떠먹어 본다. 시지 않고 오히려 달았다.
다만 모든 것이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맨 아래층에 깔린 시트지, 그 위를 덮은 차가운 셔벗 질감의 블루베리 크림. 8월의 뭉게구름 같은 마스카르포네 바닐라 크림. 포크로 건드리면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특히 맨 밑에 깔린 타르트지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접시 여기저기로 부스러기들이 튀었다. 그럼에도 맛있었다. 한 입 떠먹고 접시를 이리저리 돌려 관찰했다. 이토록 연약한 것들이 한데 모여 최상의 다정한 위로를 만들었다.
과자 중에 웨하스를 좋아한다. 포장지를 뜯기 전, 부스러기들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작은 준비를 한다. 마음의 준비일 수도, 쓰레기통을 옆에 받쳐 놓는 준비일 수도.
조심스레 웨하스의 겉옷을 벗긴다. 기다렸다는 듯이 조그마한 부스러기들이 조각난 햇살처럼 떨어진다. 쉽게 으스러질 것을 알고 먹는 과자. 조그만 움직임에 옷은 금세 조각난 부스러기들로 가득하다. 나는 이 단순한 가벼움에 위로받곤 한다. 책장 속 책처럼 겹겹이 쌓인 웨하스를 볼 때면 그 무수한 겹들을 하나 둘 헤아리고 싶어진다.
웨하스를 하나 둘 집어먹을 때면 많은 장면이 생각났다. 잘 보살피지 못한 내 마음, 어리숙했던 대화, 가장 미끄러웠던 추억들,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산책길 같은 것들. 부슬비가 왔던 자리에 대찬 소나기가 내리듯 공기만큼 가벼운 웨하스를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은 선명한 기억들로 가득 찼다.
그래서인지 블루베리치즈무스를 보다 보면 웨하스가 생각났다.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디저트였지만 접시 위로, 테이블 위로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하나 둘 손으로 꾹꾹 눌러 먹고 있자니 꼭 시간을 만지는 것 같아서 지나온 날들에 안녕을 고하게 된다. 모쪼록 여름에 잘 어울리는 디저트다. 본래 차게 먹는 디저트라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것 같기도 하다.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서로 다른 두 계절의 재회가 반가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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