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가적일상추구 Oct 23. 2020

희망과 욕망 사이에서

희망과 욕망 어찌 보면 너무나 다른 말 같지만 사실 무엇이 희망이고 무엇이 욕망인지 내로남불 같은 단어들이다.

어떤 이는 욕망을 희망이라 부르며 자신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빠트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희망을 욕망이라 괄시하며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희망은 미래에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기대를 말하고, 욕망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영원한 갈망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하고 싶다.

미국의 극작가 T.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볼 수 있듯이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성적 판단보단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려 전차처럼 돌진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전차에 치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역시도 그 전차와 함께 파멸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과도 같은 것이다.


목마른 어느 사람에게 맑은 샘물 한 모금은 희망과도 같다.
그리고 실제로 샘물을 발견하고 한잔 먹어 보니 너무도 시원하고 갈증도 사라지니 다시 신발 끈 조여매고 달린 힘을 준다.


그러나 요즘같이 이기주의가 파다한 세상에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한창 오르막길인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처럼 목마를 것이다.
내가 이곳에 말뚝을 박고 사람을 통제하고 이 물과 함께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사람은 목마른 모든 사람들의 희망을 져버리고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더 높은 담을 쌓고 사람을 고용해 줄을 세우며 돈이 없는 사람은 목이 마르건 말건 이곳을 진한 아쉬움에 지나치게 만들 것이다.

이렇듯 희망과 욕망은 우리 마음속에서 서로 교차하며 그 경계를 잊게 만들어, 나도 모르게 욕망의 나락으로 빠지게 만드는 자동항법장치 같은 마력이 있다.
그 경계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은 희망을 행하고자 하기에 욕망으로 변질될 확률이 낮아지니 이 둘의 의미를 정확히 구분할 줄 아는 능력 또한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 경계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타인에 대한 영향인 것 같다. 최소한 나의 희망으로 인해 누군가가 불의의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나와 타인이 모두 좋아지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최상의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희망보단 나 하나 잘 되겠다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모두를 힘들게 하는 욕망이 우리를 지배할 확률이 높은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나의 삶을 오롯이 나를 위해 올바르게 살고 싶다면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 탑승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은 누구든 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희망인지? 욕망인지? 나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 번쯤 생각해 보기 바란다.
삶이란 여행의 길 가운데 서서 내가 긍정적인 희망을 품고 사는지 아니면 모두를 힘들게 하는 욕망을 품고 사는지를 말이다.
주위 사람들이 나로 인해 힘들다면 희망이 아닌 욕망을 품고 살고 있는지 특히 지위나 권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뼈를 깎아 내듯이 자신을 가혹한 틀 안에서 늘 고찰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나뿐만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고통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원한 샘물은 목마른 자의 희망입니다.
혼자 차지하려는 욕망으로 
                      목마른 자의 희망을 짓밟지 마십시오.                       




이전 21화 진정한 어른이신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