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적인 생각으로 살아가기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근대를 넘어 현대로 향하는 인류의 정신적 길잡이로 표현되는 독일의 철학자로 1844년에 태어나서 1900년에 죽었으니 딱 19세기 만을 살다 간 20세기 인류의 정신적 도선사(導船士)라 할 수 있겠다.
그의 철학을 광인(狂人)의 철학이요 허무의 철학이라 폄하되곤 하였지만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의 관념의 틀엔 그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자신이 말했듯이 너무나 인간적인 철학자로 결국 인류 역사의 위대한 사상가 자리의 하나를 차지한 사람이다.
잠언적 문장을 구사했기에 그의 책들은 수많은 명언들로 가득하다.
그중 우리에게 기장 많은 영향을 끼친 두 가지 말을 고르라 하면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이 명언들을 선택할 것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니체가 사망 진단한 신(神)은 비단 기독교가 믿는 신인 하나님 즉 god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모든 이데올로기의 사망을 진단한 것이다.
왜 그는 모든 신은 죽었으니 그저 자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살라고 외쳤을까?
도대체 그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목도한 것은 무엇이기에 세상에 온몸을 던져 울부짖듯 외쳤던 것일까?
크게 두 가지라 생각한다.
하나는 종교가 광신(狂信)이 되어 저지른 수많은 학살 특히, 그가 나고 자란 독일을 주 무대로 겪었던 구. 신 가톨릭 세력 간의 다툼인 30년 전쟁. 이 전쟁으로 17세기 전과 비교하여 전쟁이 끝난 1648년 독일의 인구는 2/3이나 줄었다고 하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것도 같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종교 간의 전쟁이었던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제 막 싹트는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의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도하면서 큰 재앙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 신(神)을 만들더니 스스로 신을 죽이고 권력에 의지하여 새로운 욕망에 눈이 먼 시대를 여는 것에 경악했던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종교적 신은 이미 사망한 상태에 이르렀고 새로 태어나고 있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라는 괴물적 신(神)은 죽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현세(現世)의 최상의 욕망인 권력과 내세(來世) 최고의 욕망인 신(神)의 구원이 사라진 세상에 인간에게 남겨진 것은 오로지 하나 무의미한 삶 즉, 죽으면 다 끝이라는 종말적 허무주의만이 남게 된다.
이것을 이겨내는 자가 초인(超人)이여 이 초인이 하는 것이 아모르파티(amor fati) 즉,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의 운명 그 자체만을 사랑하며 살기엔 인간은 너무 영악했다.
백 년도 못 살면서 천년을 걱정하는 것이 인간 아니던가?
그 한 번뿐인 삶을 부정하려 인간은 신(神)을 창조하여 불멸의 존재가 되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한 인간은 그것을 부정하기보단 더 강한 긍정으로 죽음을 부정하고자 한 것이 인류에게 큰 원죄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영원회귀(永遠回歸)라는 뫼비우스의 띠를 인간에게 선물하며 그저 그것을 삶이라는 대안적 믿음으로 제시하고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현실의 삶에 충실할 것을 우리에게 제의한 것이다.
신을 죽이고 자연주의적 인간의 삶 그 자체로 복귀하고자 했던 니체 그의 우려대로 우리가 죽여야 했던 신인 부르주아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세계 1.2차 대전을 겪을 것을 보면 그의 예언이 적중했던 것이며 전후 프랑스에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잠자던 그를 불러내어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것이었다.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신(神)은 반드시 죽어야 하며 인간 본연의 삶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아모르파티가 대안임을 일깨워준 현대의 정신 프리드리히 니체에 대해 생각하며 나 역시 나의 운명을 사랑하며 오늘을 살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