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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Nov 17. 2020

챔피언 장정구와 시시포스의 신화

80년대 초중반의 유년시절을 보낸 남자라면 당시 최고의 인기 스포츠 프로 복싱을 기억할 것이다.

프로야구도 유명했지만 국가 대표 격으로 세계 여러 나라 복서와 링 위에서 치열하게 펼치기는 경기는 그야말로 사람을 무아지경으로 몰아가곤 했다. 언 듯 떠오르는 기억으로도 유명우, 박종팔, 김광선, 문성길, 불운의 복서 김득구 등등등 세계 챔피언 타이틀 매치가 있게 되면 방송사에서 예고를 한 달부터 하며 주말 저녁 길가에 사람이 없을 정도로 TV 앞은 장사진이었다. 그중에 최고라면 나는 역시 짱구 장정구를 꼽고 싶다.

경기 중 땀이 흘러내린 것이 귀찮아 빠글빠글 아줌마 파마를 하고 어퍼컷을 날리는 그의 모습에 입으로 바람 가르는 소리를 씩씩거리며 동네를 뛰어다니 던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전성기 상대를 눕히던 장정구 쓰러진 상대의 트렁크에 일장기가 선명하다.

얼마 전 그런 장정구 님의 인터뷰가 신문지상에 등장했는데 그 장문에 인터뷰 중 장정구 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너무 공감이 가는지라 적어본다.


기자: 사람들이 챔피언 당시를 어떻게 말합니까?

장정구: 프로는 돈이라고 하잖아요. 돈 많이 주니까 힘든 과정 참아가면서 운동한 거 아니냐고. 솔직히 운동하면서 돈 생각해본 적 없어요. 후회 없이 준비하고 링 위에 올라 승리하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거든. 돈 벌 목적으로 운동했으면 15차 방어에 성공 못 했습니다. 난 단순한 사람이에요. 날 응원해 주는 국민과 더불어... 아, 이거 하나 더 생각나네요.


기자:말씀하시지요. 

장정구: 경기에서 이길 때마다 자축 파티를 했습니다. 그게 아주 재밌었어요(웃음). 그동안 못 먹었던 음식 마음껏 먹고, 술도 한잔하는 거죠. 그 기억으로 버텼어요. 우리 삶이 그런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과분한 걸 바라면 잘 될 일이 없어요. 주어진 일 열심히 하고,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껴야 발전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장정구 님 인터뷰中

복싱이라는 힘든 운동과 더불어 48kg이라는 체급 계체량의 이중고를 겪으며 15차 방어를 한 것은 돈에 대한 욕심 또는 욕망이 아닌 순수한 열정과 작은 보상으로 그 시절을 이겨냈다는 말이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의 신화'에 나오는 우리 삶에 대한 나만의 그 소회(素懷)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신(神)들을 기만했다는 이유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지고 그곳에서 하데스에게 산에 돌을 올려놓으라는 벌을 받은 시시포스. 돌을 올려놓으면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다시 올려놓으면 굴러 떨어지는 상황. 그 힘든 노동을 아무 의미도 없이 영원히 수행해야 했던 시시포스.

알베르 카뮈는 그 '시시포스의 신화'를 가져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우리 현대 인간의 삶을 이 신화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시시포스는 내려오는 길에 바위가 없어 힘이 안 들었을 것이며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땀도 식히며 행복했을 것이다.

의미 없는 삶도 의미를 찾으면 나름 행복해질 수 있다.

그 시시포스적 삶이 장정구 님의 인터뷰에 녹아있다.

알베르 카뮈

챔피언이라는 부담감과 중압감.

그 속에서 많은 유혹과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을 순수한 열정과 작은 보상으로 이겨냈던 챔피언 장정구.

우리 개개인의 삶도 그러하다.

아무 의미 없이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자신을 놓아버리고 많은 유혹과 그 속에 숨은 욕망들의 노예가 되며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는지 뒤돌아 보며 작은 행복에 위로받으며 진실한 나의 삶을 찾아 정진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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