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희망을 노래했던 니체
삶이 힘들고 고달프다고 생각들 때가 많다.
생각해 보면 즐겁고 행복한 날 보단 고난과 지난함의 연속이 인간 삶의 대부분이 아닌가 싶다.
바로 이럴 때 늘 내 머릿속을 강하게 스쳐가는 철학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이다.
그가 살아있던 당시 우리 인류는 안일한 삶을 살기 위해 여러 가지 허상을 만들고 그것에 온 인류가 구원이니 의지니 하는 거짓의 삶을 살고 있던 차에 그간의 무의미한 삶을 마감하고 실존적 자아를 느끼고 그것을 초월하는 초인의 삶을 살 것을 피를 토하듯 글로 남기고 간 철학자 니체.
오늘은 그의 철학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의 고난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에 비해 나의 삶은 얼마나 무난한가를 그리고 혹여나 그가 말한 거짓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1844년 10월 15일, 니체는 독일의 뢰켄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반기독교적 철학가는 모태신앙은 당연지사이고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태어나 교회 성가대의 노랫소리, 교회 종소리에 둘러싸여 성장하는 아이러니한 유년 시설을 보내게 된다.
그의 불행의 시작은 그가 다섯 살 때인 1849년 아버지가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그다음 해에는 동생마저 죽고 외가의 도움을 받고자 이사를 간다.
어려서부터 음악과 문학에 천재적 재능을 보였던 니체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신학, 고전문헌학을 그리고 대학을 옮겨 본 대학교 신학,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지만 학위는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재능만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기에 1879년 24세에 학위도 없이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고전문헌학 교수가 된다.
그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며 기존의 기독교 문화가 지배적인 서양 사회에 망치질을 한 것은 소크라테스 이후 플라톤과 그의 아카데미 제자들이 만들어 놓은 형이상학적 기틀 위에 교부철학이 완성되고 그 토대 위에서 로마 바티칸이 만든 질서에 인간을 한 가지 틀에 가두어 놓고 하나님의 자식으로 구원받아야만 한다는 2,000년 이상의 철학 계보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어서 일 것이다.
10년간의 교수 생활 중 수많은 책을 쓴 그는 1879년 바젤 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그간의 교수 생활로 받기 시작한 연금으로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며 글을 쓰다 1889년 1월 3일 토리노 광장에서 말을 때리는 마부를 말리다 발작을 일으키고 그 후 10년을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보살핌을 받으며 연명하다 1900년 바이마르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의 불행의 절정은 아마도 루 살로메에게 두 번의 구애 실패가 아니었을까 싶다.
젊디 젊은 시절인 라이프치히 대학 때 유대 집안 출신 루 살로메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결국 구애에 실패한다. 이 시절 사창가를 헤매다 매독에 걸리게 되고 결국 그로 인해 세상을 마감하게 된다.(공식적으로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니체는 그렇게 병을 얻고 죽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남동생마저 잃어 여자들만 있는 집안에서 많은 기대와 그에 대한 책임감에 시달렸을 니체. 대학에 들어가 여자로서 만이 아니라 함께 철학적 토론을 하며 플라토닉적 사랑마저 느꼈던 루 살로메의 거부.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바그너와의 손절.
원래 좋지 못했던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 글쓰기 작업조차 어려워 짧은 잠언으로 밖에 쓸 수 없었던 글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철학을 철학서로 만들지 못하고 알쏭달쏭 한 잠언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천재적 철학자는 그렇게 시련의 청년기를 보내고 장년기에는 더욱 가까워진 죽음의 그림자에 괴로워하다 결국 광기의 발작을 일으키고 그 후 암흑의 10년을 보내고 영면에 든다.
그의 전기를 보면 과연 그가 언제 행복했을까 싶을 정도로 불행이 전부인 것만 같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노래했다.
우리 대부분은 그를 허무주의의 상징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허무주의 극복하자는 희망의 노래를 한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무너지고 당분간 허무가 세상을 지배 하지만 우리는 그런 운명을 극복하고 초인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을 말했던 그이다.
그것이 바로 아모르파티인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지금의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안일하게 살고자 한다면 군중 속에 자신을 숨기고 자기 자신으로 다시 살고자 한다면 기존에 배운 모든 것을 부셔버리고 나로 일어나 초인이 되라던 철학자 니체.
그 고난의 삶 속에도 희망을 노래했던 니체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