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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충망 너머의 세상, 소리가 나를 밀어낸다

by 는개

종일 부슬비는 내렸고

미리 계획 세워놓은 일들을 할 생각으로 별 필요 없는, 쓸데없는 업체 미팅시간을 보냈어요.

물론 딱히 듣지 않고 계획한 일만 생각했지만.


스케쥴러에 빼곡히 적어놓은 내가 해야 할 일들이 길게 늘어서있어요.


사실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요. 하지만 약값은 벌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굳이 찾아 붙인 이유를 더 대자면 사고가 아닌 이상 그래도 수능 때까지는 맡은 애들은 책임져야 하니까.

아이들을 가르칠 땐 견딜만하고 자주 괜찮아져요. 웃게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답답한 마음은 한쪽 마음에 계속 벽돌처럼 쌓여가고 있습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 사이의 벽을 맞고 맥놀이 된 빗소리가 빠짐없이 멀리 갑니다.

그 사이사이 사람들의 말소리와 차가 지나가는 소리, 짧은 웃음소리, 승용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 사람이 걷는 소리가 섞여서 들리고, 빗소리에 조각난 하수구냄새가 스며서 창문을 열어놓은 방충망 안으로 뛰어내려왔어요.


빨리 넘겨줘야 하는 문서를 기계적으로 작성하다가, 너무 시끄러워서 문을 닫아버렸어요.

우울이가 같이 있으면 우울이에게 신경을 뺏겨요. 가뜩이나 집중력이 좋지도 않은데 무엇을 하고 있든지 완전히 느려져 집중하면 20분 걸릴 일을 120분이 걸려 마치게 되죠.


그래도 지난 3년간 익힌 기술 중 하나가 우울이와 같이 일하는 방법이어서인지 덮어놓고 다음 날 하거나, 아예 못하게 되거나 끊임없이 미루는 일이 덜 해졌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오십 보 백보 수준, 여전히 생산성이 너무나 떨어집니다.


생의 소음들이 하나같이 시끄럽다는 말 외에 표현이 되지 않는 나날이 몇 년째, 지속되고 있어요. 청각은 시간이 갈수록 더 예민해져 가는 건지 점점 세상 소음들이 견딜 수 없어져가고 있죠. 세상이 밀어내서 날 싫어하는 이들을 피해 숨어서 아무도 안 만나며 숨 쉬고 있는데, 이제는 소리도 나를 못 견디게 밀어냅니다. 이렇게 밀어내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죠?

갈 데가 없는데.


그나마 일도 할 수 있고(이전만큼 많이 하진 못하지만),

나 혼자 우울이를 감당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이제는 나만의 장소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혼자 견뎌내는 자기 파괴적 방법이 아닌 방식들도 터득했는데 (그렇다고 생산적인 방법도 아니고 나를 상처 입히는 경우도 많지만)


이젠,

소리가 나를 밀어내네요.


사람들과의 교류를 다 끊고 최소한만 하면 그런 반작용이 생기는 걸까요? 이전에는 견딜 수 있었던 (흔히 화이트 노이즈라 불리는) 그런 소음들에 대한 역치가 계속 낮아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거기까지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이런 상태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그저 멍하게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우울이는 그렇게 나를, 붙들어요.


우울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날 자꾸 놔주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대답 좀 해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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