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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두 개의 전투

가스라이팅으로 조종되고 있는 에코이스트라고 하더라도

by 는개

일이 좀 꼬였어요. 그러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어요.

일을 하다가 이렇게 결과가 안 좋은 건 너무 오랜만이라 오늘의 마음속에선 두 개의 마음이 미친 듯이 싸웁니다.


내 탓이다,라고 하는 계속 그래왔던 습관적 마음과

내 탓이 아니다, 하는 학습 중인 암기 중인 마음.

자꾸 내가 못나서, 혹은

혹시 나 때문에, 하는 마음이

순식간에 저를 지배해 버렸어요.


괴로워요.

괴롭고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 의자에 앉아있어요.

제 바깥으로 제가 만든 소리는 들리지 않네요.


참 다행이에요.

이전처럼 통곡하며 이불을 뒤집어쓰며 온 집안을 휘젓고 내던지지 않아서. 괴로운 건 같지만 내 몸은, 맥주를 마시며 가만히 앉아있어요. 책상 앞에서 의자 위에 앉아 꽂혀있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지금의 나는 드라마를 보며 맥주를 한잔하고 있는, 평소 쉬는 모습과 다르지 않을 거예요.


몸속에서는 장이 뒤틀리는 것처럼 아파요.

특히 내 옆의 우울이는 불안하고 초조한 성격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심장 가득 침을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강불에 올려진 프라이팬 속 소스처럼 미친 듯이 졸아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3년을 약을 쏟아붓고, 셀 수 없는 밤을 울면서 가슴을 뜯고 미친 사람처럼 방안을 방방 뛰어다니며 괴로워했던 나날이 지속되고 있는 건 아니니.

다행일까요.


사람은 살고 싶은 마음으로 살기도 하지만 내일 죽어도 강제당하며 살진 않겠다는 마음으로도 사나 봐요.


아무런 의욕도 없고 그 어떤 것도 딱히 흥미가 생기지 않는 아무 의미 없는 날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통제당하고 있진 않으니까.

감시당하고 있진 않으니까.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탓을 먼저 해서 착취당하기 쉽다는 에코이스트라 해도,

가스라이팅으로 조종당한다고 판단당한대도

누군가의 명령이 아닌 내 의지로 있고 싶어요.

결국 그게 세뇌당한 생각이라도 내 자유의지라고 생각할 수 있고 싶어요.


내 의지로

연습에 연습을 거쳐 이제는 방바닥을 뒹굴지 않고, 겉으로 날뛰지 않게 되었어요.


내 의지로

연습의 연습을 거쳐 이제는 피딱지가 얹도록 손가락을 씹지 않고 커터칼을 제 용도로 쓸 수 있게 되었어요.


이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게

맞는 것일까요.


마음들이 몇 시간째 싸웁니다.

내 탓이야, 내 탓이 아니야.

내 탓이야, 아니야. 내 탓이 아니야.


내 탓이야 하고 밀려왔다가,

내 탓이 아니야, 하고 쓸려나가요.


밤이 새도록 밀려왔다 빠져나갔다 합니다.

저는 그 갯벌 한가운데 발목을 붙잡힌 채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렇게

온몸으로 맞고 있어요.


뭐가 맞는지 알 수는 없어요.

그냥, 선생님이 연습시켜 준 대로, 그렇게 할 뿐.

뭐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따지기도 힘들어요.


옳고 그름,

맞고 틀림.

같고 다름.


지금은 따지지 않아요.


다만

내 마음이 덜 아픈 쪽으로 연습시켜 주었던 선생님의 말이 유일신의 말인 것처럼,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던 그 말들을 떠올리면서. 나의 마음이 낫기를 바라 치료하려 노력했던 선생님의 말이 오로지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나침반이라 믿으면서 마음이 가라앉게 최대한 의자에 깊이 눌러앉는 것뿐.


반려가 언제 잘 거냐고 물었어요.

곧, 이라고 하며 의자에 몸을 잔뜩 구긴 그 채로 돌아보지 않고 먼저 자라고 말했어요. 내 기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아무 말 없이 침실로 가 주었습니다.


오늘의 내 모습은 일 때문에 속상한 정도로 이해될 만큼으로 보였을까요.


정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자야겠습니다.

눈치를 챘든 못 챘든,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한 최선은 다했어요. 오늘의 내 모습은 일 때문에 속상한정도로 이해될 만큼으로 보였을까. 별 다른 말이 없어요. 다행이죠.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참아준다고 해도

나도 싫은 나라서

타자인 이상 질리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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