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기대 했다가 또 실망하고 상처받는 것이 무서웠거든요
반려가 언젠가 한 번 물었어요.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본인이 챙기고 싶어서 너에게 잘해주는 것을 왜 외면하느냐고요.
내가 좋아서 너를 챙기는데 너는 원하지 않는 것 같냐고.
특히 더 자잘할수록 더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그 누구에게도 받지 않기도, 받지 못하기도 했던 배려와 친절과 챙김이 익숙하지 않기도 했지만, 언젠가 저를 귀찮해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달갑지가 않았어요. 챙겨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밀어냈는데, 내가 받아도 괜찮다고, 받아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적반하장이 되어 오히려 제가 서운해할까 봐 무서웠어요.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듯 당연해질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랬던 건데, 도리어 서운해할 줄은 몰랐어요 (그런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친절에 익숙해지는 것이 무서웠어요.
사람을 쉽게 믿고 좋아해 혼자서 내적 친밀감을 잔뜩 쌓아버리는 성격 탓에 저도 모르게 실례되는 행동을 하게 되어 상대를 꽤 많이 당황하게 했거든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객관적으로 저에게 친절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순간부터 저는 멋대로 기대하고 착각해 결국에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을 때의 그 감정은 어떻게든 겪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별 것도 아닌 것에 혼자서 심각해지고 서운해한다며 이상한 사람 취급은 더 이상은 받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받을 자격이 없는데 바라게 될까 무서워서였던가,
턱없이 바라서 이기적이라거나, 양심 없다거나 하는 그런 말들을 듣기 싫었었던 건 선명히 기억나요.
수능이 끝난 지 얼마 안 됐던 초겨울, 어떤 화창한 날 이후였던 것 같아요.
성당에서 미사가 끝나 일어서는데 함께 성가대 활동을 하던 이들 중 몇몇이 영화 보러 갈 건데 같이가려냐고 해서 함께 영화 한 편을 보고 헤어졌어요. 그런데 그다음 주에 의례상 한 인사치렛말에 눈치 없이 같이 가더라고, 하는 소리를 듣게 됐어요. 함께 갔던 이들이 아닌 다른 이들이 속닥거리는 말이었지만, 알 수 없었죠. 정말 그랬던 건지는.
그 이후 병적으로 혼자 하려고 했어요. 눈치 없어, 나대, 이상해라는 말이 너무 힘들고 너무 버거웠습니다.
감정은 너무 빨라 최고점과 최저점을 너울거리는데, 적응이 느려 생각이 감정을 쫓아가지 못했거든요.
제 감정이 이상하지 않은지 자신이 없었어요.
제게 잘해주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서웠어요.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기대를 했다가 또 실망하고 상처받는 것이.
내가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걸까, 이상하게 혼자 의미 부여하고 있는 건가,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면 가버릴지도 몰라. 그날들이 막장을 뚫는 광부가 되어 마음 밑으로 깊이 구덩이를 파고파고 쌓고 쌓으며 끝없이 내려갔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되게 어떻게든 살았어요.
평소 아르바이트를 두 개 이상씩은 하고, 학비, 생활비 전부 다 혼자 감당하면서.
주변 누군가를 만날 때는 밥이며, 술이며 최대한 퍼주며 함께 있으면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 좋은 사람이어 보이려고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환영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요.
어쩔 수 없는 감정기복과, 없는 눈치를 조금이라도 메워주도록.
아직도 생각이 나요.
새벽 한 시에 술을 마시고 집에 걸어갔던 어느 밤이.
가로등 하나 없는, 우범지대로 의심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어둠에 묻힌 골목. 지나면, 오래된 거미줄이 덩굴처럼 붙어있던 작은 굴다리. 혼자 걸어가는 내 발소리를 계속 들으며 무서워했던 그 기억을 처음으로 한 아주 많은 기억들이.
신세 져도 괜찮다.라고 입 밖으로 몇 번을 중얼거리고 생각해도, 과거가 뚝뚝 연속재생 됐습니다.
호의든 선의든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편해지면 무너진다는 생각으로 거부하고 도망치며 혼자 서려고 노력했던 나날들이 쉬지 않고 영사기에 걸린 필름처럼 돌아갔어요.
이 불편함이 일부러 사양해 왔던 모든 친절들의, 익숙해질까 무서워했던 배려들의 집합인 걸까.
나의 반려여, 이런 나를 이해해 주어요.
나는 너무 보잘것없고 너무 마이너리티로만 살아서 소외되는 외로움을 어떻게든 덜 느끼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어요. 나름대로 치열하게 산 결과 중 하나라고 너그럽게 보아주길. 나도 노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