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을 살아가기 위해서 찾은 마음 공부법
B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몇 개월이나 뒤예요.
제 입으로 한 약속인데 했으니 지켜야죠.
하루하루를 사는 건 연습을 해서 할 수 있었는데
몇 개월을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방법을 찾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여기저기 찾아다니니까 제일 많이 추천받은 게
명상과 필사였어요.
명상을 시도해 보았어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흉내 냈어요.
우울이가 자꾸 옆에서 쿡쿡 찌르고 톡톡 치고
자꾸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가만있지를 않더라고요.
상념이 너무 많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나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실패했어요.
그래 명상은 접고, 이번엔 필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필사는 책을 보다 좋은 구절이 나오면 자주 하던 거라 시도가 어렵진 않았어요. 찾아보다 보니 매일 아침 함께 긍정확언이 담긴 문구를 필사하며 마음공부를 하자는 어떤 오픈 카톡방에 다다랐어요. '마음'을 '공부'한다는 말이 새로웠습니다. 좋은 말과 선한 말을 보기만 해도 공부가 된다라는 여러 사람의 말을 보면서 우울이를 생각했어요.
마음 안에서 우울이가 나타나기만 하면 누르기만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우울이도 마음이었더라고요.
우울이를 공부한다 생각하고 알아가 보자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이 금방 또 바뀔까 봐 필사집부터 주문했습니다.
손가락 두 마디정도 두께의 필사집.
매일매일의 날짜에 한 문단, 혹은 두 세 문단 길이의 문단을 필사하는 것이었어요. 매일 하루씩 하게끔 되어있는데 그냥 막무가내로 아무 데나 펼쳐서 동의가 되거나 마음이 가는 것만 일단 써봐야지 했습니다.(영적 어쩌고 긍정확언을 매일 하면 어쩌고 덮어놓고 무조건 나는 잘된다 같은 말은 아무리 해도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무기력하고 무기질적이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자조와 냉소만이 가득 찬 내 안에
틈이라도 생길까, 균열이라도 생길까 하는 기대감이 딱히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서 B의 얼굴을 보러 가려면 살아는 있어야 하니까. 매일매일까지 쓸 기운이 없이 하루 걸러 하루, 이틀 걸러 하루라도 살기 싫다는 충동을 억누르려면.
그래, 이렇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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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