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쿠키(TEAM COOKIE) 인터뷰
남들이 써준 이야기말고, 다른 사람이 연출한 무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작가가 쓰고 감독이 편집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생각한 이야기요. 소설의 결말을 맞이했을 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다음 편이 궁금한 적 있지 않나요? 그래서 혼자 상상해본 적은요? 그렇게 진짜 '나의 이야기'가 모였을 때, 우리는 이 책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어요. 엔딩 크레딧이 끝난 뒤에야 나오는 '쿠키 영상'처럼요.
[Interview] 차영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최정현 디자이너 (EDITOR 류태준, PHOTOGRAPHY 팀 쿠키)
-프로젝트 이름을 ‘모어 페이지(more page)’로 지었어요. 그렇게 명명한 이유가 있을까요?
영우 : 우선 페이지는 팀의 디자이너인 정현님의 영어 이름에서 따왔어요. 페이지(Paige)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라서 페이지는 정해졌죠. 의미로는 책의 기본 단위인 ‘쪽(page)’을 생각했어요. 페이지가 모여서 하나의 책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방향이 아니라 양적으로 성장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모어(more)’를 붙였어요. 다양한 콘텐츠를 쌓아서 두툼한 책이 되는 걸 상상했어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뷰티라는 타이틀을 재정의(rename)한다는 방향성은 어디에서 착안하셨나요?
영우 : 저는 콘텐츠를 기획할 때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요. 단어는 태어났을 때와 달리 사회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담게 되잖아요. 그러니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서로가 이해하는 뜻이 달라져요. 그래서 제가 아는 뜻을 재점검하고, 본래 의미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사전을 보죠.
그럴 때 보면 뷰티가 ‘아름다움’으로 번역되는데 사회에서는 화장품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였어요. 의미가 많이 축소된 것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이 맥락을 확장해야 비즈니스 측면에서나 사회적인 부분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작게나마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단어의 뜻을 풍부하게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존에 통용되던 의미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발상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영우 : 지금 잘 된다고 해서 앞으로도 잘 된다는 보장이 있나요? 2년 전만 하더라도 스킨 케어 시장이 색조 화장 시장보다 더 커지라고 예상했나요? 하지만 시장과 상황이 달라졌죠. 많은 기업이 콘텐츠를 마케팅, 브랜딩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콘텐츠도 상품이 됩니다.
게다가 디지털 기반에서 콘텐츠는 풀필먼트가 필요없는 상품이죠. 콘텐츠로 다양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어요. 단지 지금 회사의 숫자에 영향을 주지 않을 뿐이죠. 콘텐츠는 비즈니스가 확장할 수 있는 첨병 역할을 합니다. 구성원 중 누군가는 지금이 아니라 내일, 모레 더 나아가 몇 년 뒤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생산 공장, 풀필먼트 등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투자가 없으니 빠르게 시도하고 저렴하게 실패할 수 있는 프로덕트이기도 하죠.
-캠페인은 크게 세 가지 화두로 나눈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각각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영우 : 약 1년동안 진행하려고 계획했던 프로젝트였어요. 모두를 묶는 하나의 단어는 개성이었어요. 첫번째는 뷰티와 나이는 상관이 없다는 의미로 ‘안티 안티 에이징(Anti Anti Aging)’이었어요. 두번째로 기획하고 있었던 주제는 뷰티는 성별과 상관이 없다는 의미로 ‘비욘드 젠더(Beyond Gender)’였고요. 마지막으로는 개성을 위해 편견과 싸우는 ‘온드 인디비주얼(Owned indivisual)이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이렇게 나누었지만 결국 뷰티를 개성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였어요.
-첫 번째 캠페인인 “굿 에이징(Good Aging)”에서는 ‘메멘토 모리’를 통해 지금 시대의 뷰티에 대한 메시지를 주시려고 했었는데요. 그런 테마를 잡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영우 : 뷰티는 공포를 팔죠. 보험 마케팅과 유사해요. “당신, 지금 이 제품을 쓰지 않으면 미래가 불투명해질 거야.” 지금 이 세럼을 바르지 않으면 늙어 보일거야. 나중에 주름을 피려고 하면 늦어. 이 립 컬러가 없어? 그럼 유행에 뒤처질 거야. 그럼 유행에 둔감한 늙은이처럼 보일걸? 이런 분위기에서 어려보이는 것, 트렌디한 것을 팔아요.
그런데 꼭 그래야 하나요? 젊은 게 유일한 기준이라면 모두가 패배해요. 안 늙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럼 자연히 회사의 고객들도 줄어 든다는 소리잖아요. 게다가 의학이 발달하면서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나는데 30대부터 80대까지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할까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죽음과 연결되었어요. 안 죽는 사람은 없잖아요. 하지만 그 과정은 우리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어요.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고, 노화와 죽음은 반드시 찾아오는 손님이죠.
-권은주 감독님, 이향란 배우님, 우야다 스튜디오 세 분을 인터뷰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신 점은 무엇일까요?
영우 : 나이가 들수록 단단해지고 있다는 점이요. 남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이향란 배우님이 인터뷰 중에 해주신 말이 이 캠페인을 꿰뚫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드니 얼굴이 두꺼워진달까. 배짱이 여유가 되는 것 같아요.” 이 배짱과 여유는 젊어서는 얻기 힘들죠. 이게 나인데, 어떻게 하겠어. 이 태도를 배웠어요.
-나이가 드는 일이 멋지다고 설명해도 실제로 그렇게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나이대에 맞는 편견들이 겹겹이 쌓여 있잖아요. 나이가 드는 것이 무섭지 않나요?
영우 : 무서워요. 콘텐츠 일을 하고 있으면 제가 빠르게 낡는다는 공포가 있어요. 10대, 20대에는 제가 하는 게 트렌드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배우고 따라잡아야 하는 공포가 있어요. 그렇게 트렌드를 잘 안다고 해서 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게다가 기후 위기, 성 평등과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 차이도 크죠. 과거 예술 작품을 보며 시대적 한계에 부딪힌다는 말을 하는데, 그 한계를 살면서 맞닥뜨리고 있어요. 빠르게 녹슬고 있구나. 이번 인터뷰는 무의식 중에 제 자신이 가진 공포에서 출발했을 거에요. 이 공포가 진짜인가? 바꿀 수는 없나?
정현 : 예전에는 나이드는게 너무 무서웠어요! 특히 30대가 되기 전이 가장 불안하고 힘들어어요. 왜냐하면 마침 이직 준비도 해야했었고, 심적으로도 많이 힘든와중에 사회가 원하는 30대 여성의 이미지와 현재 내 모습과의 이질감이 너무 크더라구요. 그래서 매일 매일이 불안하고 힘들었어요.
근데 딱 31살이 되고나서 나이가 무슨 소용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마 서른 살에 지독하게 인생의 고민을 처음 해봤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요. 이제는 "사회는 변하고 있고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또 어떻게 해서든 주어진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라는 생각이 더 큰 것 같아요.
-윤여정님과 밀라논나님 등 ‘멋진 시니어’들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정답은 없겠지만 나이대에 맞는 ‘멋’이란 무엇일까요?
영우 : 나이대에 맞는 멋은 없어요. 그 사람이 살면서 쌓아온 멋이 있죠. 그건 나이가 아니라 경험에 따라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현 : 글쎄요. 나다운 것. 그리고 늙지 않은 생각들 정도 아닐까요.
-영우님은 이전에는 달리기 전문 글로벌 매체인 러너스월드 코리아에서 에디터로 일하셨는데요. 어쩌면 전혀 다른 영역일 수도 있는 뷰티에 관심을 가지신 이유는 뭘까요?
영우 : 러너들은 마음과 몸의 건강에 관심이 높아요. 게다가 개성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도 않죠. 뷰티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도 하고, 나의 만족이기도 하면서 남들과 경쟁하기도 한다는 점이요.
모어 페이지를 기획하면서 타투에 대해서 찾아봤는데 과거부터 치장이라는 건 “다른 사람보다 더 건강한 나”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였어요. 어느 문화권에서는 상처가 났지만 흉터를 갖고 살아남은 것이 건강한 것이었고, 어느 문화권에서는 상처 하나 없는 게 건강을 상징하기도 했죠.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다른 ‘나’를 알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 러닝과 뷰티 모두 ‘나’를 향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결이 맞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불발된 인터뷰나 미뤄두게 된 콘셉트도 있으실까요?
영우 : 나이가 들어서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 분들을 찾고 싶었어요. 분명 어딘가에는 있으실텐데 저의 능력이 부족하여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필라테스를 하는 분들을 찾으려고 했는데, 이번에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필라테스 선생님들의 경력이 더 길게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영우님은 평소에 콘텐츠가 곧 기업의 아이덴티티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압니다. 인상깊게 보았던 팀이 있으실까요?
항공사 '에어로케이(Aero K)'요. 최근 채용 콘텐츠 보셨나요? 하늘 위에서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승객들은 승무원을 믿을 수밖에 없어요. 젠더리스 유니폼부터 채용 브랜딩 콘텐츠까지 에어로케이는 항공사의 원래 임무가 무엇인지 떠올리는 콘텐츠를 만들어요. 멋있어요. 대단해요.
-그럼 영우님은 콘텐츠 디렉터로서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계속 다루고 싶으세요?
레퍼런스가 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기획은 상상이라 과감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게 짜거든요. 하지만 현실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많은 게 깎여 나가요. 브랜드의 방향성, 예산 등등 고려해야 할 일이 많죠. 마지막으로 세상에 내놓을 때에는 책임을 져야 하니 마지막에 안전한 선택을 하고는 해요. 그럴 때마다 조금 더 용기를 내서 기존의 문법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싶어요. 그래야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고 느껴요. 용기를 내고, 책임을 지자.
-정현님은 BX 디자이너로서 다수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셨는데요. 앞으로 MZ세대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내구성이 강한 것'이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냥 만들어 내거나 다른 곳에서 하니까 같이 찍어내는 브랜드보다는 무엇을 왜 하려는, 또 지금 현재를 읽을 줄 아는 브랜드가 MZ세대에게 진심이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비건이나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필수가 되어가는 와중에 '그린워싱(친환경이라는 포장지를 씌우는 일)' 하는 브랜드가 많아요.왜 비건을 지향해야 하는지,어떤 점이 에코 프랜들리인지, 환경을 생각했다면서 겉치레에만 신경을 썻다던지 이런 것들은 아무리 ‘그런 척’을 해도 바닥이 쉽게 드러나거든요. 예전엔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지금 이 시점을 살아가는 세대들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그렇구요!
리브랜딩을 할 때에도 같은 것 같아요. 멋지고 이쁘게, 트렌드에 맞춰서 하는건 정말 쉬워요. 하지만 브랜드 코어를 시작으로 비주얼을 구축해가는건 정말 어렵거든요. 겉 껍데기에만 신경쓰게 되면 결국 속 알맹이는 텅텅 비어 빠른 시간에 들통나기 마련이에요. 그 점을 MZ세대는 빠르게 알아보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정현님께서는 여러 뷰티 회사를 거쳐오셨는데요. 정현님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뭘까요?
예전엔 미의 기준에 빗대어 아름다움의 스탠다드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오죽했으면 전 말도 안되는 코덕(화장품을 매우 좋아하는 코스메틱 덕후)였어요. 자연히 '여자라면 이런걸 해야하고, 여자라면 어쩌구' 이런 마음을 가졌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귀찮아서 그냥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무슨 큰일이 생기거나 그러진 않더라구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다움 그리고 미의 기준은 뭘까요? 사실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저는 긍정의 감탄사, 예를 들면 하늘이 아름답네~ 정도로만 알고 싶어요. 즉, 코스메틱과 아름다움은 그닥 상관 없다는 게 제가 내린 소소한 결론입니다.
(프로젝트의 모든 아티클은 개인의 생각일 뿐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뷰티 스타트업 '디밀'은 "고객의 아름다움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비전에 맞춰, 코스메틱 커머스에 이어 '라이프스타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표현으로 옮겨낸 디밀의 첫 번째 오리지널 콘텐츠 캠페인은 'Good aging(Anti anti aging)'입니다.
차영우 에디터가 지금의 시간에 누구보다 충실하고 행복한 세 분의 인터뷰이를 만났습니다. 전 마라톤 국가대표 선수 권은주 감독님, 65세에 커리어를 시작한 배우 이향란님, 그리고 '우리 세대의 나이듦'을 그려내는 일러스트레이터 우야다님 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나이가 드는 것이 하나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내일을 기대하는 시니어의 삶에 대해 말씀 주셨어요. 앞으로 저희와 함께 뷰티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보실까요?
여덟 번째 아티클은 객관적이기 어려운 두 단어 '좋음'과 '늙음'을 함께 묶은 'Good aging'에 대해 논합니다.
https://brunch.co.kr/@1312capo/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