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 쓰레기를 비우러 나간 길에 이른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렀다.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술을 기울이는 남성들 옆자리에 착석을 하고 식사를 시켰다. 들려오는 소리가 왁자지끌한데다 식당에서 켜 놓은 티브이에서 쇼 프로 진행이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음을 마음에서 차단하려 SNS를 켜보니 친구가 <세계여성의 날 행진> 소식을 포스팅해 놓았다. 방긋 웃는 얼굴과 희미하게 보이는 지인들의 실루엣과 제주 시청 부근에서 흩날리는 깃발을 보며 나도 괜스레 따라 웃었다. 그때 그 말이 들린 것은 우연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형수님 입장이 어떻게 됩니까?”
“내가 뭘 어쨌는데. 다들 뒤에서 몰래 그 짓 하고 살아. 나는 적어도 외도는 해도 바람은 안 피워. 나중에 동남아에서 젊고 실한 여성을 데려와서 사는 게 뭐, 어때서. 그러게, 본인이 안 죽고 오래 살면 되잖아.”
“나는 그래도 한국 여자가 좋수다.”
“흥. 젊고 실하고 나한테 잘하는 여자를 거기 가면 구해올 수 있는데 무슨. 네가 그래서 장가를 여태 못 간 거야.”
“조카들 데리고 어디 다녔수꽈? 단란주점?”
“어이, 단란주점이라니. 그냥 옷 사주고 밥 사주고 그랬지.”
하필 세계여성의 날 행사 행진의 사진을 보는 그 순간, 큰 목소리가 담아낸 혐오 한 바가지를 껴 얻는 기분에 갑자기 먹던 것이 턱 얹혀버렸다. 들어올 때 잠시 본 그들의 외형은 사십 대 중후반에서 오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지정 성별 남성들이었다. 여성혐오와 인종혐오를 안주 삼으며 큰 목소리로 떠들 자유가 주어진 이 나라 비장애성인남성들의 언어폭력은, 가게에서 딱 두 사람 있던 지정 성별 여성들의 존엄은 안중에도 없었다. 심지어 식당 사장이 여성이었음에도 그들은, 혐오를 쓰레기처럼 입으로 쏟아내고 쓰레기를 우리 향해 무심코 내던졌으나 섣불리 그만하라는 말을 하기 어려웠다.
분노와 공포가 동시에 몰려오면서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각이 모독감인지 공포심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으리라. ‘그거 혐오예요. 말씀 삼가세요.’ 항의하고 경찰을 부르고 싶지만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현실에서 과연 그게 ‘사건’으로서 기능할까 하는 의구심부터 들었다. 게다가 덩치 큰 남성들이 실질적으로 가할지도 모를 위협, 즉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이겨낼 심적 여유도 없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계산을 마치고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그 공간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정당히 지불한 소중한 한 끼도 망쳤다. 혐오에 재갈을 물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저런 발언을 함부로 할 수 없는 법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면서 조금 절망했던 것 같다.
며칠 전, 친구인 갤러리 대표가 폭언을 받아 협박죄로 조서가 들어간 사건이 기억났다. 지정된 장소에 종량제 쓰레기를 버렸음에도 그가 세입 된 건물의 관리를 하는 경비원은 잘 사용하지 않아 뚜껑이 닫아놓은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이유로 몹시 화를 냈다. 여러 말이 오고 가던 끝에 그저 좋게 해결하려던 친구는 본의 아니게 그를 귀찮게 하게 했으니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난 후, 공평하게, 쓰레기수거통 비사용 공지도 없이 무례를 가한 그에게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경비원은 또다시 그러면 “가랑이를 찢어버린다.”는 말만 여러 번 반복할 뿐이었다고 한다. 눈치챘겠지만 내 친구는 여성이고 경비원은 남성이다.
건물에 입주한 지 오래된 그가 매우 힙한 갤러리의 대표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을 경비원에게, 대표라든가 인간의 존엄이라든가 이런 것은 무시된 채, 친구는 “감히 여자가”의 그 ‘여자’로 패싱 되었다. 당연한 수순인 듯 젠더권력의 상위의 입장인 남성이다 보니 고작 여성인 상대에게 마음껏 개의치 않고 모멸감을 주는 욕설을 당당히 할 수 있다. 얼마나 당당했으면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고도 자신의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을 불렀고 모욕죄로 고소하려 했으나 당시 상황과 언행으로 인해 조금 더 강력한 처벌인 협박죄가 적용됐다. 이런 일이 처음이었을까. 그는 같은 건물 다른 경비원에겐 성추행을 당했던 적이 있었다.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서, 폭력을 자행한 이들이 가진 직위 직함 능력 등은 차지하고서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깡그리 무시할 수 있었던 남성들의 젠더권력은 높고도 높았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날을 맞이해 여러 인권단체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으나 그걸 또 못마땅해하는 남성연대의 시선은 혐오로 번득인다. 최근 ‘그릇된 페미니즘’을 규탄한다는 논지는 유감스럽게도 백인이 인정하는 흑인운동, 사용자가 인정하는 노동운동처럼 어불성설인데도 당당하다. 이에 페미니스트들은 다양한 그릇 사진을 SNS에 올리며 응답을 했다. 명랑하고 꿋꿋하게 분노를 숨기고 위트 있게 대처하는 그들을 보면서, 품위 있는 맞대응에 또 한 번 감탄했다. 그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꾸준하기에 춤추며 웃으며 축제처럼 혐오에 맞서야 할 때도 있지 그런데도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얼마나 목매게 되는지…… 절감했다.
세계 남성의 날이 없는 이유는
365일 중 364일이
남성의 날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기억한다.
여성의 날이 있다는 것이 싫으면 여성의 날이 없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된다. 즉 모두가 인격체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지원하고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 모두가 페미니스가 되는 것.
이 글은 "헤드라인 제주"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