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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가르쳐준 쉼의 시간

by 가히

"너는 참 눈도 좋다. 나는 침침해서 글 읽는 게 고역이더만"


브런치에 글을 올리더니 느닷없이 첫 책을 낸 후 간간히 기사를 쓰며 글쓰기에 빠진 내가 신기한 듯 한 마디하는 친구에게 말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엄청 건강한 눈을 물려받았나 봐. 눈을 그렇게 많이 사용하는데 시력도 아직은 괜찮으니"


친구 말에 은근 자랑하듯 대답했던 나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난 추석날 아침 일찍 눈을 뜨니 눈에 뭐가 들어간 듯 이물감이 느껴졌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눈을 떴다 감았다를 여러 번.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참 지나니 쿡쿡 쑤시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 도움을 받았지만 눈건강만큼은 자신하며 지내왔다. 중학교시절부터 확인한 시력검사 2.0이라는 결과에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조차 놀랐으니 말이다.


명절이라 내려온 아들이 나를 보자 놀라며 물었다.


"엄마 눈이 왜 그래요? 엄청 충혈되었네 무슨 일이야"

"눈에 뭐가 들어간 것 같은데 영 나오질 않고 계속 아프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들은 연휴에 문을 연 병원을 찾아냈다. 40여분 걸려 찾아간 안과의사의 진단은 '염증성 눈병'이었다. 원인을 묻는 내게 의사 선생님의 무심한 한마디.

"오래 사용하면 병이 나는 거죠"


그래, 60여 년 사용한 몸의 여기저기가 힘들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싶었다. 아무 말 없이 처방전을 들고 나오며 드는 마음 한구석 서러움인지 서운함인지 모를 감정이 들었지만 뭐 어쩌리. 덕분에 불편했던 눈 속이 편해졌으니 그거면 되었지 싶었다.


치료 덕분에 금방 나아진 나를 보며 아들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진짜 다행이다. 눈에 뭔가 이상이 생겼을까 걱정했는데"


나 또한 다행이라 생각하며 처방된 안약을 열심히 넣으며 긴 연휴를 보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호수공원 아침 산책을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쌀쌀해진 아침 단단히 준비하고 나선 산책길이 눈물바다가 되어버렸다. 두꺼운 옷과 모자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집을 나선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찬바람이 쌩 불어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참을만하다 싶어 걸음을 재촉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눈에서 눈물이 비 오듯 줄줄 흐르는 게 아닌가.


가끔 눈부신 햇살에 눈이 시린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눈물이 앞을 가리게 흐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흘릴 때보다 더 무섭게 흐르는 눈물이 어찌나 놀랍고 기가 막힌 지.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선글라스 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어떻게 걸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도 얼마나 신경이 쓰이는지. 계속해서 눈물을 닦으며 걷는 내가 이상해 보일 것이 분명했을 테니 말이다. 중간에 걷기를 포기할까 싶었지만 마음먹은 걷기를 마치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그래, 눈이 나를 대신해 울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모니터 속 작은 글자와 세상 소식에 몰두하면서도 괜찮은 척해온 내 몸이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라고 신호를 보낸 건 아닐까.


따뜻한 차 한잔을 앞에 놓고 거울 속 눈을 바라보며 속으로 말해본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오래도록 나의 세상을 밝혀준 눈에게 잠시의 휴식을 나눠야겠다. 오늘의 눈물은 아픔이 아닌 나를 돌아보게 한 선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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