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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Jul 20. 2024

니탓, 내탓

딸의 얼굴을 둘러싼 논쟁

나의 첫 조카가 태어났다. 내 동생의 딸아이로, 태명은 제니다.


마흔 줄을 바라보는 나이에 첫째 조카라니! 옛날 같았으면 형제자매들은 물론이고 친척들까지 줄줄이 결혼해서, 주니어들을 낳아 기르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저출산 시대가 맞긴 한가보다.



암튼 조카 제니는 39주 동안 엄마 뱃속에서 잘 지내다가 세상에 '뿅' 하고 나왔다. 벌써부터 엄마를 쏙 빼닮았다.


갓난아기를 보고 있자니 나는 우리 호두 신생아 시절이 급 궁금해졌다. 출산한 지 3년도 안 는데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 애를 낳고 뇌도 낳은 게 분명하다. 그래서 핸드폰 속 앨범 어플을 켜고 기억을 되짚어봤다.


그런데 오 마이 갓!


나는 남편을 낳았다. 닮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리도 닮았을 줄이야?! 아빠 얼굴을 한 불타는 고구마다. 나는 새삼스럽게 놀라서 남편에게 사진을 들이밀었다.


"여보 호두가 이때부터 완전 자기 판박이였네!"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어. 그런데 나 어렸을 적 미모에 못 따라오더라고."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어이가 없었다.

남편은 점입가경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 어렸을 때 예쁘다고 난리 났었어."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한 거지? 지금의 얼굴로는 그런 평가를 받을 수가 없는데... 황당했던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남편에게 현실을 알려주었다.


"내 유전자가 섞여서 호두가 이 정도인 거야. 딸 얼굴 성공한 줄 알아~~"



남편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지만 답 없는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그러고 며칠 뒤. 제니의 탄생으로 한창 들떠있는 우리 친정 부모님도 옛 추억을 떠올리며 나와 동생의 어릴 적 사진들을 꺼내보셨나 보다.


우리 부부가 친정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내가 두세 살 때쯤 찍은 사진을 꺼내 들고 나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봐봐. 네가 이랬어. 지금 호두랑 똑같이 생겼지?"


"어, 그렇네? 내 얼굴이랑 닮은 구석이 있었구나."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는 나를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소설 제목처럼 우리 모녀는 발가락만 닮았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친정엄마의 그 뒷말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근데 너보다 호두가 더 이쁘게 생겼어. 너는 아기 때 별로였는데 지금 호두는 예쁘잖아."



호두가 그때의 나보다 예쁘다니? 이는 곧 아빠 유전자가 한몫해서 지금 괜찮게 생긴 아이로 태어났다는 되는 게 아닌가? 


친정 엄마의 그 발언으 호두 아빠가 '예쁜 아가였다는 썰'이 사실로 돼버렸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진실이 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대화를 들은 호두 아빠는 말없이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분하지만 나는 딸의 미모를 위해 참기로 했다. 부디 아빠처럼 역변하지 않길 라고 또 바란다.






제니가 모두의 축복 속에서 건강하게 태어나 다행이다. 철학원에서 좋은 이름 서너 개를 받아온 상태로, 이제 곧 제니의 진짜 이름이 생길 예정이다. 과연 어떤 이름을 가진 아이가 될지 생각만으로도 벅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김춘수


                               


몇 주 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고 있는 한 작가님께서 비 내리는 연못 위 연꽃 사진을 보내주신 적이 있다. 그 사진을 보고 느꼈던 아름다움이 잔상으로 남아서일까? 장마철에 태어난 제니가 한 떨기 연꽃 같다. 그것도 청초하고 새하얀 연꽃 송이.



이렇게 연꽃처럼 피어난 제니가 꽃길만 걷길 바랄 뿐이다. 온 세상의 축복 속에서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아이 자라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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