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시기는 없다

by 로엘라

뽀얗고 말랑한 연우를 보고 있으면 무균 상태 그대로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깨끗한 아이에게 내가 손을 대면 더러운 게 묻을까 봐 안기 전엔 늘 손을 씻는 게 버릇이 되었다. 간식을 줄 때도 그랬다. 계란 껍데기, 바나나 껍질을 벗긴 손으론 연우를 안지 않았다. 머리를 습관처럼 만진 뒤에도 손을 씻었다. 그러면서도 화학제품이 묻을까 핸드크림은 안 발랐다. 안방 침대엔 외출복 그대로 드러누워도 연우 침대에 누울 땐 샤워를 하거나 그게 안되면 손발은 꼭 씻고 들어갔다.


연우가 15개월에 들어서며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다. 언제 가든 어린이집에 가면 처음 1년 동안은 병치레를 달고 산다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다. 그런데 아파도 너무 자주 아팠다. 다 나은 지 2주 만에 또 맑은 콧물이 나더니 그새 목이 붓고 열이 났다. 지난번이랑 같은 양상이었다. 결국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우유도 계란도 무항생제 인증받은 것만 먹였는데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얼마 전 병원에 간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몸이 좋지 않아 링거를 맞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엄마가 함께 와서 딸을 나무라고 있었다. 시험기간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데 펜을 쓰는 오른손에 링거를 맞으면 어떡하냐는 거였다. 순간 이 엄마가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어린이집 가방 맨 앞에 해열제를 새로 챙겨 넣으며 내가 꼭 그 엄마가 된 것 같았다. 다들 이렇게 산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다가도 이게 맞나 싶었다. 15개월에 어린이집 보내는 거면 그래도 적당한 시기에 잘 보내는 거라던 사람들의 말이 오늘따라 더 건조하게 느껴졌다.


100살에 돌아가신 분의 죽음도 내 할아버지라면 호상이 아니듯, ‘이만하면 적당한 시기’라는 건 없었다.


어젯밤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갛게 부푼 얼굴의 연우가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그 웃음에 마음을 놓으면 안 되었다. 자는 동안 연우는 열이 40.2도를 넘었다가 세 시간 만에 35.8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물수건으로 목과 겨드랑이를 닦다가도 다시 양말을 신기고 담요를 덮어 품에 안았다. 너무 꼭 안으면 답답할까, 너무 놓으면 엄마의 체온이 전해지지 않을까. 소중한 도자기를 품듯 아기를 안은채 몇 번이나 등을 쓸어내렸다. 쫍쫍거리며 마른 입술을 벌리면 얼른 일어나 빨대컵을 입에 물렸다. 자는 동안 식은땀으로 베개와 이불이 모두 젖었다. 마른 손으로 연우의 젖은 머리칼을 넘기며 새벽이 다 갔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 연우는 하루 종일 엄마와 지냈다. 아기는 늘 내 목소리가 닿는 거리 안에서 놀았다.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있어도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이제는 울어도 들을 수 없고, 들어도 갈 수가 없다. 일과 중 오는 연락이라면 안 좋은 소식이겠지. 연락이 오지 않길 바라면서도 연우가 궁금해서 괜히 키즈노트를 몇 번씩이나 열어본다.


링거를 맞고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처럼, 해열제를 먹고 어린이집을 가야 하는 연우가 안 됐다.


산후조리를 위해 언니집으로 올라간 친정엄마가 그립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건 나도 연우도 마찬가지다. 일을 하다 팔을 다친 시어머니를 부를 수도, 미혼이라 아기보다는 소 키우며 송아지를 본 게 전부인 도련님을 부를 수도 없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연우가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아침 출근길도 연우는 평소와 똑같이 웃으며 빠빠이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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