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의 짧은 여름휴가가 끝났다. 작년 여름엔 연우가 품에 안겨만 다녔으니 이번이야말로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여름 나기다.
첫날은 어린이집에 연우를 보내고 남편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일 년 만의 일이라 근사한 뷔페를 갈까 가까운 교외로 데이트를 할까 며칠 동안 설레며 고민했다. 그러나 우리가 향한 곳은 그동안 미뤄온 건강검진이었다. 아이를 맡기고도 영화 한 편은커녕 집에서 부족한 잠이나 잔다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수면 마취가 덜 풀린 채 점심을 먹었다. 카페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방학만큼은 연우가 어린이집에 오래 남아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우리는 커피 한잔의 여유보다 연우의 신난 표정이 더 보고 싶었다.
남은 휴가 동안 산과 바다, 계곡을 누볐다. 야외에서 하는 한여름 물놀이는 대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깔끔하고 쾌적한 곳만 찾아다녔다. 비 오는 날은 유리창 너머로 구경하는 게 좋지 비를 맞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우에겐 모든 게 처음일 거란 생각에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 박물관, 과학관, 아쿠아리움도 더했다. 모노레일도 탔다. 이런 곳은 누가 다니나 싶었던 생태 체험관에서 연우와 돌고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모노레일을 타기 위해 근처 박물관을 구경하며 한 시간을 기다렸다. 연우가 없었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곳과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에 연우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긴 낮잠을 잤다. 깨어있을 땐 함께 여름노래를 들었다. 우리가 노래를 신나게 부르면 연우는 고개를 까딱이며 박수를 쳤다. 따가운 모래알 대신 조약돌이 가득한 몽돌해변을 찾았다. 해가 지기 시작했지만 바다는 여전히 밝았다. 얕은 파도인데도 연우는 긴장해서 나의 품에 안겼다. 물가에 내려놓으면 발이 닿을까 다리를 달랑 들며 나의 팔을 더 세게 잡았다. 방수 기저귀에 수영복, 선캡, 선크림까지 모두 챙겨갔지만 결국 연우는 바다를 발바닥으로만 느꼈다.
연우는 밀려오는 파도를 무서워했고 흐르는 계곡물을 좋아했다. 연우 허리춤만 한 곳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떨어졌다. 꼭 아기 맞춤 폭포 같았다. 연우는 그곳에 자리 잡고 앉아 물장구도 치고 비눗방울도 불었다. 물놀이 내내 활짝 웃느라 연우의 광대가 통통하게 도드라졌다. 탱글탱글한 청포도 두 알이 연우의 볼 위에 하나씩 달려 있는 것만 같았다. 평상에 앉아 고기를 배불리 구워 먹었다. 연우와 함께 땀이 흐르도록 더운 날을 견디는 것도 처음이었다. 작년엔 연우의 태열이 걱정되어 24시간 내내 에어컨을 켜고 지냈다. 더워서 땀이 비 오듯 흐르는 느낌은 한동안 잊고 있던 감촉이었다. 연우를 살펴보니 작은 콧방울과 인중 사이에 조그만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과학관에 가서는 작은 로봇들이 노래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구경했다. 작년 여름엔 공룡을 좋아하는 사촌 형을 따라 유모차에 앉아 구경만 하던 곳이었다. 이번에는 토네이도가 생기는 모습을 지켜보고, 셋이 꼭 껴안은 채 태풍 체험도 했다.
생태체험관에서 돌고래를 오랫동안 집중해서 보는 모습이 대견해 다음날엔 아쿠아리움을 찾아갔다. 두 달 전만 해도 뛰어다니기 바빠서 물고기는 관심 없던 연우였다. 짧은 사이 훌쩍 큰 연우는 물고기와 펭귄을 꽤 오랜 시간 관찰하듯 구경했다. 휴가 기간 동안 지켜본 연우는 확실히 많이 컸다. 음식을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키더니 이제는 반건조 오징어를 잘게 잘라주면 야무지게도 씹어 먹는다. 염소처럼 부지런히 도 오물거린다, 아직 어금니도 없으면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입을 벌린 채 뽀뽀를 하더니, 이젠 입을 꼭 다물고 입술을 쭉 내민다. 할머니 볼에 침 묻히던 시절은 어느새 지나갔다.
가장 놀라운 건 우리의 말을 더 많이 알아듣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카시트에 앉아 피곤한 듯 발을 동동 구르길래, “머리 기대고 눈 감아 봐” 했더니 정말로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는 시늉을 했다.
“쪽쪽이 배 위에 떨어졌네. 찾아서 입에 물면 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우는 더듬더듬 쪽쪽이를 찾아 입에 물었다.
운전 중이던 남편이 방귀를 뀌었고, 나는 코를 막았다. 그러자 연우도 엄마를 따라 코를 잡았다.
‘아이코 냄새’라고 말하면 자동으로 코를 감싸 쥔다. 연우의 개인기가 하나 더 늘었다.
처음이란 단어가 이토록 자주 떠오른 여름은 처음이었다. 아기를 데리고 움직인 여행이 아니라 아이 덕분에 움직인 여행이었다. 연우의 눈에 비친 바다, 연우의 손에 닿은 계곡물, 연우의 입에 머문 오징어 한 점. 모든 것이 연우에게는 처음이었고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따뜻했다. 연우의 ‘처음’을 놓치지 않으려 우리는 하루하루를 쉼 없이 움직였다. 아침엔 짐을 쌌고 저녁엔 짐을 풀었다. 이른 저녁 연우가 잠들고 나면 한 명은 젖은 빨래를 하고 다른 한 명은 설거지를 했다. 몸은 회사 다닐 때보다 고단했지만 매일이 휴가였으면 싶었다.
내년 여름은 또 어떤 처음을 마주하게 될까. 벌써 마음이 간질간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