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진심을 목격한다는 것
연우는 눈 맞춤을 좋아한다. 어쩌다 우연히 마주치는 눈길에도 잊지 않고 방긋 웃어주는 다정한 아기다. 어린이집 적응기간에는 한동안 마음이 상했는지 엄마 눈을 일부러 피하며 삐친 티를 냈었다. 반대로 연우가 말썽을 부릴 때 내가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면 슬쩍 다가와 자기 볼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이쁜 짓’을 한다. 강아지 같은 것이 하는 짓은 꼭 사람 같다.
하루 종일 연우와 시간을 보내도 어쩐지 연우와 거리감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 느낌이 허전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시나 연우의 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날이다. 백일도 안된 연우를 데리고 백화점에 갈 때면 직원들이 꼭 같은 소리를 했다. ‘아이고- 아기가 자기 엄마만 쳐다보네.’ 눈과 눈이 마주쳐 서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연우가 유독 까꿍놀이와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눈빛에 어떤 역할이 있다면
진심을 느닷없이 말하기 좋다는 것
이제야, 눈빛의 탄생
두 눈이 반짝 빛나는 순간만큼 진심일 때가 또 있을까.
내 눈빛이 빛난다는 이야기는 평생 살면서 딱 두 번 들어보았다. 첫 번째는 스무 살 때 친구가 한 말이다.
“너는 먹을 거 이야기할 때랑 네 남자친구 이야기 할 때만 눈동자가 반짝거려.“
두 번째는 칠, 팔 년 전쯤 회사 언니가 해준 말이다.
“어머 진희야, 네가 글 쓰는 이야기를 하니까 니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이 나.”
실제로 내 눈빛이 생기를 찾은 때가 그 두 번뿐이었겠냐만은, 그 순간만큼은 말로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선명했었나 보다.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에 글쓰기 모임을 처음 나갔다. 말보다 생각이 많던 내게 글은 유일한 해소 방법이었다. 이불을 덮고 밤새 울어도 가라앉지 않던 마음이, 글을 쓰고 나면 조금 나아졌다. 글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했지만, 적어도 마음만큼은 한결 정돈되었다.
남들 눈에는 일기처럼 보이는 글들도 에세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이니 더 있어 보였다. 한 달에 한번 사람들과 각자 쓴 글을 가지고 합평을 했다. 내가 쓴 글은 마치 자식 같았고 누가 뭐라 해도 내겐 최고였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기에 자기 글을 이야기하는 그 순간마다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꿈꾸는 듯 빛나는 눈동자들을 마주하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아기를 키우며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이렇게 귀한 눈빛을 예전보다 자주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마트에 가서 남편에게 연우를 맡기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아주머니 한 분이 멈춰 선 채 한 곳을 응시하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시선을 따라갔더니 그 끝에 연우가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연우와 산책을 하다 보면 맞은편에서 무표정으로 걷던 사람들도 시선이 아기에게로 향하기만 하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엘리베이터처럼 좁은 공간에 있으면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기를 향해 까꿍을 하거나 손인사를 흔드는 실루엣도 자주 본다. 엄마 몰래 아이에게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이다.
이들보다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보통 손주가 있는 할머니이거나, 이맘때의 아이를 키워본 적 있는 여성들이다. 이들은 어쩐지 아이처럼 신나는 눈빛으로 연우를 한참이나 바라본다. 그러고선 몇 개월인지 꼭 물어보고 그때의 자기 손주이야기나, 아들딸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손주는 10개월부터 걸었다라거나 우리 아이는 쪽쪽이를 안 물어서 재울 때마다 고생했다 하는 자기만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면서도 눈빛은 여전히 아이처럼 빛난다.
그때마다 나는 연우를 보는 사람들의 눈을 한참이나 구경한다. 그들은 연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연우를 통해 그 무렵 자신의 아이를 추억하고 있었다.
연우 덕분에 나는 거의 매일 사람들의 진심을 목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