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대해 묻는다면, 내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햇살 같은 사람이에요. 강한 바람도 못 벗긴 나그네의 외투를 스스로 벗게 하는 따뜻함을 가졌어요.”
바람 같은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좋을 땐 심장이 터질 듯 도파민이 샘솟았고, 나쁠 땐 심장이 쪼그라들듯 코르티솔이 흘러넘쳤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내 감정을 다루기 어려웠다. 바람이 강해질수록 나는 오히려 움츠러들었다.
남편과 만나며 안정되고 균형 잡힌 연애를 했다. 기분은 미세하게 일렁였지만 망가지지 않는 평온이었다. 나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타면서도 함께 떠는 것보단 한 사람이라도 따뜻한 게 낫고, 그 따뜻한 사람은 네가 되어야 한다며 코트를 벗어주었다. 이전 연애에서 운전할 때 옆자리에서 자는 남자친구를 보며 마음이 차게 식었던 나였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옆에서 피곤해하면 눈 좀 붙이라며 오히려 먼저 카시트를 편하게 젖혀주었다. 사소한 일에 쪼잔하게 구는 나와는 달리 남편의 마음은 늘 한결같이 크고 따뜻했다.
남편은 본인 취향을 먼저 내세운 적이 없다.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보는 게 더 좋다고 말한다. 지금껏 내게 화를 낸 적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화를 잘 참느냐고 물었더니 참는 게 아니라 애초에 화가 날 일이 없다고 한다. 반대로 내가 툴툴거리면 그런 내 모습마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먼저 사과한다. 남편은 감정이 화로 번지기 전에 여유롭게 소화하는 법을 알았다.
그에 반해 나는 감정의 물결이 쉽게 출렁이는 사람이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조용한 다혈질로 살았다. 나도 겉으로 화를 잘 내지는 않았지만 참는 편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그 감정은 반드시 다른 방식으로 새어 나왔다. 우울이 되거나 눈물이 되었다. 기분이 좋다가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남은 하루가 가라앉았고,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감정이 내 피부에 들러붙은 습기처럼 느껴졌다. 늘 습한 공기가 나를 감싸는 기분이었다. 열대우림 기후처럼 내 감정은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 그럼에도 남편은 개의치 않았다. 특유의 산뜻함으로 나를 덜 춥고 덜 덥게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폭우가 그치고 그 자리엔 다시 햇살이 비쳤다.
임신기간 동안 태어날 아기가 제발 아빠를 닮았으면 했다. 엄마가 가진 감정의 파고만큼은 물려받지 않았으면 했다. 다행히도 아기는 태양 같은 아빠를 닮았다. 햇살은 강하지만 일 년 내내 따듯하고 일교차가 없는 곳처럼 연우는 지중해성 기후를 닮았다. 잠이 오고 짜증이 나서 감정을 퍼부을 때도 있지만 울음이 짧다. 금세 말갛게 개인다. 간식으로 화제를 돌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으며 뛰어다닌다. 배고플 때 빼고는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아기다.
집안에 태양이 둘이나 있으니 내 우울은 오래가지 못했다. 밀린 빨래와 설거지를 보고 한숨이 나오다가도 연우의 눈웃음과 깊은 보조개를 보면 금세 웃음이 났다. 연우의 오랜 잠투정에 지쳐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기를 달래고 있으면 남편이 달려와 연우를 안아 들며 한마디 했다. ‘연우야, 엄마 화났다. 눈치 챙겨.’ 그 소리를 들으면 또 픽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슬아슬한 비행을 하던 내가, 남편과 아이와 함께하며 점차 안정적인 고도를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나에게 맞는 공기의 밀도와 방향을 조금씩 읽을 줄 안다. 그래서 다음 난기류도, 예고 없이 몰려올 감정의 날씨도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시간이 흘러 연우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오면 엄마보다 더한 습기로 엄마아빠를 놀라게 할 수도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예측할 수 없는 울컥과 회복이 반복되는 시기를 지날 것이다. 하지만 열대우림의 기후로도 지내볼만하다. 비가 내린 후에야 모든 것이 무성하게 자라는 생명력 넘치는 곳이다. 폭우가 쏟아진 후엔 반드시 햇살이 든다. 그곳에서 한껏 꺾이고 다시 자라다 보면 엄마처럼 연우도 연우에게 맞는 기후를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