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을 지키는 마음

by 로엘라

아기를 재우려 나란히 눕기만 하면 어김없이 소란이 시작된다. 치즈가 있는 냉장고를 향해 엄마 손을 잡아끄는 것부터가 매일 밤 소동의 첫 장면이다. 내가 꿈쩍 않고 버티면 몸을 이리저리 타 넘기도 하고 배 위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이기도 한다. 자장가가 나오는 올빼미 인형의 버튼도 한 번은 꼭 눌러봐야 직성이 풀린다.


별다른 소득이 없으면 물고 있던 쪽쪽이를 톡 떼어내고 입을 짭짭거린다. 이번에도 밖으로 나가는 대신 미리 준비해 둔 물통을 가져다 바친다. 꼴깍꼴깍 물을 마신 뒤 다시 나갈 틈을 주지 않으려 얼른 품에 안아 나의 어깨 밑에 꼭 잡아 둔다. 한참을 뒹굴거리던 연우는 어느새 밑으로 내려가 엄마 다리 한쪽을 붙잡고 비비적거린다. 잠들 무렵이면 엄마의 자궁이 그리워지기라도 하는 걸까. 내 허벅지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며 웅크린다. 잠들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다.


연우는 졸릴 때면 어김없이 귀를 막는다. 아기의 행동이 궁금해서 나도 따라 해보았다. 어릴 적 소라를 귀에 대보면 소라 안쪽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던 기억이 났다. 아무것도 없는 진공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저 멀리에서 내 심장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연우가 조금 이해되었다. 혹시 엄마 뱃속에서 들리던 심장 소리와 양수의 울림을 떠올리는 걸까. 두 손으로 귓가를 감싸며 세상의 소음을 밀어내고 스스로 만든 조용한 틈 속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이 꼭 물속에 잠기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손을 풀고 고개를 좌우로 가로젓는다. 귀를 막은 자세로 잠들기는 어려운가 보다.


연우가 잠과 각성의 경계에서 한참을 참방거린다. 이내 눈을 감고서 포근한 틈을 찾아다닌다. 다시 품 속에 안으니 이번엔 손바닥을 날 세워 나의 목 뒤로 억지로 밀어 넣는다. 침대 매트와 내 등이 맞닿아 공간이 없는 줄 알면서도 연우는 낑낑거리며 손을 끼워 넣는다. 그 조그만 팔에 피라도 안 통할까 걱정스럽다. 그러면서도 틈을 찾아 파고드는 모습이 마치 추위를 피해 엄마의 날갯죽지 안으로 숨는 아기 펭귄 같아 귀엽다.


조금 전까지 손을 비집고 넣던 아이가 이젠 다리까지 들이민다. 내 다리 사이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더듬더니 금세 파고들었다. 혹시라도 저릴까 봐 나는 조심스레 다리를 들어 올렸다.


이번엔 모로 누워 연우를 뒤에서 안았다. 아기도 엄마를 등지고 옆으로 몸을 둥글게 말았다. 나는 무릎을 살짝 굽혀 연우와 더 가까이 밀착했다. 아, 뱃속에서 연우는 이 자세로 열 달을 지냈겠지. 드디어 잠자기 좋은 자세를 찾은 걸까. 연우의 움직임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나는 아기의 손을 감싸 쥐고 조용히 자장가를 불렀다. 언제나처럼 첫 시작으로 *Hush, Little Baby*를 흥얼거렸다.


어느새 연우의 숨소리가 얕아졌다. 나는 파도를 달래듯 속삭이며 자장가를 이어갔다. 그러다 작은 숨결마저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 아기의 배는 미세하게 오르내리며 고요 속에 잔잔한 물결을 만들었다. 연우는 그렇게 잠의 바다로 빠져들었다.


평화로이 잠든 연우를 지켜보다 조용히 방을 나서면 온 집이 숨을 죽인 듯 적막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뒤척이며 투정을 부리던 아이가 정말 이 집에 있었나 싶다. 남편이 퇴근하려면 네 시간은 족히 남았다. 아이가 자라고 살림에도 조금씩 요령이 붙으면서 나만의 여백이 생겼다. 하루 종일 불 켜진 닭장 같던 집 안에도 이제는 조용히 숨 쉴 틈 하나쯤은 남겨둘 수 있게 된 것이다.


틈이라는 작은 곳간을 열어두었더니 그 사이로 생각과 감정이 마음껏 드나든다. 역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여유가 생기니 연우가 더 예뻐 보인다. 사랑스러운 연우의 행동과 그 모습을 보고 어쩔 줄 모르겠는 감정을 메모해 두었다가 글을 쓴다. 그래서 더 관찰하게 되고 그럴수록 쓸 거리가 자꾸 생긴다.


숲 속에선 숲을 볼 수 없다. 연우를 안은 채로 연우를 볼 수 없다. 이렇게 틈이 생긴 날에는 아이를 내려놓을 것이다. 그 대신 감상하듯 마음껏 바라보고 조용히 기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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