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귀신

(4화) 춘자 씨가 사는 그 집

by 함예

이곳에 봄이 오면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향하는 곳이 있다. 바로 딸기농장이다. 햇빛이 쨍하게 비치는 5월이 되면 딸기가 빨갛게 익기 시작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딸기를 따러 가기 위해 분주해진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다운타운과 가까운 코틀 스트로베리 팜(Cottle strawberry farm)이다. 이곳에서는 단돈 $15만 내면 딸기를 1갤런(Gallon)의 바구니에 가득 채워 가져 갈 수 있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참고로 1갤런은 3.78L에 해당한다.


IMG_1530.JPG 코틀 스트로베리 팜(Cottle strawberry farm). 출처: YE SOL


봄이라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유독 봄 날씨라고 느껴지는 주가 있다. 해는 따스하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산책하거나 피크닉을 가기 딱 좋은, 무조건 외출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날씨 말이다. 그러면 비로소 딸기를 따러 가기 딱 좋은 시기가 온 것이다. 우리는 해가 너무 뜨겁지 않은 오전 시간 딸기를 따러 갔다. 그 시간에도 사람들은 이미 붐볐다. 유치원에서 단체로 딸기 따는 체험을 하러 온 유치원생부터 양손 가득 무려 두 개의 바구니를 채워가는 할머니들까지.. 그곳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딸기 농장엔 딸기를 딸 수 있는 구획이 정해져 있었다. 사람들이 딸기를 따고 나면, 딸기가 다시 자라는 시간 동안 그 구획은 막아 놓고 다른 구획을 개방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듯 보였다.


IMG_152466.JPG 햇빛을 받아 더욱 영롱한 빛을 띠는 딸기. 출처: YE SOL


우리는 가장 안쪽의 사람들이 제일 없는 곳으로 향했다. 그 근처에서는 10대로 보이는 소년들이 커다랗고 모양이 울퉁불퉁한 딸기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었다. 몬스터 딸기라고 칭하며 서로 더 크고 못생긴 딸기를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또 주변에는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딸기를 따고 있었는데 그들은 작고 동그란 예쁘게 생긴 딸기들을 골라 담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모양보다는 색을 기준으로 딸기를 따기 시작했는데, 유독 햇빛을 받으면 빨갛게 영롱하게 빛나는 딸기들이 있었다. 처음엔 금방 채울 수 있을 것 같던 바구니에는 끝도 없이 딸기가 들어갔다. 딸기 농장에 들어간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바구니가 거의 다 채워질 때 즘엔 더욱 신중하게 딸기를 골라 넣어야 했는데, 따고 싶게 생긴 딸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한 바구니 가득 담긴 딸기를 보자 군침이 흘렀다. 하지만 바구니에 담긴 딸기가 너무 예뻐서 차마 망가뜨릴 수 없을 것 같았다.


IMG_1494.JPEG 딸기가 한가득. 출처: YE SOL


미국에 오래 살던 사람들 말에 따르면 미국 딸기는 우리나라 딸기보다 맛이 없다고들 한다. 달콤한 맛이 적고 새콤한 맛이 더 강하게 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 와서 겨울에 처음 사 먹어 봤던 딸기 맛이 딱 그랬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말처럼 역시 미국 딸기는 맛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먹고 싶게 생긴 비주얼과 달리, 새콤한 맛이 더 강할 것이라 예상하고 딸기를 따왔다. 하지만 5월의 딸기 맛은 완전히 달랐다. 달콤하다 못해 하나의 완벽한 디저트처럼 느껴지는 딸기 맛은 내가 그동안 맛봤던 그 어떤 딸기보다도 맛있었다. 누가 미국 딸기는 맛없다고 말했던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딸기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다. 맛도 맛이지만 딸기와 관련한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나의 생일은 5월 4일이다. 완연한 봄이 왔을 무렵이기에 딸기 또한 한창 맛있을 때이다. 아마 하우스 재배가 보편적이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은 더욱 그랬을 것이다.

background-g628aa2992_1920.png 추억의 비디오. 출처: pixabay

어린 시절 티비장 아래에는 다양한 비디오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태어난 지 1년째 되는 날 찍은 ‘돌 비디오’가 있었다. 그 시절 돌상은 주로 집에서 엄마들이 직접 차렸다고 한다. 돌상을 차리기 위해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는 내 생일 며칠 전부터 좋은 과일과 떡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팔았을 것이다. 내 생일날엔 돌상에 올릴 음식들을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분주하셨을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보았던 그 비디오엔 시작할 때부터 잔뜩 칭얼거리며 울고 있는 내가 있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그날 나는 열도 심하게 나고 아팠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상 속 그 아기는 잔뜩 인상을 쓰고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기도 울음을 그치고 눈이 휘둥그레지던 순간이 있었다. 할머니가 돌상에 탐스러운 딸기를 올려놓던 순간이었다. 딸기가 나타나자 그 짧은 두 다리로 의자에서 내려와 딸기로 돌진했다. 아기는 접시의 가장 위에 놓여있는 딸기를 하나 집어 들더니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러더니 딸기의 새콤함에 잠시 눈을 찡긋거렸다. 그리곤 베어 물었던 딸기를 다시 상에 내려놓더니 이내 새로운 딸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이런 식으로 딸기를 한 입 먹고 버리고 새로운 딸기를 집어 또 먹고 내려놓는 행동이 몇 차례 이어졌다. 비디오 속에선 어른들이 이 모습을 보고 어찌나 웃던지 나중엔 딸기를 먹던 그 아기도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123.jpg 나의 돌상. 출처: YE SOL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딸기를 먹을 때면 엄마와 할머니는 매번 나의 첫 번째 생일날 있었던 이 이야기를 하며 그때부터 딸기 귀신이었다는 말을 하시곤 했다. 돌 비디오를 통해 그 증거까지 이미 본 나로선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딸기를 먹을 때면 아직도 나는 엄마와 할머니가 나에게 딸기 귀신이라고 놀리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딸기는 내가 어린 시절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기였는지 상기시켜주는 고마운 과일이다. 딸기 하나에도 이런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니, 행복한 추억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 힘이 참 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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