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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국가고시 준비 중 아들에게 쓴 편지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13)

by 김정훈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 : 열 세 번째 이야기 : 의사 국가고시를 준비하며 아들에게...


이 글은 PK실습이 끝나고 의사 국가고시를 준비하며 밤늦게 집에 들어가야 하는 의과대학 막바지에 너를 생각하며 쓴 글이다. (몇 년 전 아들이 고3 때 갈무리)


이 글을 쓸 때 아빠가 생각한 것처럼 너는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졌구나. 모든 것이 아빠가 예언한 대로 되지 않았니? 너에 대한 아빠의 마음도 이 글 그대로 될 것이다.


시간이 더 흘러서 아빠가 눈이 희미해지고 무릎이 구부러지더라도 이 마음은 또렷하고 구부러지지 않을 거란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들아!


투정 부리며 유치원 가기 싫다 하던 때가 며칠 전 같은데 벌써 한 학기가 지나고 이제 두 번째 학기를 맞이하는구나.


늦은 밤...

오늘 현관문 여는 소리에 뛰쳐나오며 선물을 달라고 눈을 꼭 감고 손을 벌리면서 기대로 가득 차서 오물거리는 그 입술을 볼 순 없겠지.
앞으로 꽤 오랜 기간 아빠는 너의 그 호기심 어린 큰 눈망울 대신 평온하게 감긴 눈꺼풀 위로 콧등에라도 닿을 듯 기다란 네 속눈썹만 보게 되겠구나.


한 학기를 잘 보내고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잘 사귄 너를 보면서 아빠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을 느낀단다.


이담에 네가 이름난 대학을 들어간다 해도 지금보다 더 자랑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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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너는 이제 처음으로 세상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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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가는 것은 능력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지만 네가 환타랜드에 가게 된 것은 네게 그냥 주어진 것이다.
산다는 것은 많은 능력을 길러서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 주어진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그 첫걸음을 놀랄 만큼 잘 마무리한 것이다.
처음 몇 주 동안 겪은 어려움과 상처는 새롭게 사람을 얻기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사람을 얻는 것은 달리기에서 1등 하는 것과는 비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일이란다.
너는 소중한 그것을 얻기 위해 마땅히 치러야 할 값을 치른 것이다.
앞으로도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네 방식만 고집하지 말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단다. 그리고 네 마음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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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첫 관문을 너무도 잘 통과해서 많은 친구들을 갖게 된 것은 너무나 장한 일이다.


사람을 사는 일은 나팔꽃을 키우는 것 같아서 햇빛처럼 따스한 마음과 이슬처럼 촉촉한 말이 필요하단다. (아빠는 이제야 네가 왜 이슬반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아 *^^*)


소낙비처럼 세찬 물방울은 때로 친구 마음의 잎새를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 소리 없이 잎새를 적시는 이슬처럼 촉촉한 말을 배운다면 언약이 주변엔 나팔꽃, 채송화, 들국화처럼 예쁜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시들지 않고 함께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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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아들아.


너는 언제나 장난감을 더 가져야 한다며 선물을 조르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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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들아!

세상엔 선물보다 더 큰 것이 있단다.
그것은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이란다.
아빠는 네가 좋아하는 워그레이몬, 유희왕 카드를 모두 다 사줄 수는 없단다.


그러나 늘 주고 싶은 것이 있단다.
그것은 너를 향한 아빠의 마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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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풍선껌을 사가지고 올 때도,

병원 입구에서 분홍색 꽃을 꺾어 올 때도,

큰 로봇을 사 줄 때도

언제든지 아빠는 껌이나 꽃, 로봇을 쥔 손에

하나 가득 너를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을 얹어서 주곤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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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로봇 등 뒤에 매달린

아빠의 사랑도 같이 받은 거니?
지금도 그걸 갖고 있니?


그건 로봇이 부서지고 난 후에도

부서지지 않고
꽃이 시든 후에도 시들지 않고
껌을 뱉은 후에도

네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거란다.


어느 날 니가 눈을 감고 선물을 바라면서

손을 벌린 그 두 손에 장난감 대신 아빠의 손이 올려질 때도

아빠는 늘 이 마음을 얹어 두었는데...


너는 선물이 없다고 투덜댄 적이 있지?


아들아!

그것이 아빠가 언약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그리고 영원한 선물이란다.


아들아!
니가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언젠가는 아빠도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들 거야,

물론 너는 어른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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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되면,

네가 팔씨름도

뜀박질도 아빠보다 더 잘하겠지.

오줌도 아빠보다 더 오래 멀리 누겠지.
물론 키도 아빠보다 더 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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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담에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어도

틀림없이 너보다 더 잘하고 큰 것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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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너를 향한 아빠의 사랑이란다.
이 사랑은 아빠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변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고,
허리가 구부러져도

이 사랑은 꺾이지 않을 것이고,
눈이 희미해질수록

이 사랑은 더욱 밝게 빛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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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아빠는 아빠의 모든 것을 네게 주고 싶단다.
그러나 장난감은 언젠가 고장 나고 부서질 테고,
좋은 옷도 언젠가는 낡고 작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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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지 않고 고장 날 수 없는 이 마음을 네게 줄게.


내 모든 관심과 마음을 다 가져간 아들아!

사랑한다!

곰돌이 인형보다 부드럽고
네가 타는 장난감 자동차보다도 더 큰 이 마음을 아빠는 보여주고 싶구나.


언젠가 네 키가 자라는 것처럼 눈이 자라면 아빠의 이 마음을 너도 볼 날이 오겠지.
아빠는 그때를 기다릴게.
하나님이 너를 아빠에게 선물로 주셨을 때 아빠는 특별한 능력을 받았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기다리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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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빠에게 선물을 바라지만,

아빠는 너로 인해서 덤으로 받은 선물이 지금까지만 해도 얼마나 많은지 몰라.

너 때문에 아빠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이 이름은 내게 너무도 감격스러운 것이란다.
사람으로 나서 조건 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흘러나가는 마음 그대로 조금도 가공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사랑이 되는...
원 없이 사랑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구나.


아들아! 지난번 캠프 갈 때도 아빠가 얘기했지?
아빠는 안경 쓰는 눈 말고도 가슴에 눈이 또 있다고...
공부할 땐 안경 낀 두 눈으로 책을 보지만 아빠 가슴에 있는 눈동자엔 안경 없이도 네가 너무 잘 보인단다.
공부할 때도 밥 먹을 때도 아빠 가슴의 눈동자엔 늘 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렴.


비록 네가 깜빡이는 두 눈에 아빠가 보이지 않더라도 네 맘 속을 자세히 보면 언제나 아빠가 떠나지 않고 거기 있을 거야.


아들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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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건 니가 그 당시 그린 동화야.


왕자가 해적을 물리치고 공주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아빠는 네 동화 속 주인공처럼


너도 용기 있게,


지금의 정규 교육과정 마지막 해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거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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