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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훈 Feb 19. 2024

나를 찾아가는 길, 숨결을 따라

만성통증의 민낯을 만나는 길


통증기능분석학회 추계 학술대회 강의록 초록 : 만성통증 증후군, 세 번째 화살의 비밀(12)




4) 나를 찾아가는 길, 숨결을 따라


가) 참 나를 찾아가는 가장 쉬운 방편, 호흡


나는 이제껏 몸과 생각이 서로 의견교환을 하면서 평생 살아왔다. 어떻게 갑자기 몸의 감각과 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넘어서 인간의 본래자리인 배경자아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육체와 정신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서 바라보면 보이는 것...


이제 흔히 '나'라고 불려 왔던 육체(body)와 정신(생각 mind)에서 떨어져 나와 그것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조해 보자.


앞서 보았듯 '참 나'는 나의 몸도 아니며, 생각도 아니다.


나의 몸과 생각, 감정을 바라보는 그 무엇이 바로 진정한 나(참 나)의 실체라면 실체이다.


이것을 알면 뭔가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정견(正見 바로 봄)이라 하고 뇌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메타인지라고도 부른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영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 똑같은 말은 아니지만 가리키는 지점은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몸과 생각은 때로 서로 합이 잘 맞아서 사이가 좋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서 늘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생각은 부족한 몸을 비난하고 몸은 한계가 있다면서 본능에 따른다. 생각과 몸이 서로를 비난하며 툭탁거리며 한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일상사 드라마이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가 펼쳐지는 바탕(스크린)이 있다. 드라마의 장면마다 울고 웃는다. 어떤 장면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밀쳐 내려하고 어떤 장면은 마음에 들어서 꼭 쥐고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묶어서 고통이라고 한다.


만성통증 환자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이 낯선 감각을 밀쳐내려 하지만 고통은 마음처럼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가지 않는다. 그렇게 밀쳐내려는 에너지가 오히려 고통을 더욱 단단하게 한다. 자신이 통증에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을 밀쳐내려고 하는 행동이 반대로 통증을 더욱 깊이 각인하기도 한다.  


온갖 인생 드라마가 펼쳐지는 영화관에서 모든 드라마의 장면들은 가상의 것이다. 아니, 일순간 사실이지만 영원한 사실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환영에 가깝고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 유일한 실체는 드라마가 아니라 스크린이다. 자신의 실체가 드라마가 아니라 스크린인 줄을 알아차리려면 우선은 멈춰야 한다.


걸음도 멈추고 생각도 멈추어야 한다.

멈추어야 비로소 보인다.

이것을 지관止觀이라 한다.



그래서 명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호흡이다.


호흡은 체성신경계(의지로 조절하는 신경계)와 자율신경계(의지와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조절되는 신경계)가 서로 만나는 지점이다.


호흡을 관찰하고 조절함으로써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티벳 불교 수행의 특징이다. 실제 티벳 불교에서 오랜 기간 수행을 한 수행자들은 체온을 몇 도씩 올리고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내면의 평화를 이루는데 훨씬 유리한 지점을 찾아간다.



나) 호흡을 제대로 못하는 현대인들, 만성통증에 물들다.


기립근과 복직근, 횡격막 등의 과긴장으로 인해 갈비뼈가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콕 집어서 표현하기 애매한 다양한 증상이 내부장기에서 나타난다. 실제 만성통증 환자들 중에서 각 장기의 증상으로 보면 폐가 잘 확장되지 않아 숨이 답답하고(Dyspnea) 위와 장이 압박받아서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며(Dyspepsia) 심장이 압박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조이는 증상(Angina like symptom)이 생긴다.


한편, 이때 만성통증 증후군 환자들의 내면 심리를 보면  우울감(Depression), 괴로움(Distress), 불안(Anxiety)이 한 데 뒤섞여서 나타난다.


이렇게 내부장기의 압박과 심리적 압박이 혼재되어 있을 때 극도의 고통이 수시로 찾아오고 삶을 정상적으로 살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통사에서는 SoDDA (쏘따 Somatic Dyspepsia, Dyspnea, Angina/Depression, Distress, Anxiety  줄임말)라고 부른다.



이렇게 애매하지만 지속적으로 삶을 파괴하는 증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호흡과 연관이 깊다. 감정에 끌려 들어가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호흡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무척 많아서 정상적으로 흉곽을 확장하지 못한다. 만성통증 증후군 환자들 중 호흡근육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횡격막과 늑간근과 같은 정상적인 호흡근육들을 잘 쓰지 못하여 단축된 경우가 많고, 호흡의 보조 근육인 흉쇄유돌근, 사각근을 많이 쓰면서 목과 어깨에 긴장이 집중된 분들도 많다. 일반적으로는 척추기립근으로 사용되는 장늑근과 최장근을 호흡하는데 과하게 사용하거나 제대로 사용을 하지 못하여 긴장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만성통증 환자들은 만성통증에 대한 기본적인 근육과 힘줄, 신경의 해부학적 치료 뿐 아니라 기립근의 허혈성 통증(SoDDA)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의학은 육체와 정신을 치료하는 학문이며 체성신경계는 과학과 의학의 탐구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호흡을 통해 체성신경계 너머의 세계를 일부 맛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은 자율신경계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내수용감각(내부장기의 상태를 알려주고 조절하는 감각)은 감정의 뇌(변연계)와 이성의 뇌(전두엽)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억과 감정은 모두 자율신경계, 내수용감각의 절대적 영향을 받고 있다.


감정이 밀려올 때 느끼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런 감정에 물들고 있는 자신을 떠올라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감정에 끌려가지 않을 힘이 생긴다.


명상을 통해 감각과 생각을 어둡게 하면 그곳에 무언가 텅 빈 내밀함이 있다.



인간의 본래성품, 인류의 공통의식, 배경자아,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자리!


이 자리는 신과 사람이 하나로 만나는 곳이다.


어쩌면 그곳은 창조주도 사라지고 개체적 인간인 Ego로서의 자아도 사라지고 없는 곳이며, 모든 경계가 사라진 텅 빈 공간이다.


인도 전통으로는 모든 사람 안에는 이 신성이 자리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나마스떼"하며 서로에게 인사한다. '내 안에 있는 신성이 당신 안의 신성을 추앙한다.'는 뜻이다.


경계가 사라진 이 텅 빈 공간에서 모든 것이 비롯되고 모든 것이 거기로 돌아간다.


사도 요한은 이 자리를 곧장 바라보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 자리를 보조국사 지눌은 “텅 비어 고요하나 신묘한 알아차림”(공적영지심空寂靈知心)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호흡을 통해 신과 인간이 만나는 방식이다.


이것이 배경자아를 알아차리는 또 하나의 귀중한 방편이다.


그래서 창세기에서는 신이 사람을 만들고 난 뒤 마지막으로 그 코에 호흡(영성,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다) 고통을 통해 확인한 자신의 본래 모습


만성통증 증후군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육체와 정신을 자신의 전부라고 이해하는 의식이 깔려 있다. 고통의 뒤편에는 이 배경자아를 알아차리는 또 하나의 문이 있다. 고통을 외면하면 이 문을 열 수 없다. 고통을 통해 이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첫 번째 화살을 맞아서 육체의 통증을 느끼는 경험자아와 두 번째 화살을 맞아서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기억자아는 서로를 비난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면서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고통은 배경자아를 알아채게 하는 깨달음의 문이다.


고통은 또 하나의 문이다


물론,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여기까지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의사가 이 안목을 가지고 환자들을 보아야 한다. 고통의 바다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들에게 다가가 고통 뒤에 있는 참 자신의 모습인 배경자아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을 따스한 연민의 눈빛과 분명한 어조로 알려주면 어떨까?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어떤 암환우 분의 이야기다.


"나는 이제껏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어요.

아이들 키우랴, 직장 생활하랴, 부모님 모시랴, 남편 뒷바라지 하랴...


그러나 이렇게 암에 걸리고 치료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정작 나는 어떤 때 가장 평화롭고 만족한 지...

그걸 모르겠더라구요.

온통 시선이 외부에 가 있고 머릿속은 해야 할 것들로 늘 가득 차 있었어요.


암치료를 하면서 비로소 눈을 나에게 돌리게 되었어요.

이제야 나를 바라보니 연민의 마음이 들더군요.

늘 소외받은 내면의 모습을 아껴주고 마음공부도 하기 시작했어요.


그 덕분에 일상이 좀 더 평화로워졌어요.

나에게 암은 정말 고통스러운 병이지만, 한편으로는 참 고마운 존재이기도 해요.

참 나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고통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고통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직면할 때 극복할 힘이 생긴다.


안타깝게도 만성통증을 가진 많은 환자분들은 고통을 직면할 용기가 부족하다.

용기가 없어 고통을 피하려 하다가 오히려 고통에 끌려다니는 분들을 자주 접한다.


이런 분들에게는 약이나 주사만이 능사는 아니다.

약과 주사로 해결되지 않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덜컥 수술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의사가 수술을 권하지도 않는데 환자가 수술이라도 해달라고 사정을 하는 경우도 보았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렇게 결정한 수술이 환자의 통증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의사가 깊어진 의식을 바탕으로 환자분들에게 약과 주사보다도 더 필요한 용기를 주어야 한다.


물론,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약과 주사도 써야 하겠지만 약과 주사에다가 연민과 용기를 함께 담아 준다면 어떨까?


세 번째 화살의 비밀을 꿰뚫어 보는 의사는 약과 함께 연민 한 방울과 용기 한 줌을 넣어주는 사람이다.






다음 시간에는 '만성통증 증후군, 세 번째 화살의 비밀' 총정리와 치료에서 치유로 나아가는 안목을 알아보고 시리즈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래는 경계가 사라진 치유자가 만성통증을 치유하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https://youtu.be/_iT2EGqbp10?si=iaPsX0uR0DLetA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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