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4)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작정 대구를 가겠다고
선택한 길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는데
결국 무한도전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 네 번째 이야기 "전단지가 가져다 준 반전"
전단지가 가져다 준 반전
대구로 내려갈 궁리를 하고 있던 차에 하루는 아내가 퇴근하면서 가져 온 종이 한 장을 들이 밀었다.
"김영 편입학원?" 빨간 바탕에 흰 색으로 그려져 열심히 어디론가 뛰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새겨진 전단지를 지하철에서 들고 온 것이다. 내가 의아해서 물었더니 만일 다시 회사를 들어가면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언젠가는 원치 않는 곳으로 갈 수도 있으니 의사가 되면 그럴 위험이 없지 않겠느냐는 소박하지만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나는 수학이 싫어서 문과에 지원했고 수학, 과학 등 이과 계통은 아예 까막눈인데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 했다. 다행히도 편입시험에는 수학이 없었다.
그러나 확인해 보니 대구에는 경북대와 대구가톨릭대만 의과대학에 편입제도가 있었는데 경북대 의대는 화학, 생물 등 학부에서 몇몇 과목들을 이수한 사람들만 지원할 수 있게 자격제한이 있었다. 다른 한 곳도 내가 들어갈 여지가 없었고...
자신이 없던 터라 경룡이 형에게 상의했더니 "내 나이 삼십대 중반에 수능 봐서 한의대 오지 않았냐? 너는 30초반인데 못할게 뭐냐?" 라며 적극적으로 찬성하셨다. 그래도 조심스러워서 지난해 수능 기출 문제를 주말에 사다가 하루 종일 문제를 풀어 보았다. "어라~ 생각보다 할 만하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은 몰살 ㅠ.ㅠ 과학은 질문과 실험내용을 잘 살피니 공부한지 10년이 넘었어도 반타작은 할 수 있었다. 영어와 국어는 공부 안하고 그냥 쳐도 거의 틀린 문제가 없었다.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겁도 없이 결심하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어찌 그랬나... 싶다...나도 그렇지만 아내는 그 뒷감당을 어이 하려고 ㅠ.ㅠ 그때는 정말 몰랐다.)
당시 나는 중화학본부 기획팀 대리였는데 상무님은 "잘 생각해보라. 조금 기다리면 해외지사 발령을 내도록 하겠다."하시면서 말리셨다. 해외지사 근무는 상사맨들이 모두 꿈꾸는 일이다. 급여도 훨씬 많고 다양한 경험에 차량지원, 숙소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이 있어서 모두들 해외지사 근무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기민이형이 간 대구에 이미 눈이 멀어서 그런 고마운 배려가 크게 들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분들인데... 언제 다시 만난다면 그 때 충분히 감사를 표하지 못했던 것을 곱절로 해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어쨌든 약 4년간의 선경종합상사에서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막상 회사를 그만 두고 나니 금전적으로 쪼달리는 것이 더 심해졌다. 아내의 월급으로 내 학원비와 생활비를 다 감당하려니 정말 만만치 않았다. 첨부터 누군가에게 신세질 생각은 아예 없었지만 팍팍한 생활에 아내의 임신으로 배가 불러오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너무 쓰렸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나는 대구가 내 고향이어서라기 보다 기민이형이 거기 있으니 그리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무슨 일을 하는가 보다 누구와 함께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
당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행복은 행복한 사람과 가까이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