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더하고, 더 했다

2023_이야포인트_06

by 이야
상상을 더하고, 더 했다

오늘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를 각색해서 썼던 걸 얘기해볼까 한다.

이전에도 마녀동화라는 제목의 작품을 쓰면서, 동화를 각색한 적이 있다.

나는 기존의 이야기에 나만의 시각을 더해서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2023 이야챌린지에는 그런 게 대략 5개 정도 있다.

먼저 솔로몬의 이야기부터 해보겠다.


솔로몬 혁명

나는 피곤할 때, 좀 더 생각의 전환이나 확장이 일어나는 편이다.

어느 날 아침, 아주 피로한 상태에서 갑자기 머리가 돌더니 솔로몬의 이야기를 내 입맛대로 정하게 됐다.

가령 아이를 반으로 자르라는 솔로몬의 말이 비유적이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토대로 바라보자 아이는 엄마와 아빠, 두 명의 보호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이를 나누라는 말은 두 사람이 돌볼 필요성을 뜻하면서, 밤낮이 없는 어린 시절에는 밤과 낮에 모두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이를 제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명의 여인이 각각 밤과 낮으로 나눠서 애를 보라는 의미로 해석하게 되었다.

내가 '나 홀로 기원전'을 찍던 때에, 나는 솔로몬을 내 양아버지로 느끼며 생각을 키웠던 적이 있는데, 그때에는 내가 저 아이였다면 '알았어요! 갈라질게요!'라고 외치고 두 사람 모두의 아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내가 평소에도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에 했던 상상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또한 내가 이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에 된 책임을 느끼며 반성하기도 했다.

이렇게 기원전에는 유독 유기체적 사고를 하며 물아일체의 경지에 올랐는데, 나도 그때의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 생각의 흐름을 겪었지만, 한동안 잊은 채로 지냈다.

그러다 기원후에는 트윌라를 내세워 솔로몬의 말을 비유적으로 알아듣고 승낙하는 내용을 적용해서 써봤다.

그래서 트윌라 입장에서는 지혜로운 왕이 죄도 없는 아이를 나눠서 가지라는 게 정말 저 몸을 반으로 자르라는 게 아니라, 각각 밤낮을 정해 돌보면 두 사람을 모두 엄마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건 사실 트윌라가 자신의 상황에서 솔로몬의 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레이나라는 그 아이는 둘의 아이가 아니다.

그렇기에 성문 근처에서 아이를 제 아이라고 주장한 트윌라와 리엘리 모두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성녀를 가까이서 모시던 이들인데, 성녀의 딸인 레이나가 성녀의 아이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굳이 그 앞에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을 가진 트윌라는 이 사실을 솔로몬이 알든, 모르든 왕의 말을 자기 상황에 맞춰 알아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반으로 갈라지는 데 동의했던 트윌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이를 찾아와 아이의 인형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통해 진짜로 아이를 아끼고 있었음을 드러내려고도 했고, 그런 오해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마지막 말을 남겼다.

사실 나의 이런 생각을 소설로 적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솔로몬 이야기를 일부만 알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큰 틀만 알고 각색한 내용이고, 적어둔 이후에 확실히 그 내용을 인지했는데 원래 내용을 봤으면 이렇게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한쪽이 나쁜 사람(아이를 실수로 죽이고, 남의 아이를 탐한 배경)이라고 정해진 이야기에서는 아무래도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트윌라에게 다른 배경을 줌으로써 나만의 이야기로 각색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가르는 데 동의한 여자의 배경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작품의 장르는 판타지이고, 8월 5일 토요일에 작성됐다.


이색에 끌리는 이세계

이전 꾸러미에서 살짝 풀었던 내용인데, 이 내용은 아사달과 아사녀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알리오라는 외계인이 환생 장치를 만들러 지구로 떠나는 데, 임신한 알로하는 그를 그리워하다가 그녀도 지구로 오게 된다.

굳이 환생 장치를 내세운 건, 김대성이 환생 이전(전생)의 부모와 이후(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다는 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런닝맨에서 진행된 유재석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보면서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연못에서 죽은 아사녀와 그런 아내(혹은 동생)를 그리워하며 삶을 마감한 아사달.

두 사람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 나라의 연못에서 일어난 일이면, 결국 그 사람은 고향이 아닌 새로운 지역에 남은 거라고도 할 수 있으니 이주했다는 결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 좀 더 희망적인 끝을 둘에게 남겨주고 싶었고, 그래서 지구와 접촉하게 된 행성 푸움의 외계인 중 기술자인 알리오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여기서 푸움이란 행성 이름은 품을 길게 발음한 것에서 따왔다.

요즘은 이민과 이주가 흔한 시대다.

그리고 이게 과거에서부터 없었던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곳이 다른 곳에서 오는 이들을 품어줄 거라는 의미로, 암시적인 느낌을 담아 행성의 이름을 정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고향과 다른 이색적인 환경을 가진 세상이란 의미에서 제목을 어울리게 잘 지었다는 생각도 든다.

나만의 착각일 수 있지만, 나는 그렇다.

해당 이야기는 8월 15일 화요일에 작성됐으며, 장르는 판타지다.


문어공주

인어공주를 각색한 것이다.

요즘은 아니고, 이제 인어공주가 실사화되면서 논란을 가졌던 것을 보고 각색하게 된 이야기다.

문어공주를 내세워 에리얼이라는 이름을 쥐어준 것은, 그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전부터 인어공주는 내가 가장 각색을 많이 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전부터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고 목소리를 잃는다 해서 표현의 수단이 사라진 것은 아니란 생각을 했다.

충분히 자기표현의 수단을 찾을 수 있었고, 여기서는 펜이란 도구로 글을 쓰게 되어 세레나가 자신을 나타내는 수단을 찾은 것을 드러냈다.

또한 문어공주 에리얼이 신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설정을 넣어서 인어공주 이야기 속 마녀로 비칠 수도 있지만, 조력자로 여겨지게 했다.

그렇게 한 것은 내 글에 존재하는 인어의 세계관에서 에리얼을 전설적인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특히 인간들에게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인어에게 에리얼은 인어가 아닌 문어공주이며, 다리를 얻은 이가 아니라 인어에게 다리를 선물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들이 진실을 제대로 모른다는 내용을 넣음으로써 내 이야기가 의외로 원조 격이 될지도 모른다고 홀로 상상해 봤다.

해당 이야기는 판타지이며, 8월 27일 일요일에 작성됐다.


폭설공주

이것은 백설공주를 각색한 작품이다.

이번에는 백설공주의 실사화에 대한 정보를 담은 유튜브 리뷰를 보다가 구상하게 되었다.

실사화에 대한 정확한 정보보다는 예측을 담은 영상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홍길동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백설공주를 조선판으로 만들어 심청전과 홍길동을 연결해 각색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상의 조선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는 관계가 없다.

지금 캐스팅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백설공주임에도 피부가 하얗다는 설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그러면 백설공주란 이름과 멀어지는 것일 테고, 다른 이름을 쓰면 되지 않나 싶었다.

배역을 자꾸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데려올 거라면 원작 제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바꾸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조차 하지 않은 채로 욕심만 내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변경해 줬다.

폭설공주는, 꼭 피부가 하얗게 될 이유가 없다.

물론 설이라는 눈을 뜻하는 한자에 하얗다는 의미가 있지만, 눈은 밟으면 까매진다.

그래서 주인공 조폭설이 백반증이란 피부병을 앓고 있는 설정도 넣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단 내용이 우선이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게 제목과 의미적으로 봤을 때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어서 여러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나도 나름대로 디즈니의 횡포(?)를 한 번 건드려보고자 했다.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내용의 이해도는 그쪽이 높을 테니, 내 것이 더 어울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의 시각을 더해 작성해서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중이다.

해당 작품은 배경이 가상의 조선인만큼 퓨전판타지로 볼 수 있으며, 9월 17일 일요일에 작성됐다.


신데렐라는 족욕으로 빠져나간다

이것은 제목에서 바로 보인다.

신데렐라를 각색했다.

사실 이 내용은 내용보다 내가 쓰는 문장을 적용할 수 있는 장면을 구상하다가 마련하게 된 이야기다.

'시련은 발 빠진 욕과도 같아 결국 벗어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오래 해도 족욕을 영원히 하진 않을 테니까. 그러니 좀 퉁퉁해도 맞는 신 정도는 찾을 수 있겠지.'

여기 신데렐라도 발견되는 세상에서는, 이렇듯 시련은 별 거 아니다.
끝내 맞이하는 결말이란 게 유일한 보상인 냥 굴어도 이 욕을 말릴 순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게 더 마땅한 부름이라면 그에 어울리는 자가 되어주기로 했다.

바로 이 부분이다.

보다시피 나는 '시련이 발 빠진 욕과도 같다'는 문장을 꼭 넣고 싶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설명하자면, 시련에 발을 넣으면 'ㅅㅂㄹ'이란 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족욕이라는 말을 또 하고 싶었다.

족욕은 발의 피로를 풀며 편안하게 해주는 부분이 있다.

그런 점에서 시련이라는 건 족욕과 반대되는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시련이 족욕처럼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혹 괴로워도 결국 벗어날 거란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는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싫었던 작가 천다연이 과거에 끔찍한 엔딩을 넘겨준 벨리샤로 빙의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벨리샤는 왕자와 결혼해서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전형적인 신데렐라였지만, 강대국의 침략 끝에 왕족이란 이유로 함께 처형되는 결말을 가졌다.

다연이 한때 추가적으로 작성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 엔딩을 피하기 위해 다연은 왕자의 유리구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족욕을 통해 발의 형태를 살짝 바꾸는 것이었다.

보통 이제 발은 오래 물에 담그면 쭈글 해지거나 퉁퉁 불게 될 테니, 그것을 감안해 넣어봤다.

만약 남주까지 등장했으면 로맨스판타지가 될 뻔했는데, 아쉽게도 작품에서는 남주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판타지라고 볼 수 있으며, 12월 7일 목요일에 쓰였다.


여섯 번째 꾸러미?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이야기를 나만의 시각을 보태 각색해 쓴 이야기들에 대한 꾸러미를 풀어보았다.

사실 외부의 영향을 받은 이야기는 여기에 모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내 글 대다수가 그럴 것이다.

나는 이런 게 기쁘다.

대체로 많이 알려진 내용이라 해도 나만의 관점을 놓고 그게 이상하더라도 나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들은 내게 즐거움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뭔가 남들이 보기에는 일반적이지 않더라도, 그래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생각일지라도 나는 나라서 해보는 작업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

물론 걱정이 될 때도 있다.

내가 너무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나?

자꾸 검열을 하게 되는 시간도 분명 있지만, 이 수상함이 내게는 장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생각의 흐름인지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스스로 반복하면서 나를 설득하는 과정을 종종 겪는데, 그때마다 나와 좀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나는 나에게 대체로 납득하는 편이고, 그래서 이런 유형의 글도 쓸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렇게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내가 아직 관심을 가져야 할 세상이 더 많은 것이다.

그렇게 눈길을 두는 곳이 늘어날수록 나의 상상을 계속해서 더해가고 더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다음 꾸러미를 준비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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