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엔도 슈사쿠

침묵, 내가 버린 여자, 그리고 깊은 강

by 에드윈


작년 연말즈음부 터해서 지금까지, 저를 가장 설레게 했던 작가는 엔도 슈사쿠입니다. 한 달에 한 권 꼴로 엔도 선생의 책을 읽었으니 짧은 시간 동안 꽤 많은 작품을 읽었지요.


한 신부님이 선물로 주신 '나의 예수'부터 시작해서 '침묵', '내가 버린 여자', '깊은 강' 총 네 권을 읽었습니다. 깊은 강까지 읽고 나니까 엔도 슈사쿠에 대해서 짧게나마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엔도 선생은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고 종교에 관련된 글을 많이 쓰셨다고 알려져 있기에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읽기가 힘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문체가 상냥하달까, 부드럽달까. 일본 문학 특유의 '읽기 불편하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가톨릭에 관심이 없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만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오히려 가톨릭 신자 입장에서 엔도 선생의 작품은 일신론과 반하는 내용이 많아서, 저는 오히려 '신자 입장에선 불편한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비신자가 읽기에 더 좋은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엔도 선생의 작품에는 항상 고난을 받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침묵에서는 '로드리게스 신부', 내가 버린 여자에서는 '미츠'라는 여성이, 깊은 강에서는 '오쓰 신부'가 대표적 인물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삶은 불행할지라도, 이야기에 끝에선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남을 구하거나 도우면서 흡사 예수와 비슷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로드리게스 신부, 미츠, 오쓰 신부 세명 다 그들 자신이 마치 '예수'가 된 것처럼 이야기가 마무리되거든요.


로드리게스 신부는 고통받는 일본 신자들을 위해 자신의 신앙을 버리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는 신앙을 버리기 위한 절차인 '후미에'를 행하면서 예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밟아라. 나를 밟는 너의 발이 더 아플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라는 목소리를요. 신부가 아닌 일본인으로, 심지어 아내까지 얻게 된 로드리게스 신부는 말합니다. "포르투갈 선교회에선 나를 배교자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도의 길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까지와 다른 길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라고요.


미츠는 자신이 나병에 걸렸다는 오진을 받고 나병환자들이 모여사는 병원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하지만 재검결과 그녀는 나병환자가 아니었고, 병원에서 나오게 되죠.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가엾게 생각해서 미츠는 병원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나병환자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먹죠.


하지만 나병환자들이 만든 달걀을 팔러 도시에 나갔다가 미츠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게 되고, 주인공 요시오카는 수녀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수녀는 말합니다. "그녀는 세례를 받지도 않았고, 세례 받는 것을 거절했지만 나는 미츠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신다면 미츠라고 대답할 것이고 누구처럼 되고 싶냐고 물어보셔도 미츠라고 대답할 것"이라고요.


오쓰 신부는 신학생이지만 기독교 신앙에 대한 접근이 다른 학생들과 다릅니다. 다른 종교나 그들이 믿는 신에 대해서 호의적이죠.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를 자신 나름대로 생각을 합니다. 부처도 흰디의 신들도, 예수도 모두 같은 신이라고. 같은 것을 다른 모습으로 보고 있는 것뿐이라고요. 그런 생각 때문에 그는 교단에서 이단으로 몰리고 사제서품조차 받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다른 수도회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서품을 받긴 하지만 그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갠지스강 근처에서 시신을 옮기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지요. 하지만 불의의 사건에 휘말려 그는 목이 꺾이는 중상을 입게 되고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


이렇듯 엔도 선생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신앙-특히 가톨릭-을 가진 사람이 썼다기엔 다소 특이한 인물들입니다. 그들 모두가 배교자, 불신자, 혹은 이단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예수의 길을 이해하고 따랐던 사람들이었고 결국 그들은 이야기의 끝에선 예수와 같은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신앙인으로서가 아닌 일반인의 시점에서 예수를 바라보겠습니다. 제가 신앙을 가지기 전, 예수의 생애를 성경에서 접하고 그는 '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여 살리고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한 기적의 모습보다는 자신이 믿는 신의 길을 따라서 다소 불합리한 형벌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거든요.


예수가 세상을 떠난 이유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 보속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만큼 인간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욕하고 비아냥대었어도 그는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길을 따라 걸었고, 인간을 미워하지 않고 죽음에 순응했습니다. 그리고 인류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인물로 남아있지요.


엔도 선생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초라하고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굴곡진 인생을 살았지만 자신이 믿는 진리를 위해 살았던 인물들이었습니다.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또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선의 길을 걸었기에 그들의 최후는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치 예수의 모습처럼 말이지요.


이렇듯 엔도 선생의 작품은 가톨릭의 색채가 깊게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그 진한 색채 위에 그려진 인물상들은 가톨릭이라기보다는 좀 더 범종교적, 혹은 반가톨릭적(개신교에 가까운)인 색채를 띄고 있지요. 온갖 잡신이 존재하고 또 불교적 색채가 강한 일본에서 자란 엔도 선생이기에, 유일신앙의 가톨릭의 교리에 반박하는 작품을 쓰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천하지 않는 신앙인보단 실천하는 일반인, 혹은 이단자가 하느님의 가르침, 그 본질에 더 가깝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작품들을 쓰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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