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바바예투(Baba yetu)

We are the world, we are the children.

by 에드윈


오늘은 제가 최근에 가장 좋아하고 많이 듣는 한 노래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그 곡의 이름은 '바바예투(Baba yetu)'입니다.


이 곡은 예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였으니, 거의 15년 전의 이야기네요. 전 '문명'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문명 5 플레이시간이 천시간이 넘고 문명 6 역시 700시간에 달하니... 정말 좋아하는 시리즈이죠.


입문은 문명 3으로 시작했었는데, 그땐 게임 시스템을 이해 못 해서 별 감흥을 못 느꼈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나서 문명 4를 해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이 게임에 푹 빠져서 지냈습니다. 한국의 고등학생이 으레 그러하듯, 평일에는 게임할 시간이 없어서 주말까지 기다렸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문명 4 아이콘을 클릭했던 기억이 나네요.


한 번도 세계정복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어쨌든 고등학생인 저의 주말을 함께했던 문명 4, 그 문명 4를 켤 때마다 흘러나왔던 곡이 바로 이 바바예투라는 노래였습니다. 문명 4의 오프닝 곡이었거든요.


그땐 이 노래가 무슨 뜻인지 잘 몰랐고, 알려는 생각도 별로 없었습니다. 게임이 하고 싶으니 오프닝은 넘기기 바빴고, 그저 '아프리카 스타일의 흥겨운 노래네?'하고 생각한 게 다였죠.


최근에 우연히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와인을 한 잔 마시면서 유튜브에서 노래를 듣다가 이 곡을 찾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듣다가 친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와서 홀린 듯이 빠져들었지요.


이 곡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Baba yetu, yetu uliye Mbinguni yetu, yetu amina!

Baba yetu yetu, uliye M'Jina lako litukuzwe.

Baba yetu, yetu uliye Mbinguni yetu, yetu amina!

Baba yetu yetu, uliye M'Jina lako litukuzwe.

Utupe leo chakula chetu tunachohiatji

Utusamehe makosa yetu, hey!

Kama nasi tunavyowasamehe

waliotukosea usitutie. katika majaribu, lakini

Utuokoe, na yule Muovue, milele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반복되는 'Baba yetu'라는 단어와 'amina'가 눈에 띕니다. 이 곡을 다소 의역을 포함해 해석해 보자면,


우리 아버지시여 하늘에 계신 분이시여 아멘.

우리 아버지시여 그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우리 아버지시여 하늘에 계신 분이시여 아멘.

우리 아버지시여 그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저희가 용서함과 같이

저희에게 잘 못 한 이를.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영원히.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든 알고 있는 주기도문이지요.


노래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들었던 느낌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아프리카에 기독교가 퍼졌을 땐, 자의든 타의든 아니면 왜곡된 의도였든 간에 하느님의 사랑을 알리기엔 종교인들과 교인들의 행동들이 부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침략자들이 가지고 온 종교, 설령 그 종교가 선량한 의미와 진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원주민들 입장에선 침략자들의 논리에 불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당시 기독교가 타의든 자의든, 서양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노래는 참 좋은데, 계속 듣고 싶은데 마음속에 남아있는 앙금 같은 이 불쾌함은 뭘까, 이건 침략의 역사와 함께한 기독교의 역사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지요.


침략자들의 신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고통이나 아이러니가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의 신에게 자신들의 언어-당시엔 아마 라틴어로 기도를 했겠지만-로 기도를 바치는 원주민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런 생각이 들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불편한 느낌이 없어지지 않았지요.


최근 성경을 읽다가 한 구절을 듣고는 이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아직도 서양 침략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하는 기독교의 어두운 역사에 대해선 부정적입니다만, 성경 말씀 속에서 작은 위로를 얻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이 노래가 더 좋아졌습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벨탑을 쌓아 당신에게 도전하려 하는 인간들에게 다시 한번 벌을 내리시고 그들의 언어를 통하지 않게 하고 흩어버렸다는 내용이지요.


“보라, 저들은 한 겨레이고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일 뿐, 이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성읍을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그냥 흘려들었을 구절이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속에 와닿는 느낌이었습니다. '언어의 불일치'라는 의미가 단순한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그것 역시 하느님의 사랑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랄까, 조금 다르게 느껴졌달까요.


동시에 바바예투가 생각이 났고 다시 이 곡을 듣게 됐습니다. 동시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도 읽게 되었습니다.


'이 것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의 언어로 쓰였고, 아프리카로 전파되어 스와힐리어로 불리었고, 중국계 미국인이 작곡을 하고 유럽의 문법으로, 전 세계인이 부르는 곡이 되었다. 이 영상은 그저 단순한 공연이 아닌 인류애를 다룬 것'이라고요.


만약 이 곡이 제가 바로 이해하는 영어나 한국어로 불린 노래라면 그 감흥이 덜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로 불려진 '주기도문'이 제게 크게 와닿았고 언어의 불일치가 바벨탑으로 인한 하느님의 벌이 아닌,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인류이고, 그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성경에선 하느님이 타락하거나 오만한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만, 바벨탑 이야기에선 그들의 언어를 섞고 흝어지게 했을 뿐 그들의 생명만큼은 뺏지 않으셨습니다. 그 죄로 인해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된 우리지만, 그런 하느님의 벌에서도 이런 감동을 느낀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혹자의 말처럼 고대 유대인의 언어로 쓰인 기도문이 아프리카로 퍼졌고, 그것을 중국계 미국인이 유럽이 발전시킨 예법으로 곡을 만들었고, 다양한 인종이 그 곡을 불렀으며, 시대와 인종과 언어를 초월해 사람들은 이 곡을 들으면서 우린 '남이 아닌 하나'라는 감동을 느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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