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수리 에디>
영화 <독수리 에디>는 열정만으로 영국 최초의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된 마이클 에드워즈에 관한 감동 실화를 다뤘습니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한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민망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점수 차이로 꼴등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에디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입니다. 사람들은 마이클 에드워즈의 어떤 점에 열광하는 걸까요? 영화와는 다른 실제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마이클 에드워즈는 1963년 12월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원시가 심했던 그는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항상 쓰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 안경 때문에 에디는 어딘가 맹해 보이는 귀여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13살 수학여행 때 처음으로 스키를 접하고 에디는 스키 선수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성인이 된 뒤에는 건설현장 일을 병행하며 좋은 성적을 내기위해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림픽에 출전하는 건 번번히 좌절됐고 결국 스키보다 비용이 덜 드는 스키점프로 전향했습니다.
이렇게 스키점프로 종목을 바꾼 덕택에 1987년 에디는 마침내 독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적은 55등으로 꼴찌나 마찬가지였는데요, 그래도 영국에선 에디가 1위이자 유일한 스키점프 선수였기 때문에 그는 영국을 대표해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에도 참가할 수 있게 됩니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도 에디는 69.2 점으로 꼴등을 했습니다. 이때 금메달 수상자의 점수는 229.1로 아무리 꼴등이라지만 1위와 점수 차이가 너무 크죠?!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일명 에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국제 대회에서 상위권에 드는 선수만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요. 그래서 이 올림픽이 에디의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에디가 이 경기 직후 은퇴를 한 건 아니고요, 그뒤로도 10년 동안 계속 올림픽 참가를 시도했지만 성적이 안 좋아 출전할수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에서 보기 힘든 이 터무니없는 점수에 대중은 열광했습니다. 언론은 에디의 스토리를 더 감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고소공포증을 극복했다'는 거짓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하루에 60번 점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소공포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점수가 별로였을 뿐이지요. 그리고 비록 국제대회에 참가는 못했지만 스키 실력은 꽤 괜찮았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방송 요청이 쇄도했고 그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에디의 인기로 사람들이 스키 점프와 올림픽에 더 관심을 갖게 되자 폐막식에선 독수리처럼 날았다는 평을 받으며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에디는 독수리 에디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선 성화 봉송을 했고, 2013년에는 다이빙 프로그램인 스플래쉬 시즌1에서 우승을 했습니다(정말 고소공포증은 없는 것 같습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독수리 에디>는 그 해 영국에서 가장 큰 수입을 올린 영화입니다. 이렇게 열정으로 실력을 극복한 에디의 이야기는 영국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는 영국의 복면가왕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 에디가 스키 점프로 전향하지 않고 계속 스키 선수를 했다면 지금은 어땠을까요? 독수리 에디 이야기를 쓰다보니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이 듭니다. (에디가 스키 점프를 잘한 건 아니지만요^^;;)
* 영국에 에디가 있다면 호주엔 브래드버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