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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Dec 26. 2024

사랑찾아 자전거로 6000km

인도에서 스웨덴까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5개월 동안 자전거로 인도에서 스웨덴까지 무려 6000km를 달리는 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1970년대,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실제로 해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인도의 프라드윰나 쿠마르 마하난디아(Pradyumna Kumar Mahanandia)입니다.



불가촉천민 달리트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사람을 4개의 계층으로 구분합니다. 종교 의식을 집행하는 브라만, 왕족인 크샤트리아, 서민인 바이샤 그리고 노예인 수드라로요. 그런데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낮은 계층인 수드라보다 더 낮은 계층이 있습니다. 바로 달리트라고 하는데요, 이들은 평생 멸시와 조롱을 당하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마하난디아는 바로 이 달리트에 속했습니다. 그는 가난을 그가 평생 벗어나지 못할 숙명처럼 받아들일수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달리트가 그러하듯이요.



마하난디아


마하난디아 역시 어렸을 때부터 달리트라는 신분 때문에 멸시와 차별을 당하며 자랐습니다. 가스라이팅이라고 하죠. 사람이 어떤 말을 계속 들으면 처음에는 의심을 하다가도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으며 조종 당합니다. 달리트가 평생 가난하게 사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차별만 받으니까요. 어느 순간까지는 의문을 품고, 거부하고, 분노도 하지만 몇 년을 계속 당하면 자기도 모르게 세뇌 당하면서 순응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마하난디아는 달랐습니다. 그는 달리트라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 했습니다. 이런 의지와 재능 덕택에 그는 뉴델리에 있는 예술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이내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혔고 결국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그림 솜씨가 워낙 좋아 지역 신문에도 소개될 정도였지만 현실에서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달리트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마하난디아가 소련 우주 비행사 초상화를 그려 TV에 출연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그는 관광객에게 유명한 거리 화가가 됩니다. 그리고 1975년, 그의 운명을 바꿀 여인, 스웨덴에서 온 샤롯테가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그를 찾아옵니다.


 


운명적 만남


마하난디아는 샤롯테를 보고 묘한 끌림을 느껴 몇 가지 질문을 합니다. 그녀의 대답에 그는 도저히 그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너는 아주 먼 땅에서 찾아온 황소자리 여자와 결혼한다, 그 여자는 음악적 소양이 뛰어나며 숲을 소유하고 있을 거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샤롯테가 이 모든 조건에 해당했습니다.


솜씨 좋기로 유명한 그였지만 너무 떨린 나머지 샤롯테의 초상화는 엉망으로 그려버리고 맙니다. 그림을 본 샤롯테는 실망하고 그냥 떠날수도 있었을텐데, 샤롯테도 뭔가 끌렸던 걸까요? 다음 날 다시 그를 찾아오고 마하난디아는 그녀에게 이 모든 일을 고백합니다.


당시 샤롯테는 히피 사상과 신비주의에 빠져있었습니다. 이 무렵 유럽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히피 트레인을 타고 스웨덴에서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인도에 여행 올 정도로요.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도 그를 미친놈으로 보지 않고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정말 그의 운명의 짝일까?'하구요.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숲을 소유한 까닭입니다. 유럽인이라고 다 숲을 소유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녀는 스웨덴 왕족 출신이어서 숲 속에 있는 궁궐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적 소양이 뛰어나며 숲을 소유한 것이죠!


결국 둘은 며칠만에 급속도로 가까워져 급기야 마하난디아의 고향인 인도 동부 오리사로 함께 가 인도식 전통 혼례를 올립니다.



사랑 찾아 6000km


신혼의 기쁨도 잠시, 샤롯테는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인도는 잠시 들린 여행지이고 그녀 삶의 모든 것이 스웨덴에 있었으니까요.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들은 말을 평생 품고 운명의 여인을 기다린 마하난디아와 달리 그녀에게 이 일은 그저 여행지에서의 작은 해프닝 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샤롯테가 돌아가고 1년 뒤, 편지로만 만족할 수 없던 마하난디아는 그녀를 보기위해 자전거를 타고 히피 트레인을 따라 스웨덴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달리트인 그의 형편에 비행기 표는 꿈도 꿀 수 없었고 그나마 살 수 있는 건 자전거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마저도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해야만 했습니다.


1977년 1월 22일, 그녀를 향한 마하난디아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뉴델리에서 출발해 하루 평균 70킬로미터씩 달렸습니다. 모자란 여비는 중간중간 초상화를 그려 충당했습니다. 그의 사연을 들은 사람들은 기꺼이 그에게 초상화를 요청했습니다. 히치하이킹을 해주거나 기차표를 선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5월 28일 마침내 그는 스웨덴 보라스에 도착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덴마크를 거쳐 무려 6000km를 달려서요.




“나는 유럽이 얼마나 넓은지 알지 못했습니다. 킬로미터 단위의 거리도 몰랐습니다.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았다면 감히 시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르는 게 약입니다"
(마하난디디. 힌두스탄 타임스 인터뷰에서)


“사랑을 위해 자전거를 탔지만 자전거를 좋아한 적은 없었습니다"
(마하난디디. CNN인터뷰에서

 


현재


재회한 두 사람은 2년 뒤 정식으로 부부가 되어 아들과 딸 하나를 두고 지금까지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결혼 후 마하난디아는 저명한 화가로 성장하여 인도와 스웨덴간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고있습니다. 2005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습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인 달리트였던 마하난디아가 스웨덴 왕족인 샤롯테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저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상, 공주와 결혼한 뒤 본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먼 옛날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는 마하난디아의 사랑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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