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잖아?
취준생 시절, 직장인들이 목에 걸고 다니는 사원증을 바라보며
'나는 언제 저걸 내 목에 걸 수 있을까?'하고 부러워했다.
아침, 저녁 분주하게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들,
점심시간에 커피 한잔하러 카페에 들르는 직장인들,
서류가방을 들고 업체와 통화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직장인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꼭 취업에 성공해야지'라고 다짐했었다.
그 부러움을 견디고 견뎌 고대하던 취업에 성공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제일 기뻤던 건
사원증을 목에 걸 수 있었다는 거였다.
우선 나는 3개월까지만 해도 출근이 너무 하고픈 풋내기 신입사원이었다.
모든 게 신기했고 배우는 것이 즐거웠고
심지어 주말에도 일이 하고 싶어 월요일이 빨리 오길 바랐을 정도로 신이 났다.
실제로 친구들한테도 가족들한테도 회사가 너무 즐겁고 좋다고 떠들어댔었다.
무엇보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입을 할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러나 직장인들에게 항상 찾아온다는 그 법칙,
아니나 다를까 나에게도 3,6,9 법칙은 찾아왔다.
3개월, 6개월, 9개월
3개월째 처음으로 내부감사를 받았고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야근을 하며 일을 처리했다.
6개월째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었다.
9개월째 회사의 문제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문제들을 직접 느끼고 경험했다.
나는 내가 오랫동안 이 회사를 다닐 거라 생각했다.
나의 첫 직장이자 내가 원해서 들어온 곳이니
평생직장으로 삼아 열심히 뼈를 묻을 각오로 다닐 것이라 다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다짐과 상상은
3,6,9 법칙에 의해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기에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을 지나 2년째를 맞이하던 해,
내가 의지하고 좋아했던 사수가 이직을 하면서
그 빈자리를 굉장히, 많이, 너무나도 크게 느꼈다.
이 회사에 대한 큰 애정은 이제 사그라든 지 오래였는데
그나마 내가 좋아하던 사수가 더 나은 환경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사수의 일까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사수를 탓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냥 내가 믿고 2년 간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그분'의 빈자리가 너무 컸고 공허함이 왔었다.
하지만 이 공허함을 채워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에서는 공석을 채워주지 않았고,
업무량은 늘었고, 하물며 부서 이동도 어렵게 되었다.
(사수도 떠났고, 2년째가 되었으니 부서이동 대상자가 되어 이동하려 했는데
팀에 일할 사람이 없단 이유로 부서이동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3년째,
현타가 제대로 찾아왔다.
회사 비전은 점점 보이지 않았고,
구조적인 문제는 심각해져 갔고,
배울 수 있는 것,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사라졌고,
인간관계에 실망함과 동시에 좋은 선배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번아웃'이었다.
매일이 지루했고 지겹고 지긋지긋했다.
5시부터 울리는 핸드폰 알람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고
피곤한 몸은 주말에 잠을 자도 개운해지지 않았으며 피로가 누적되어 쌓여만 갔다.
'아.. 이런 매일 똑같은 일상을 30년이나 더 보내야 한다고..?'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미치지 않고서야 내 젊은 시절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현타를 맞이하며 퇴사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해졌다.
'세계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
'새로운 것을 배워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해야 한다면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받고 싶다' 등등
내 머릿속은 퇴사로 가득했고
퇴사한 후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기 바빴다.
돈은 많이 안 벌어도 된다.
이제부터 내 삶의 목표는
아침에 일어날 때 행복하게 일어나는 것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때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