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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잉업 Mar 17. 2024

에필로그

그리고 만약



내 나이 스물 네살에 그녀를 만나 마흔 넷에 헤어졌다.

살면서 맺은 어떤 인연보다도 깊이가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 만난 사람도 깊은 친구가 될 수 있고, 자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면서도 제법 나란히 가는 여정이 있었던 셈이다.


알 수 없는 세계지만, 삶 이후의 또 다른 삶은 어둡고,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삶과 다음 삶 사이의 환승 순간을 이전 삶의 인연은 죽음이라고 표현하지만, 다음 생으로 보면 탄생이 될 것이니 꼭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현생에서 못다 했던 일, 좀 더 나누고 싶었던 일에 대한 아쉬움이 클 뿐이다.






매주일 단란한 가족은 교회에 갔을 것이다. 피아노를 좋아했던 그녀가 교회 반주를 맡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랬다면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아이들 뒷바라지를 끝내고 나면 피아노 연주회를 해 보라고 나는 부추겼을 것이다. 공연을 준비한다면 드레스를 고를 때 함께 따라갔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쌍둥이 딸들도 대학생이 되었을 테고, 엄마한테 배운 피아노 솜씨로 공연 후반에 축하곡 하나 정도는 무대일정으로 꾸몄어도 재밌을 것이다. 이런 아마추어 같은 공연이 있나 싶겠지만, 사람 좋은 그녀의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드레스를 차려입은 친구와 나는 함께 사진을 찍고, 그녀보다 키가 더 큰 두 딸과의 다정한 모습을 내가 찍어주었을 것이다. 한동안은 그 후일담을 나누느라 카페 한 구석에서 흥분했을 것이고, 우리는 늙어가는 내내 사골 우리듯 그 추억을 회상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피아노를 배워도 되겠냐는 내 말에 물론이라며 흔쾌히 나의 피아노선생님이 되어 주었을 것이고, 나는 친구의 성실한 수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탓해가며, 피아노를 핑계 삼아 자주 만났을 것이다.






3주라는 시간 동안 가슴 깊숙이 담아놓았던 그녀와의 이야기를 끄집어 정리해 보았다. 한 번쯤은 차분히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낄 자신이 없어 지금까지 피해 왔었다. 우린 이제는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지만, 일상의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 문득 그녀가 떠오른다.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은 그녀를 나 또한 편안하게 떠올릴 수 있겠다.


그녀가 어린 딸들을 위해 동요를 치는 모습은 잠깐 본 적 있지만, 피아노곡을 연주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만약 그녀에게 피아노 연주를 요청할 기회가 있었다면 나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부탁했을 것이며,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을 수준까지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것이다.  


  https://youtu.be/fyUq4RWOX_8?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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