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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잉업 Mar 10. 2024

예상했던 이별도 예고 없이 온다

이별은 어떤 모습으로 준비할 수 있을까



그녀가 머물던 병동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증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물이 깔끔했고, 일반적인 병원에서 보기 드문 차분함이 느껴졌다.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간호사나 의사도 보이지 않았다. 한층 아래 카페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같은 옷을 입은 환자들과 서로 다른 옷차림의 면회객들 틈에서 그녀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내 앞에 마주 앉았다.

수개월동안 연락두절이었다가 지난번 만남으로 홀가분해진 것일까.

면회가 끝날 무렵이면 돌아가는 나에게 간식을 챙겨 주었다.


"이거 많아요. 난 잘 안 먹으니까 가져가서 먹어요."


항암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연락을 주면 을 내서 문병을 갔다.

항암도 몇 번 남지 않았다고 했는데, 한참 동안은 입원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늦가을에 접어들 무렵,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 병원 옮겨요. 대기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어요. 한번 올래요?"

이름은 익히 들어본 곳이지만, 다니던 가깝고 좋은 병원을 두고 왜 옮겼을까 의아했다.

주말에 한번 들르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몇 층 몇 호예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올라와요. **호예요."


이상하게도 분명 가슴은 철렁했는데, 머리로는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호스피스 병동 한마디에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퇴근길에 찾아간 병원은 외래 진료가 끝나서인지 고요했고, 늦가을이라 찬 바람에 날도 이미 어둑해져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이전에 찾았던 병원과는 로비부터 너무 다른 분위기였다.


병동에 올라가기 전 편의점에 잠시 들렀다.

무엇을 사 갈까? 뭘 좋아할까? 고민하면서도 선뜻 고를 수가 없었다. 무엇을 사 가더라도 그녀가 먹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에게 간식을 챙겨 주었듯이 가끔 찾아 올 지인들이 마실 만한 것이라도 좋겠다 싶어 제일 무난한 병주스 세트를 골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가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어떠한 답도 정하기 전에 '땡'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녀가 알려준 병실은 간호실 바로 옆이라 두리번거릴 것도 없었다.

병실문은 활짝 열려 있고,  불은 꺼져 있었다. 그럼에도 복도 조명과 텔레비전 불빛만으로 제법 훤했다.

병실 앞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 침상을 찾는데, 그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씨, 여기!"


그녀의 침상은 출입구 바로 왼쪽이었는데 지나치면서 몰라봤던 것이다.

돌아보며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분명 맞는데, 너무 미안하게도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몰라보게 야윈, 야위었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상하지 못한 모습의 그녀를 보고 있자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손을 잡고, 그녀를 나도 모르게 안고 있었다. 이건 꿈이었으면...

안부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허둥거리는 나를 보며 침착하게 반겼다.

"잘 지냈죠? 이제 많이 추워졌죠?"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도 정신이 들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처럼의 대화거리를 찾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밥은 잘 먹고 있어요? 주스 사 오긴 했는데, 마셔도 되나 모르겠네.."

"혹시 먹고 싶은 거 없어요. 내가 내려가서 사 올게. 편의점에 갔다 올게요."

"먹고 싶은 거 꼭 먹고 싶은 거 말해 봐요. 편의점에 없으면 다음에라도 사 올게요."

도울 수 없는 상황에 뭐라도 해 주고 싶어 그녀를 다그쳤다.


"그럼 설레임 하나 사다 줘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있고, 뭐라도 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쌍둥이 딸들이 엄마를 위해 그려 주고 간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 안부를 몇 마디 주고받았다. 기운이 없어 지쳐 보이는 그녀를 자리에 눕혀 주고는 다음 주말에 또 오겠다며 인사를 나누었다.




일주일 뒤 다시 찾아갔을 땐 나를 보고 힘없는 미소만 지을 뿐, 긴 말을 하지 못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그녀에겐 긴 시간이었을까. 예전 얼굴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한 그녀를 목소리만으로 느껴야 했다.

곧 이별이 가까워졌음을 아무 설명이 없어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땐 몰랐다. 이별은 예고 없이 올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것인데, 그때는 알고 싶지 않아 했던 모양이다. 바보같이.


2주 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진짜 겨울분위기가 다.

현관에서부터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반겼다.

편의점에 들르지도 않고 곧장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열리는데, 바로 보이는 간호사스테이션그날따라 유난히 밝게 느껴졌다. 각자 할 일을 하면서 가볍게 웃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 복도에는 환한 조명 아래 더 반짝거리는 트리가 화려하게 치장을 한 채 서 있었다.

'첫 번째 병실이지.' 문 앞에 네임카드가 많이 비었다. 그녀의 이름도 없었다.

병실을 옮겼을까? 복도 끝의 병실까지 확인했지만, 그녀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발걸음이 급해졌다.


"여기 있던 ○○환자 옮겼나요?"

"아, 그분이요? 돌아가셨는데요?"

뒤통수가 얼어붙었다. 대답하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너무 편안해서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언제요?"

옆 간호사에게 확인하는지 소곤거렸다.

"한참 되셨어요."


더 물어볼 것도 없이 돌아서는데, 꼭 그렇게 밝은 톤으로 대답해야 했나 애꿎게 간호사가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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