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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잉업 Mar 03. 2024

함께 했던 시간들

몇 줄이면 끝나 버릴 기억들이다



그렇게 헤어진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난 그해 늦가을 수능시험을 보았고, 이듬해 한의대에 입학했다. 같은 직장에서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와 가깝게 지내긴 했지만, 새로운 학교생활에다 서울에서 먼 지방에서 자취를 시작한 나는 자연스레 그녀의 안부는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시에는 무선호출기에서 휴대폰으로 넘어가던 시기였고, 대학 입학 후에 휴대폰이라는 걸 처음 개통한 상황이어서 서로의 연락처를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그녀의 반가운 전화를 받았고, 내가 서울에 가게 되면 꼭 한번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그렇게 그해 8월 대학로 KFC에서 재회를 했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다가 놀랍게도 그녀가 피아노학과에 다시 편입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생님이 수능 본다고 퇴사하고 나서 저도 제 꿈에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녀는 원래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음대 입시를 뒷바라지하기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식품영양학과에 진학을 했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나는 그녀의 삶에 꽤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늦깎이 대학생이라는 공통점으로 다시 인연을 이어갔다. 방학이면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만났고, 한 번은 내가 다닌 학교가 있던 소도시로 그녀가 내려와 2박 3일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근처 관광지를 함께 구경하고, 밤에는 자취하던 집 옥상에 올라가 삼겹살을 구워 먹고, 한여름밤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의 별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나눈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밤하늘과 편안함과 여유로움은 생생하다.  




우린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사회생활 초년생으로 돌아가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졸업하면서 수련의 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듣고도 당직이 겹쳐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녀보다 한 달 앞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 날짜를 잡은 예비신랑신부는 다른 사람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따라 그녀는 내 결혼식에 오지 못했다. 전화로만 서로의 결혼을 축하했으니, 결혼식 하객 사진 속에 그녀는 없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라도 있었다면 몇 장의 사진으로나마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을 텐데, 한 장도 없다는 것이 참 아쉽다.


30대 후반까지는 각자의 결혼과 출산, 육아로 서로를 챙길 겨를이 없었다. 돌아보면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은데, 그때는 뭐가 그리 바쁘고, 시간이 없었을까. 그녀는 쌍둥이를 키우느라 외출조차 자유롭지 않았고, 나 또한 두 살 터울로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몇 년간은 함께 커피 한잔 마실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게 초보 엄마로서의 좌충우돌을 각자 겪고 나서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시기가 되자 우리에게도 브런치 정도는 즐길 꿈같은 여유가 생겼다.


애들은 커 가니 앞으로 얼마든지 우리가 만나고 이야기 나눌 시간은 많아질 것이 틀림없었다.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진짜 세월과 함께 무르익어가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학부모로서의 고민, 자기 일에 대한 고민, 사람과의 관계, 가족 간의 문제... 그녀는 무조건적으로 나를 응원해 주었고, 나 또한 마음씀이 넉넉하고 따뜻한 그녀가 평생 친구로 여겨졌다.


같이 코스트코 쇼핑을 몇 번 갔다.

아침에 만나 둑방길을 함께 걸은 적도 있다.

영화도 몇 편 같이 봤다.

브런치를 같이 먹었다.

아이들 방학을 맞아 박물관에 같이 갔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쭉 나열해 보니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해 추억거리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용감하게 아이 둘씩을 데리고 제주도 여행을 함께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수학여행 가는 소녀들처럼 들떴고, 제주도 바닷가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함께 지켜보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렇게 또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여행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브런치를 먹던 호사는 사라졌지만, 쉬는 날이면 잠시 시간을 내어 개천길을 같이 걸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각자의 시계가 바삐 움직였다. 헤어질 때면 조만간 또 보자는 말로 인사를 했지만, 그 이후로 좀처럼 연락이 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상하다, 요즘 바쁜가? 부재중 전화가 있으면 연락을 줄 텐데...'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니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나?'

절대로 아무 일없이 연락을 끊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 마음은 초조해졌다.


통화가 되지 않는 날이 한두 달 길어졌고,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을 때만 간간히 답이 왔다.

'미안해요, 요즘 일이 좀 생겨서 당분간 못 만날 것 같아요.'


전화 연락은 부담스러울 만한 사정이 있는 것 같아 가끔 카톡으로만 안부를 전했다.

'조금 여유 생기면 연락할게요. 잘 지내요.'

그녀의 답에는 말 못 할 사정이 있음과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그렇게 드문드문 일방적인 안부를 확인하며, 그녀가 때가 되면 사정을 얘기해 주리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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