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회 문화를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 크리스마스 시즌은 그녀와 가족들에겐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녀가 있었더라면 쌍둥이들은 매년 그래왔듯이 엄마와 각별한 추억을 하나 더 만들었을 텐데, 그해 크리스마스는 어린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가혹할 만큼 추웠을 것이다.
그해 봄에는 친정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었다. 그 상실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그녀까지 사라진 건(잃었다기보다 사라진 느낌이었다) 한해에 다 겪기로는 숨찬 일이었다. 세상일이 내가 감당할 만큼씩 주어지면 좋으련만, 하늘은 인정사정없었다.
엄마는 새벽에 물을 마시러 일어나시다가 넘어지면서 압박골절이 되셨다. 그 길로 응급실을 거쳐 수술까지 잘 마치셨지만, 퇴원 전날 뵈었을 때 살짝 숨이 차다는 말씀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퇴원날짜를 받아 놓고 어떻게 집이 아닌 중환자실로 가실 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 길로 엄마와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만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생사는 사람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은 뭐라도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회복되지 못하신 채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을 자식들에게 주시고, 자식들이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떠나셨다.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시던 소원 중 하나는 이루셨다.
"나는 자식들한테 짐 되게 오래 사는 거 싫다. 자다가 조용히 가는 게 소원이다."
난 그녀에게는 엄마의 부고를 전하지 못했었다. 내 안부를 전하기에는 그녀의 알 수 없는 안부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녀를 호텔 카페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도 내 근황에서 엄마 소식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었겠는가.
그해 나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잃었다.
한 사람은 예상도 하지 못한 죽음의 문턱에 갑자기 다가섰고, 이별의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떠났다.
한 사람은 이별을 예상했지만, 준비가 채 되기도 전에 예고 없이 떠났다.
두 사람은 한 해에 떠났고, 나는 떠난 뒤에야 알았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느라 할 말을 다 하지 못했음을.
사랑했는데, 사랑한다고 많이 표현하지 못했음을.
남겨질 이들의 슬픔을 생각하느라 떠나는 순간 마음이 많이 아프지 않았었기를 부질없이 바라본다.